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이지만 돈을 벌기 시작한 그는 자전거를 구매했다. 호주 최대 중고거래 웹사이트, 검트리에 올라온 중고 자전거다. 비싼 가격은 아니었지만, 돈을 아끼는 그였기에, 돈을 건네는 손이 벌벌 떨렸다. 그래도 막상 자전거가 생기니 신이 났다.
호주는 한국보다 안전에 철저하다. 호주에서 자전거를 탈 때는 헬맷을 반드시 착용해야 한다. 그래서 보통 자전거를 살 때 헬맷도 따라온다. 헬맷 이외에, 자전거 앞 뒤로 야간등을 설치하는 것도 의무다. 그의 자전거도 야간등이 달려있다. 건전지를 이용해 반짝반짝 빛나는 야간등은 아니지만, 불빛을 비추면 반짝거리는 소재로 만들어진 등이다. 그는 이 정도면 불법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의 야간등은 그가 도서관에서 이력서를 날리는 동안, 알 수 없는 이유로 떨어져 나갔다.
자전거는 그의 발이 됐다. 그는 초밥집 일이 없는 날이면, 먼 곳까지 자전거로 나가보곤 했다. 이력서 뭉치가 배낭에 있기는 했지만, 이전처럼 절박하게 뿌리진 않았다. 정말 마음에 드는 곳에만 이력서를 건네주었다. 그도 약간의 여유가 생겼다.
그는 한국에서 자전거를 탈 때 헬맷을 쓴 적이 없다. 헬맷은 불편하고 거추장스럽다. 왠지 헬맷에서 다른 사람의 머리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그는 인적이 드물거나, 너무 덥거나 할 때에는 으레 헬맷을 벗어서 핸들에 걸고 달렸다. 헬맷을 쓰고 있다가 벗었을 때의 쾌감은 남다르다.
그런 그도 간혹 헬맷의 중요성을 느낄 때가 있었다. 이유는 다름 아닌 '새'다. 호주는 대륙에 필적할 만큼 커다란 섬이어서 그런지, 새들이 공격적이다. 자전거를 타고 달리다 보면, 자신의 영역을 침범한 라이더를 응징하고자 달려드는 새들이 꽤 있다. 새들은 주로 헬맷 부분을 발로 때리고 날아갔다. 그렇기 때문에, 호주의 라이더들을 보고 있노라면 헬맷에 방어선을 구축한 것이 눈에 띈다. 가장 많은 형태는 철사를 이용한 방어다. 헬맷의 통풍을 위해 구멍이 뚫려 있는 부분에, 옷걸이나 철사를 이용해 삐죽삐죽 튀어나오는 방어선을 구축한다. 그러면 새들은 헬맷까지는 닿지 못하고, 튀어나온 철사나 옷걸이를 때렸다.
그날은 그가 이력서도 뿌릴 겸, 구경도 할 겸 멀리 나갔다가 돌아오는 중이었다. 거리도 멀었고, 길을 몇 번인가 잘못 들어 어느새 시간이 자정을 넘겼다. 그는 길 찾기를 구글 맵에 의지했기 때문에, 자전거를 탈 때도 한 손으로는 핸드폰을 들었다. 처음 가는 길이면 시간이 배로 들었다.
밤이 너무 늦어, 빨리 갈 생각은 이미 포기했다. 그는 처음 보는 주택가를 지나고 있었는데, 컴컴하고 어두웠다. 헬맷은 핸들에 걸어놓고, 핸드폰을 보며 천천히 달린다. 밤공기가 선선하고, 바람이 산들산들 불어온다. 그는 기분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