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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loe J Mar 23. 2024

 적의 벚꽃 - 왕딩궈

사랑이라는 단어의 시작은 아름답기도 하고 따뜻하고 빛나고 기쁨에 숨 가쁘다. 사실 사랑의 대부분 기간은 그렇지 못하다. 때에 따라 슬프기도 하고 익숙함에 무뎌지는 게 기본이다. 주인공과 추쯔의 사랑은 아프다. 행복이란 걸 몇 번이나 느끼고 자랐을지... 암흑과도 같은 어린 시절을 보낸 주인공에게 사랑이 다가왔다. 그것은 우연이고 운명이었다. 예견되지 않은 사랑에 무방비로 침입당해 둘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사랑만으로 행복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 가난한 '먼지 두 톨의 결합'은 시작에서부터 불안을 갖고 있었다.


추쯔라는 사랑이 다가오며 일도 잘 풀리고 좋은 일이 겹친다. 행복 속에 있을 때 이들은 그 행복이 그들의 운명이며, 앞날이고 영원할 것만 같았다. 보통 우리네처럼... 운명이 이들을 불행이라고 점찍어 놓았던 게 아니라면 도대체 왜 잘 살고 있는 그들에게 지진, 감염병이라는 어색하게 끼어든 불행으로 삶을 흔들어 놓는 건지... 초라하고 소박한 그들의 사랑을 응원하며 책 속으로 들어가 책 속 세상을 함께 원망해 본다. 그들에게 어쩔 수 없는 운명 같은 천재지변은 그들의 굳건해 보였던 사랑에 작은 먼지가 들어가게 했다. <견딜 수 없는 사랑>에 열기구 사건처럼...


그런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사랑전선에 아무 일 없어 보였다. 하지만 사랑이란 혼자 우뚝 설 수 없다. 추쯔의 마음이 지진에 흔들린 땅과 함께 흩어지고 마음의 건강을 잃게 되면서 서로 함께 기대고 있던 사랑은 한쪽으로 기운다. 사랑해서 결혼하고 남은 평생을 함께하는 부부에게 관계가 계속 건강하기란 쉽지 않다. 서로를 위하고 사랑하는 마음은 기본이고 경제적이든, 건강이든 어느 한구석이라도 기울면 그 위에 버티고 있는 사랑까지 위태로워진다. 하지만 주인공은 버텨낸다. 자신의 불우했던 과거를 기억하며 단 하나 지켜내야 했던 가족이었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특히나 가난으로 사랑을 지켜내지 못한 아버지를 보며 사회적 성공에 열을 올린다.


다시 그들의 운명이 해피엔딩을 향해 간다고 생각할 즘 행운처럼 나타난 불행의 씨앗을 만났다. 전기 주전자. 전기 주전자의 작은 부리가 물어다준 추첨권 당첨이라는 행운은 소설의 처음부터 그려진 주인공의 끝이 보이지 않는 기다림을 가져왔다. 사람이란 얼마나 한 치 앞을 알 수 없나를 생각해보게 했다. 불행이라는 가면을 쓰고 찾아오는 행운과 행운처럼 날아드는 불행.


행운의 모습을 한 불행이 가져다준 수동카메라는 다행이라는 듯 추쯔의 밝음을 가져왔고 어둠 속으로 서서히 걸어 들어가게 만들었다.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운명은 찬란한 벚꽃과 인자하고 덕망 있는 뤄이밍의 모습으로 그들을 맞이했다. 뤄이밍에게도 추쯔가 행운처럼 날아든 불행이었는지도... 사진 한 장의 두께만큼 가까이 서게 된 그들은 결국 한 사람의 덕망을 지우며 돈이라는 무기로 나비처럼 연약한 추쯔를 쓰러뜨렸다. 그리고 평생을 지켜온 인격과 자랑거리였던 벚나무와 함께 뤄이밍도 스스로 쓰러졌다. 오랜 기간 자랑하던 벚나무에 소금물을 뿌리며 그는 자신을 수도 없이 죽였으리라... 죽은 것은 벚꽃나무였지만 결국 뤄이밍 그 자신이었다.


주인공의 삶은 온통 추쯔를 위해서였다. 그런 단 하나의 순결하고 고결했던 사랑에 의심이 생기는 순간 주인공은 추쯔의 상처마저도 경멸하게 된다. 믿은 만큼 분노했다. 사랑은 결국 의심 앞에 힘없이 무너진다. <견딜 수 없는 사랑>의 복잡하고 어지러운 사랑처럼... 주인공도 자신의 프레임에 상대를 끼워 맞춰 사랑을 욱여넣었다. 지켜야 할게 그녀뿐인 주인공의 울타리는 좁디좁았다. 프레임에서 벗어난 추쯔, 순결을 빼앗긴 그녀가 내려앉아 쉴 수 있는 곳은 주인공 곁에는 없었다. 적어도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는 그녀를 잃고 그녀의 발길이 닿을지도 모를 곳에서 추쯔를 기다리지만 날개를 다친 나비는 같은 자리에 내려앉지 않는다. 그의 사랑은 결국 여백 없는 완벽을 이루려 했던 욕심의 결과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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