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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는 왜 ‘책’을 그렸을까?

by 와이아트


빈센트 반 고흐는 가장 유명한 화가 중 한 사람이지만, 우리는 그에 대해 생각보다 많은 것을 알지는 못하는 것 같다. 유명한 인물일수록 그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해서 자료를 많이 찾지 않는 것도 있고, 유명한 작품 위주로 기억하다보니 비교적 덜 유명한 작품들은 주목하지 않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Van_Gogh_-_Starry_Night_-_Google_Art_Project.jpg 빈센트 반 고흐, <별이 빛나는 밤에>, 1889. (출처: 위키피디아)


우리는 반 고흐가 살아생전에 그림을 한 점 밖에 팔지 못하고 평생 가난하게 살았다고 생각하지만, 화가가 되기 전까지는 화랑과 서점에서 일하면서 나름대로의 생활을 유지했다. 한때 전도사가 되기를 꿈꾸었을 만큼 종교에도 깊이 심취했는데, 이 같은 사실 또한 반 고흐에 대한 설명에서 빠져 있는 것 같다. 고갱과 싸우고 귀를 잘랐다거나,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사실 등이 부각되면서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한 이야기들이 많다.


특히 고흐가 ‘책’을 사랑했다는 사실은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고흐가 자신의 작품에 ‘책’을 직접 그려 넣은 작품이 열 점 이상인데, 우리가 이에 주목하지 않은 것이다. 이전 글에서 반 고흐가 그린 ‘구두’ 그림을 이야기했다면, 오늘은 그의 ‘책’ 그림과 관련한 내용을 살펴보려 한다. 마리엘라 구쪼니의 『빈센트가 사랑한 책』을 참고하여 작성하였다.





빈센트 반 고흐는 1853년 네덜란드 남부에 위치한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교회의 목사였고, 어머니는 왕실 제본사의 딸로 그림 솜씨를 가지고 있었다. 반 고흐는 검소하고 금욕적이며 엄격한 종교적 분위기 속에서 유년시절을 보내게 된다. 장남이었던 그는 아래 5명의 동생들이 있었는데, 그 중 4살 아래의 동생 테오는 반 고흐의 분신과도 같은 존재로서 그가 화가로 성장하기까지 가장 큰 영향을 준 인물이기도 하다. 반 고흐가 테오와 나눈 편지가 전해지면서 우리에게 많은 울림을 주고 있다.


반 고흐는 학업을 이어나가다가 집안 사정으로 인해 갑작스레 학업을 중단한 이후 그림 판매상인 숙부의 도움으로 1869년부터 구필화랑의 헤이그 지점에서 수습사원으로 일하게 된다. 그러다 20살이 되던 해 화랑의 런던 지점으로 옮기면서 유럽의 문화예술에 대해 접할 기회를 얻는다. 이후 파리 지점에서 일하기도 했는데, 이처럼 여러 지역에서 근무한 것은 그에게 유럽 미술을 두루 익히는 값진 경험이 되었다. 특히 구필 화랑의 도록을 비롯해 다양한 예술 서적을 접하면서 예술의 자양분을 쌓았다.


그림1.jpg 빈센트 반 고흐, <테오 반 고흐를 위한 두 번째 시 선집>, 1875.


반 고흐는 문학 책, 예술 서적, 예술 잡지 등을 읽으며 좋은 시나 문구를 적어 4권의 작은 앨범을 만들기도 했다. 그 중 두 권을 동생 테오에게 주었는데, 이때의 기록을 보면 그가 탐독한 책의 저작들이 얼마나 다양하고 깊이 있었는지를 알 수 있다.


화랑의 파리 지점에서 일하던 반 고흐는 ‘성경’을 탐독하기 시작하는데, 이를 계기로 종교에 몰입하게 되면서 화랑을 그만둔다. 이때 벨기에 보리나주 탄광촌에서 복음 전도사로 일했지만, 복음주의 전문대학에서 다음 단계로 올라가는 자격을 획득하지 못해 신학 공부를 포기해야 했다. 그럼에도 그는 낙담하지 않고 가난한 탄광촌 마을로 가서 소박한 평신도 설교자가 되기로 결심한다. 복음 전도자로서 임시직을 얻었지만 복음화위원회는 그의 직위를 연장하지 않기로 결정한 일을 계기로 반 고흐는 기성 종교에서 멀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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