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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loe J Mar 12. 2024

인간실격 - 다자이 오사무

전혀 공감하지 못하고 나와는 인연이 닿지 않은 책이라는 생각으로 마지막페이지를 덮었다. 모임에서 함께 읽는 책이었고 어쩔 수 없이 다시 쥐어짜 뭔가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생각의 끝에 알았다.


나는 인간실격자였다.


인간에 무슨 조건이 있으랴? 그냥 태어나면 인간이고, 그게 어떻게 부정될 수 있다는 말인가? 도깨비 같은 요조도 인간이고 비열한 호리키도 인간인 것을... 모두가 인간인데 인간으로 어떻게 인간에게 자격을 줄 수 있나?


제목부터 마음이 열리지 않았다. 요조가 쓴 수기 3개로 이어진 본문도, 서문과 후기의 책을 엮은 이야기 밖의 설정도 익숙하지 않았다. 주인공 요조의 생각과 글의 느낌도 내 짧은 독서력을 체감하는 것 같아 불편했다.


인간이 실격이라면 어떤 상황일까를 생각해 봤다. 흔히들 좀 허술하고 실수할 때 "인간적"이라고 우스갯소리고 말하니 그렇다면 기계처럼, AI처럼 살아내는 게 인간답지 못한 것일지도 모른다. 인간의 특징이 사랑하고, 마음을 주고받고, 불쌍한 무엇을 보면 연민을 느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그게 없다면 인간답지 못한 걸까? 의문이 들었다. 인 듯 아닌 듯 애매했다.


요조는 자신을 인간실격자라고 말한다. 배신당하고 이용당해 중독에 빠지게 되고 결국 가족으로부터 버림받았을 때 인간실격이라는 희망 없는 딱지를 스스로에게 붙여버린다. 요조는 가족으로부터 여러 번 버림받았다. 첫 번째 자살시도에도 가족으로부터 따뜻한 말 한마디 듣지 못했다. 요조의 사회 부적응은 가족의 골칫거리가 되었고 마지막에는 정신병원으로, 또다시 죽음을 기다리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곳으로 치워진다. 요조의 인간실격은 가족에게 버림받으면서 왔다. 이 사실의 자각은 내 아픔을 건드렸다.


'난 감정이 없어. 난 사람이 아니야.'


한 달 동안 내가 나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1년 동안 편입시험을 준비하고 15군데의 학교에서 불합격통지를 받았다. 그때 내가 했던 말이다.


지역에서 좋은 고등학교를 전교생 600명 중에 5등으로 졸업한 아빠는 가난한 형편 때문에 농사에, 식당에서 아르바이트까지 하면서 중고등학교를 나왔다. 돈이 없어 대학교를 포기했고, 내 증조할머니의 유언으로 어렵사리 돈을 빌려 교대를 나올 수 있게 되었다. 빈손으로 시작해 교육장까지 하셨으니 집에서 공부만 하면 되는데 만족할 만큼 성과를 못내는 삼남매가 이해가 안 되었다. 나는 기대 많은 첫째였다.  


1년 차 편입시험에서 모두 실패하고 집에 가 있을 때 아빠는 한 달 내내 화난 사람이었다. 그것도 나만 보면 격노했다. 이틀에 하루씩 거의 격일로 퇴근하면 잠들 때까지 도망갈 곳도 없는 나를 몰아세웠다. 편입책만 보면 화가 나시는 듯했다.

"1년 공부해서 안되면 10년을 해도 안돼. 당장 때려 치워."

"공무원 시험 공부나 해!"


일단 시작된 날에는 이런 말을 4시간 동안 들어야 잠을 잘 수 있었다. 대답을 안 해도 안 되고, 가만히 있으면 반항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나는 아빠가 말을 시작하면 커다란 가방에 편입 관련 책을 넣었다. 공무원시험 책을 준비하고 공부를 시작했다. 사실 공부가 안 됐다. 불안 속에서 그냥 책상에 앉아 최선의 편안을 찾았다. 살고 싶어서...


"그따위 마음으로 시험준비를 했으니 안 되지! 더 해보겠다고 말도 안 해?"

"당장 다 떼러 쳐."


이틀뒤에는 모두 접어버린 내가 꼴 보기 싫으셨다. 그럼 나는 다시 주섬주섬 쌌던 편입 짐을 풀고 공무원시험 책을 가방에 챙겨 넣었다. 그리고 이 가방 싸기는 수도 없이 반복되었다. 이 집을 벗어나야만 살 것 같았는데 도저히 벗어날 방법이 없었다. 어디서 아르바이트라도 하겠다고 했더니 아빠의 체면을 구긴다며 더 난리였다.


가방을 쌀 때마다 내가 나한테 말했다.

"난 감정이 없어. 난 사람이 아니야."


한 달을 한번도 울지 않고 그렇게 살았다. 한 달 동안 뇌가 쪼그라드는 느낌이었다. 어김없이 다시 돌아온 아빠의 폭풍 같은 시간. 하루는 의자를 빼고 책상밑에서 편입책을 가방에 넣고 있다가 아무런 생명력 없는 책상이 나를 안아주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책상밑이 어찌나 포근했나 모른다. 표정을 숨길필요도 없었고 슬픔을 외면할 필요도 없었다. 아빠의 성화에 엄마도 구해줄 수 없던 내 마음에 위안이 되는 곳이 거기뿐이었다. 가족에게도 나는 인간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요조였다.


나는 살아있다. 어렵게 1년을 더 공부할 기회를 얻었고 간신히 합격했다. 또다시 그 상황이 된다면 살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는 그 일을 잊었다. 나는 절대로 잊을 수 없는... 내가 바꿀 수 있는 건 내 마음뿐이다. 내 기준에 부모답지 못했던 기억을 헛되지 않게 만들 수 있는 것도 나뿐이다. 나는 누구의 명패일 뿐이었을지라도, 나는 내 가족에게 조건을 부여하지 않겠다. 그것만이 내가 인간다움을 유지하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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