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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호정 Oct 07. 2021

남산이 이런 산이었어?!

다산동 성곽마루에서 숭례문까지

남산구간 한양도성 / 그림 이호정



 남산이 이런 산이었어?!

 9개월 만에 다시 다산동 성곽마루를 찾았습니다. 버티고개역의 공포의 에스컬레이터는 한번 타 봤다고 처음처럼 놀랍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대단한 포스를 풍기며 사람들을 태운 채 올라갑니다. 지하철역을 나와 역시 한번 와 봤다고 익숙한 동네를 가로질러 오르막길을 걸어갑니다. 편의점에서 각자 취향껏 고른 삼각 김밥과 음료수를 꺼내놓고 정확히 그때 앉았던 성곽마루 그 자리에 다시 앉았습니다. 인생은 돌고 도니까.


 얼굴을 마주 보고 앉아 자기가 고른 삼각 김밥이 최고라고 떠들어대며 둘러본 풍경은 작년 여름 보았던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그때와 반대로 우리는 다산동을 등지고 한양도성의 남산구간 이정표가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걸어갈 것입니다. 아니, 올라갈 것입니다. 펜스 너머로 보이는 오월의 숲은 그야말로 초록의 대잔치. 무서우리만치 가득 찬 초록들 사이로 오늘은 또 어떤 길이 펼쳐질지 궁금증이 더해집니다.


 다산동 성곽마루에서 남산으로 이어지는 한양도성은 호텔부지와 도로로 단절되어 그냥 지나치기 일쑤지만, 그 자리에는 원래 ‘남소문’라 불리던 성문이 있었습니다. 광희문으로 빙 돌아가지 않고 한강나루로 곧장 오가기 위해 세조3년(1457) 도성의 동남쪽에 만든 문이었지요. 그러나 길은 좁고, 다니는 사람도 많지 않은 데다, 풍수상 좋지 않다는 이유로 축성 후 12년 만인 예종 원년(1469) 문은 폐쇄되고 언제 소실되었는지 모른 채 잊히게 됩니다.


 그러고 보니 저 아래 ‘버티고개’도 옛날 옛적에는 도적 떼가 몸을 숨길만큼 고개가 깊고, 인적이 드문 곳이었다던데…. 다산동 성곽마루에서 본 풍경도 그렇고, 여기까지 걸어오면서 새삼 느낀 건 남산 자락이 무척 넓고 깊다는 것이었습니다. 더구나 남산구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성곽 초입은 까마득한 오르막길입니다. 가파른 경사면을 따라 거칠고 불규칙하게 쌓은 체성* 위로 옥개석(지붕돌)이 없는 기이한 모양의 성곽이 어두컴컴한 숲 사이로 이어지지요. 해가 들지 않는 어두운 숲, 인적 없는 계단, 음습한 분위기에 질겁한 아이들이 묻습니다.

 

  “엄마! 우리 진짜 여기로 가는 거야? 사람 한 명도 없는데?”
  “그러게, 얘들아, 지옥의 계단에 온 걸 환영한다!”
  “엥, 망했다!!!”


 정상으로 가는 길은 ‘남산이 이런 산이었어?!’ 묻고 싶을 만큼 울창한 숲길입니다. 지금은 계단이라도 설치되어 있지만, 가만히 서 있기도 힘든 산길로 커다란 돌들을 이고 지고 올랐을 옛사람들의 수고를 생각하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지요. 느낌상 거의 다 왔다는 기분과 함께 계단에서 이어지는 전망데크에 올라서니 남산 동쪽의 파노라마가 다채롭게 펼쳐집니다. 건물이 깨알같이 들어선 곳이 낙산이고, 가려서 보이지 않지만, 저기쯤이 광희문, 또 저쪽은 분명 흥인지문 자리입니다. 그렇게 가늠해보면 여기서 낙산으로 이어지는 한양도성의 실루엣이 고스란히 느껴지지요.


 한양도성과 나란히 걷는 계단은 끝이 나고 길은 숲속 오솔길로 향해 있습니다. 흔한 참나무 군락 사이로 이름 모를 산나무들이 싱그러운 기운을 뿜어내고 있습니다. 길가로 핀 야생화와 습기를 가득 머금은 대형 양치류들이 남산의 식생이 무척 다양하다는 것을 보여 주었지요. 이마의 땀을 닦으며 내려오는 외국인 한 명을 만났을 뿐, 인적이라곤 없던 숲길을 고음의 산새 소리 들으며, 날랜 다람쥐들과 눈 마주치며 걷는 즐거움을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어느새 N타워가 보입니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남산공원길과 길이 합류되는 쉼터에서 잠시 쉬면서 다산동 성곽마루에서 시작된 순성길을 떠올려봅니다. 초기 석성의 투박함과 호젓한 숲의 분위기에 흠뻑 빠질만한 멋진 길이었어요. 다리 아픔이 조금 있을 뿐…. 우리는 거대한 푸른 나무들이 자아내는 초여름 분위기를 만끽하며 다시 모습을 드러낸 한양도성의 성곽을 따라 남산 정상으로 올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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