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문터에서 인왕산 아래까지
아이들 뒤통수를 보며 걷는 일
아이들의 시간과 어른들의 시간은 다르다고 하지요. 지금은 아이들도 다 커서 시큰둥할 뿐이지만, 답사를 막 시작했을 때만 해도 엄마가 사진 찍을 장소를 물색하는 찰나의 시간이 아이들에겐 지루해서 못 견딜 긴긴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아이들 성화에 마음이 급해져서 일단 찍고 보자 했더니 답사 후에 정리해야 할 고만고만한 사진만 수백 장이었습니다. 주로 뭔가를 하겠다거나, 또는 하지 않겠다거나 고집을 부리는 건 아들 쪽이고, 딸의 경우는 세상 재미없다는 표정을 짓는 쪽인데, 그녀의 안색을 살피며 슬금슬금 눈치를 보는 쪽이 바로 저였습니다.
급기야 ‘길을 걷다가 우연히 마주하게 된 오래된 풍경’ 따위는 집어치우고, 재답사를 하지 않기 위해 지도 앱을 통해 어디쯤에서 사진을 찍을지 미리 정해 두는 지경에 이르렀지요. 그러나 그마저도 막상 가보면 별 볼 일 없어서, 결국은 답사가 아이들에게 단순히 엄마를 따라다니는 일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경험이 되게 해야 한다는 깨달음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런 고민 끝에 답사 중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장소나 이벤트가 있으면 슬쩍 끼워 넣어 한두 시간은 온전히 그들의 시간이 될 수 있도록 애를 썼던 것이지요.
그러나 도심의 몇몇 장소들을 제외하고 순성길 대부분은 그런 이벤트와는 무관한 일상의 공간이었습니다. 별일이란 게 있을 리가요. 길을 걸으며 주변을 휘휘 둘러보다가 사진을 찍고, 길옆 가게에서 파는 하드를 사 먹는 게 우리가 하는 일의 전부였어요. 사실 바짝 순성을 하던 처음 몇 달간은 더할 나위 없이 좋았습니다. 아이들을 이런 역사적 장소까지 데려와서 소위 체험학습(?)까지 시키니 잠시 훌륭한 엄마가 된 것 같은 기분도 들었지요. 그러나 그런 기분에 사로잡혀 우쭐대다가 어떤 날은 아이들도, 저도 기분이 왕창 상해서는 서로 말 한마디 없이 집으로 돌아오곤 했습니다.
잘 다녀온 날도, 그렇지 못한 날도 있었지만, 어느 날부터인가 저도 모르게 아이들 뒤통수를 보며 따라 걷는 일이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가는 길들이 좁은 골목이거나 산길이어서 셋이 나란히 갈 수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너희들이 앞장서면 엄만 따라갈게, 하며 쫓아갔더니 빨리 오라며 아이들을 재촉할 일이 확실히 줄게 되었지요.
거기까지만 했어도 좋았을 텐데, 오랫동안 꿈꿔왔던 것을 향해 나아간다는 사실(그것도 제 착각이었지만…)에 빠져 아이들을 다그치곤 했습니다. 갈 길은 먼데 쭈그려 앉아 개미집 구멍 따위를 휘젓고 있거나 시답잖은 운동기구에 빠져서 갈 생각 없는 아이들을 재촉하며 그놈의 ‘빨리, 빨리’ 소리를 외쳐대며 돌아섰을 땐, 아이들 얼굴이 금세 시무룩해졌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엄마, 나 내일 답사 안 가면 안 돼?”
순성하기 좋았던 꼬꼬마 시절이 지나가고 딸아이가 5학년 무렵이 되었을 때, 오랜만에 답사 갈 준비(물론 재답사였어요.)를 하고 있던 제게 딸아이가 무심하게 건네던 그 말에 도저히 ‘안 돼!’라는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더는 맛있는 짜장면과 답사기념품(이라 쓰고 이제는 ‘방탄굿즈’라 읽습니다.)으로 딸아이를 꼬드길 수 없다는 사실을 저도 받아들여야 했지요. 그렇게 작은 녀석만 데리고 몇 번의 재답사를 더 하는 동안 딸아이는 훌쩍 커서 키가 저만큼이나 자라 있었습니다.
돌아보니 아이들과의 여행에서 정작 중요했던 건, 매시간 알차게 꾸며진 체험 거리를 제공하고, 보람찬 일정 속으로 아이들을 밀어 넣는 것보다 그들 스스로 그들 자신의 여행을 시작하고, 보내고, 마무리할 수 있도록 몇 보쯤 떨어져 지켜보고 기다리는 일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