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인지문에서 혜화문까지
달동네에서 장수마을로
지금부터 이 산보다 높은 건 저기 멀리밖에 없어 보입니다. 탁 트인 하늘 아래로 한양도성 안팎의 파노라마가 초여름 바람과 함께 장쾌하게 펼쳐지고 있으니까요. 남산에서부터 여기까지 이어진 성곽길은 다시 백악을 향해 굽이굽이 굽이쳐 돌아가고, 우리는 쉽게 떼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기며 놀이광장 옆 암문으로 나갔습니다.
보통은 지금부터 전개될 한양도성 바깥 성곽길의 아름다운 자세와 문양에 감탄하며 걸음을 서둘겠지만, 작은 샛길에 이끌려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 그쪽으로 가고 있는 사람들도 간간이 있을 거예요. 저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샛길을 따라간 곳에는 ‘삼선4구역 재개발예정구역’이라는 길고 긴 이름이었다가 이제는 ‘장수마을’로 불리는 성곽마을 하나가 옴폭하게 경사진 비탈면을 따라 자리 잡고 있습니다.
장수마을 역시 해방 이후 판잣집과 움막들이 성곽의 바로 아래까지 우후죽순 들어섰던 달동네였습니다. 겨우 비바람이나 막을 수 있게끔 얼기설기 덧대 지은 노후주택들은 시간이 흐르며 양기와나 슬레이트를 얹은 시멘트집으로 변모해 갔지만, 열악한 주거환경은 1980년대까지 그대로, 아니 그 이후로도 계속되었지요.
나는 오랫동안 달동네에 살았다. (…) 나는 거기 살던 내내 언젠가 탈출기脫出記를 완성하겠다는 생각으로 살았다. 거기서 벗어난 지 십 오년이 되었는데 이제는 그곳이 나를 벗어나려 한다. 그곳, 서울시 성북구 삼선동 일대가 재개발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내가 알던 이들은 이미 뿔뿔이 흩어졌다. 그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고 있을까? 그곳의 소로小路들과 사람들과 삶을 복원하고 싶었지만, 그것이 탈출기의 내용은 아니었을 것이다. 나는 주름 - 사람들의 동선銅線이 그어 놓은 - 을 잔뜩 품은 어떤 장소에 관해서, 끊임없이 현재로 소환되는 사람들에 관해서, 겹으로 된 삶에 관해서 말하고 싶었다. 내가 기억에 관해 이야기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권혁웅, 「마징가 계보학」, 142쪽, ‘시인의 말’ 중에서
재개발예정구역이 해제(2013)되고 오랫동안 함께 살아온 이웃들을 위해 ‘장수마을’로 거듭난 동네는 한양도성과 그림처럼 어우러지는 성곽마을의 풍경을 고스란히 남겨 두었습니다. 미로처럼 얽힌 계단을 방향감각 따윈 무시한 채 오르내리다 보면 간혹 무릎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긴 해도, 계단참에 정성껏 가꾸어 놓은 꽃 화분에 빙그레 미소가 지어지고, 골목 사이로 무심코 보이는 옛 성벽이 성곽마을이 아니고는 도저히 볼 수 없는 그림 액자가 되어 걸려 있었지요.
저는 지나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참 근사하지 않느냐며 함께 감탄하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오가는 사람은 보이지 않고, 아이들은 저만치 가버리고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