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례문에서 돈의문터까지
비록 탄성을 자아내지 못할지라도
그날 소의문터에 도착했을 땐 순서도, 계획도 없이 시작했던 순성을 모두 마치던 순간이었습니다. 우리는 가면 안 되는 길을 빼고는 한양도성의 안과 밖을 모두 걸어서 소의문터에 도착했습니다. 저는 감개무량하여 눈물이라도 한 방울 날까 싶었지만, 담벼락 아래 어색하게 놓인 소의문터 표석이 조금 애처로울 뿐이었어요. 순성의 마지막을 좀 더 드라마틱한 곳에서 했었어야 했나, 그런 생각이 들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그게 그렇게까지 중요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다니는 동안 그 자리가 중요한 역사의 현장이었음을 말해주는 많은 표석들을 보았습니다. 답사 중에 우리가 빼놓지 않고 했던 일들 중에는 그런 표석 앞에 잠시 멈춰 서는 것도 있었지요. 대부분 누군가 태어났거나, 살았거나, 또는 죽었던 자리였고, 무언가 있었던 곳들이었습니다. 아무리 성군이셨다 한들 ‘세종대왕 나신 곳’ 표석 앞에서 감격에 겨울 일은 없었지만, 오래전 그곳에 살았던 누군가의 삶과 죽음과 사건이 지나는 길에 한 번쯤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다는 걸 깨닫기까지 거기 적힌 단 몇 줄의 설명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늦은 오후가 되어 정동길을 빠져나와 길 건너 돈의문터 앞에 섰을 때, 대한제국 마크가 선명하게 찍힌 단선 전차가 홍예 아래로 미끄러지듯 들어가는 모습을 상상하며 ‘과거로의 여행’을 이야기하기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순성의 경험이 아이들 기억 속에 뜻깊게 남아주기를 기대하는 엄마의 그림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걷던 길 어디 즈음에 돈의문이 있었고, 돈의문 아래를 수없이 오고 갔을 옛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그 빈자리에 서 보는 것도 괜찮을 것입니다. 아이들은 그때 우리가 심드렁하게 서서 바라보던 그곳이 돈의문터였다는 사실은 다 잊고, “그때 딸기 빙수 엄청 맛있게 먹었던 데 있잖아!”라고 말해 줘야 그제야 “아아, 거기!?”하면서 아는 체를 할 뿐이지만요.
우리는 돈의문터를 뒤로 하고 사람들로 붐비는 광화문사거리에 도착했습니다. 그들 사이를 비집고 지하철역으로 내려가면서 순성을 다 마쳤다 해서 뭐가 달라지겠냐 마는, 하기로 했던 일을 다 했다는 사실이 중요했습니다. 순성은 끝났지만, 남은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