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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호정 Mar 16. 2021

있고 없음의 차이

다산동 성곽마루에서 이간수문까지

복원된 이간수문  /  이호정 그림



   있고 없음의 차이

 사실 공간적 위계가 비교적 분명한 지방의 도시에서 자란 제게 너무 많은 중심지가 존재하는 서울은 좀 이상한 곳이었습니다. 하나의 ‘구區’가 이미 하나의 도시였고, 그런 수십 개의 도시가 별다른 완충공간 없이 단단하게 맞물려 있는 형상이었지요. 그런 서울에서 한양도성이 만들어내는 ‘원형原形’으로서의 공간감은 오히려 당연하고 익숙하게 느껴졌습니다. 한양도성을 시작으로 외연에 외연을 거듭해온 서울의 모습을 그려보고 나서야 서울이라는 거대한 덩어리가 이해될 수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서울의 공간적 차원에서 이해된 것이었기에, 한양도성이 ‘있음’으로 해서 안과 밖이 엄히 구별되고, 성을 ‘쌓음’으로 해서 나라의 위상을 공고히 하고자 했던 축성의 의미까지 정확히 알지 못했습니다. 저에게 한양도성은 옛 서울과 지금의 서울을 구분하는 경계선이자, 아름다운 조형물이었습니다. 그렇게 몇 번의 순성을 하던 즈음 때마침 출간된 유홍준의 답사기를 읽다가 ‘도성을 쌓아 도읍으로서 격식을 갖추라’*는 문장에 닿는 순간,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한양도성의 의미가 단박에 그려지는 것이었습니다.



 태조 이성계가 무학대사에게 이 자리가 도읍지로 어떠냐고 물었을 때 그가 전제로 내세운 첫마디는 ‘도성을 쌓으면’이었다. 고려 시대까지 평범한 고을이었던 한양과 조선 왕조가 수도로 건설한 한양의 차이는 도성이 있고 없고의 차이였다. 그리고 생각해보라, 한양도성이 있는 서울과 없는 서울의 역사적 품격의 차이를.
                                                                                          유홍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10-서울2』, 48~49쪽



 이후로 한양도성을 순성하는 동안 늘 ‘있고 없음’의 차이를 떠올렸던 것 같아요. 그 차이를 하나하나 말로 설명해내지는 못하지만, 그것이 만들어내는 느낌은 어렴풋이 알 수 있었습니다. 길을 걸으며 있고 없고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수많은 옛 풍경들과 마주했기 때문이었지요. 다산팔각정에서 이간수문까지의 한양도성 역시 있고 없음의 차이를 극명하게 드러내며 우리에게 거기 얽힌 이야기들을 들려주었습니다.


 후텁지근한 더위 속에서 이번 순성도 잘 마쳤습니다. 아이들은 염려했던 것보다 훨씬 잘 걸어주었고, 때때로 즐거워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이제 겨우 시작이라 우리의 순성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끝나게 될지 알 수 없지만, 칠흑 같은 숲으로 들어가라며 자꾸만 등을 떠다밀던 조지프 캠벨의 말을 떠올리며 걸음이 멈춘 곳에서 시작하고, 강렬하게 마음이 끌리는 곳으로 찾아가다 보면 그럭저럭 가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복원된 이간수문 아래를 지나 건너편 유구전시장까지 모두 둘러본 후에야 지하철역으로 향했습니다. 다음 답사 때는 아이들에게 교통카드를 사줘야겠다고 생각하며 승강장으로 들어서니 이번 열차는 마천행. 우리는 편의점에서 사 온 음료수를 홀짝거리며 다음 열차를 기다렸습니다. 셋이서 나란히 앉을 자리가 나기를 바라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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