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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호정 Mar 27. 2021

너무 멀찌감치 물러서 있었기 때문

혜화문에서 성북쉼터까지

다시 풍경 속으로  /  이호정 그림



  다시 풍경 속으로

 불과 2주가 지났을 뿐인데 계절은 벌써 여름의 한가운데입니다. 그사이 녹음은 짙어지고 참을만한 했던 더위도 땀이 찐득찐득하게 들러붙는 무더위가 되어 집 밖을 나서는 게 두려울 지경이 되었지요. 대신 이번 순성은 혜화문에서 성북동 쉼터까지 1km가 채 안 되는 짧은 구간입니다. 꾸벅꾸벅 졸다 깨서는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서 4호선 환승구간으로 능숙하게 이동하는 아이들 뒤를 따라 금세 한성대입구역에 도착했어요.


「도보여행의 즐거움」에서 존 핀리는 ‘가장 즐거운 도보여행은 도시외곽을 따라 걷는 것’*이라 했지요. 확신하건데, 한양도성을 순성하는 일이야말로 가장 완벽한 방법으로 옛 도시의 외곽을 따라 걷는 일일 것입니다. 약간의 등산(?)이 동반되므로 아주 약간의 다리 아픔이 예상되긴 해도 즐거운 도보여행이 될 거란 사실은 분명하지요. 거기서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깊이 있는 통찰까지는 못하더라도, 우리는 한 도시가 거쳐 온 긴 시간의 궤적을, 또 우리가 살아가는(또는 살았던) 도시의 다채로운 풍경을 조망하며 실컷 감탄사를 내지를 수 있을 거예요.


 그러나 우리가 즐거웠던 건 그런 수만 가지 풍경 때문만은 아닐 것입니다. 저는 미니멀리스트도 아니면서 서울의 ‘너무 많은 것’들이 이상해 보였습니다.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이렇게까지 모여 살게 만들었을까 늘 궁금했지요. 그럴 때면 오래된 성돌 하나가 이렇게 말을 건네오는 거예요. 그건 너무 멀찌감치 물러서 있었기 때문이라고. 때론 가까이 다가가야만 알게 되는 것이 있다고.


 거기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만나게 될지 직접 가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겠지요. 길은 미처 몰랐던 것들을 짜~짠하며 보여줄 수도, 위로는 그만하면 충분히 해주었으니, 이제부터는 각성의 길로 나아가라며 주춤거리는 우리의 손을 잡아끌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자세히 보기 위해 우리는, 우리가 보았던 풍경 속으로 다시 들어가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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