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와 책임, 그리고 어른이 된다는 것
대학 졸업을 앞두고 취업을 준비할 때였다. 그 시기는 역대 최악의 취업률이라 불렸고, 경기 부진으로 기업 채용도 줄어든다는 소식에 나는 좌절했다. 하지만 어느 시대나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요즘은 취업난이 더 심하다고 하지만, 언제는 취업이 쉬웠겠는가. 겉으로 순조로워 보이는 시기에도 나름의 어려움이 있고, 반대로 아무리 힘들어 보여도 늘 돌파구는 있었다.
아무튼 새해가 되어도 취업이 되지 않자 나는 아르바이트를 구해야 했다. 늘 사무직 알바만 고집해 왔는데, 앉아서 일할 수 있고 연차도 하루 보장되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다행히 꽤 높은 시급의 자리를 구했지만 집에서 거리가 멀었다. 그때 문득, 한 번쯤은 혼자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 근처 한복판에 고시텔을 얻었다. 샤워실과 화장실이 딸린 ‘미니 원룸’이라 광고했지만, 실제로는 3평 남짓한 방이었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출퇴근 시간을 아끼고 교통비를 절약할 수 있다는 생각에 과감히 실행에 옮겼다. 그리고 뜻밖에도 그곳에서의 생활은 의외로 만족스러웠다.
부모님과 떨어져 지내며 맛본 나만의 자유는 짜릿한 행복이었다. 먹고 싶을 때 먹고 자고 싶을 때 잘 수 있다는 것, 그 모든 것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사실이 가장 좋았다. 비록 좁은 침대에서 발이 삐져나와 저리기도 했고, 아침마다 환기되지 않아 답답했지만, 그 사소한 불편함은 자유가 주는 달콤함에 녹아내렸다. 밥과 김치가 무료로 제공되었고 작은 책상 위에 컴퓨터를 둘 수 있었던 그곳은 내게 세상에서 가장 편한 아지트였다.
처음에는 게으르게 지냈지만, 점차 부지런히 살고 싶어졌다. 새벽에 일어나 영어학원에 다니고, 낮에는 회사에서 일하고, 퇴근 후에는 헬스장에서 운동했다. 여유 시간이 생기면 거리를 거닐며 산책하거나 쇼핑을 했다. 그렇게 몇 달을 성실하고 즐겁게 보냈다.
그러다 아르바이트 기간이 끝나면서 고시원에 있을 명분이 사라져 집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러나 집에 오자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가 버렸다. 에너지가 사라지고, 취업 준비 기간이 길어지면서 부모님께 죄책감이 들었다. 먹고 자는 것도 눈치가 보였고, 운동이나 공부도 귀찮아졌다. 다시 나가 살고 싶었지만 돈도 없었고, 뚜렷한 이유도 없었다.
사실 부모님과의 관계는 오래전부터 매끄럽지 않았다. 속마음을 터놓는 대화는 거의 없었고, 마치 연극처럼 부모는 ‘부모가 할 법한 말’을, 나는 ‘자식이 할 법한 말’을 주고받았다. 겉으로는 괜찮아 보였지만, 속은 썩어 있었다. 취업 준비가 길어지면서 갈등은 더 깊어졌고, 함께 사는 것 자체가 숨 막힐 정도로 힘들었다. 결국 나는 집을 벗어나기 위해 ‘멀리 취업’이라는 구실을 만들었고, 그 길이 곧 독립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나는 10년을 홀로 자취하며 살았다. 그 과정에서 나는 정서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독립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스스로 인생을 꾸려 나갈 힘이 생겼고, 나라는 사람의 성향도 명확히 알 수 있었다.
독립의 본질은 단순히 집을 나와 자유를 얻는 것이 아니었다. 자유란 곧 규범을 스스로 정하고, 지키고, 책임지는 일이었다. 먹은 그릇을 내가 설거지하고, 월세를 내가 내고, 문제를 내가 해결하는 일들. 처음엔 낯설었지만, 곧 당연한 일이 되었다.
돌이켜보면 부모님 품 안에서 나는 마치 넘어질 기회를 빼앗긴 아이 같았다. 독립 후에야 비로소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며 단단해졌다. 보호막이 사라진 자리에서 작은 문제부터 큰 문제까지 모두 내 몫이 되었다.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지만, 나는 결국 스스로 설 수 있는 힘을 키워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