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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호정 Mar 20. 2021

벽화는 지워졌어도 이화마을은

흥인지문에서 혜화문까지

한양도성과 이화마을 / 그림 이호정


 

 벽화는 지워졌어도 이화마을은

 성곽의 안길이든 바깥 길이든 걷다 보면 금세 정상에 이를 낮은 산입니다. 바깥 길을 택했다면 복원된 성벽의 각자성석*을 보는 것으로 순성이 시작될 것입니다. 성곽은 옹벽 위로 이어지고, 높은 옹벽을 따라 언덕길을 설설 올라가면 지붕이 납작한 집들이 하늘과 맞닿으며 시야가 훤히 트입니다. 그제야 성곽길을 온전히 걷는다는 기분과 함께 암문 하나가 보이고, 유난히 낮게 뚫린 문을 통과하면 성곽 밖과는 사뭇 다른 느낌의 동네 하나가 우리를 반겨줍니다.


 작은 공방과 기념품 상점, 전망 좋은 카페들, 그리고 비슷비슷해 보이는 이층주택 너머로 내사산으로 둘러싸인 도심 풍경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펼쳐지는 동네입니다. 빛바랜 벽화 사이를 오가는 방문객들은 저마다 사진 찍기에 여념 없고, 까마득한 계단 위로 층층이 자리 잡은 낡은 집들이 성곽과 함께 높고도 낮은 마을을 이루었지요. 이곳이 한양도성이 품은 여러 성곽마을 중에서도 일찍이 유명세를 치렀던 ‘이화마을’입니다.


 원래 이화마을이 자리 잡은 낙산 기슭은 배밭이 많아 봄이면 배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경치 좋은 곳이었습니다. 배밭에는 마을 이름의 유래가 된 ‘이화정’이라는 정자가 있었고, 초대 대통령 이승만의 사저였던 ‘이화장’ 주변은 예로부터 ‘신대申臺’라 불리던 명승지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한양도성에 인접한 여느 구릉지처럼 낙산도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는 동안 토막과 판잣집이 빼곡한 판자촌으로 변모하게 되지요. 해방 후에야 이화장 주변으로 국민주택단지*가 조성되면서 일부 불량주택이 개선되지만, 구릉지형과 문화재 주변이라는 상황에 부딪혀 주택들의 노후화는 계속되었고, 그로 인해 주거환경이 점점 더 악화되었습니다.


 낙산 프로젝트*라는 공공미술사업으로 이화마을에 벽화가 그려지기 시작한 것은 2006년의 일이었습니다. 무채색 계단과 담벼락, 벽면을 도화지 삼아 다채롭게 그려진 벽화들은 무표정했던 마을에 놀랄만한 생기를 불어넣었습니다. 그 후로도 벽화와 조형물 작업이 꾸준히 진행되면서 마을은 드라마의 배경이 되고, 여러 방송 매체에 소개되며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지요.


 독특한 구릉지 지형을 끼고 화면을 가득 메운 이색적인 풍광은 수많은 방문객을 불러 모았습니다. 재개발을 둘러싼 주민들의 고민과 갑자기 증가한 방문객들로 인한 문제들도 함께였지요. 급기야 일부 주민들에 의해 유명했던 벽화들이 하나둘 지워지면서 얼룩덜룩한 색의 흔적만 남은 계단 앞에는 방문객들을 향해 조용히 해달라는 경고푯말이 낯설게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문제는 이화마을만의 것은 아니어서 여러 생각이 들게 합니다. 낮은 산, 오래된 성곽 아래 아담하게 자리 잡은 마을은 낡아가고 있었지만, 나란히 붙어 지은 영단주택의 지붕 너머로 펼쳐진 풍경은 더할 나위 없이 근사했습니다. 벽화는 지워졌어도, 마을의 지나간 기억들은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골목길 풍경이 되어 여전히 발걸음을 쭈뼛쭈뼛 마을로 향하게 합니다. 그러니 우리 방문객들은 무엇보다 목소리와 발소리를 낮추며 걷는 일을 해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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