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6-3. 알면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월든 - 키워드 : 자연

by Chloe J

공중보건의였던 남편을 따라 1년 동안 울릉도에서 살았던 적이 있다. 그곳은 육지라고 말하는 이곳과는 피부로 느껴지는 자연이 다르다. 서울에서 한여름에 느끼는 눈부심도 울릉도의 흔한 오후의 눈부심과는 비교할 수가 없다. 멋이 아니라 앞을 볼 수 없어서 선글라스가 필수다. 서울에서 보는 밤하늘에는 별이 많지 않다. 어쩌다가 보이는 별도 인공위성을 의심하게 만든다. 울릉도 맑은 밤은 봄, 여름, 가을, 겨울 할 것 없이 별이 가득하다. 너무 많이 흩어진 별을 보면 도저히 별자리를 추측해 볼 길이 없다. 바닷물도 보통 우리나라 바다와 다른 모습이다. 뜰채만 있으면 수십 마리 물고기도 잡을 것 같다. 실제로 그렇게 장사하는 선술집도 있다. 주문이 들어오면 뜰채를 갖고 가게 앞 절벽아래 조각배에 오른다. 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극단적인 아름다움이 있다.


극단적인 그러나 이곳 사람들은 익숙한 두려움도 느껴봤다. 태풍이 올 때면 도동항 넓은 광장이 모두 파도에 잡아 먹힌다. 광장에서 한참 떨어진 기념품 상점들이 줄 서있는 골목에서 그 파도를 바라본 적이 있었다. 어떤 현상을 앞에 두고 움직일 수도, 말을 할 수도 없을 만큼의 두려움 섞인 경외감이었다. 집체만 한 파도라는 표현이 있지만 분명 부족한 표현이다. 광장을 한입에 넣어버리는 파도는 가파른 오르막길 골목까지 허연 물거품을 내민다. 인간이 만든 구조물들이 한낱 종잇장과 같이 씻겨 내려가버렸다. 돌로 된 절벽을 따라 나 있는 산책길은 우리가 늘 가는 곳이었다. 그곳은 바다에 속한 곳이 되어버렸다. 사람들은 우리가 자연을 정복한양 이용하고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나 자연의 아량 없이 우리는 한순간도 살아낼 수 없다.


살랑거리는 봄바람에서, 모두 녹여버릴 듯 강렬하게 내리쬐는 태양에서, 어느새 소멸하듯 떨어지는 낙엽에서, 아무것도 품어줄 생각이 없어 보이는 단단한 겨울땅에서 우리는 자연에게 배운다. 흘러가는 강물도 바라보는 이에 따라 그 마음가짐에 따라 큰 가르침을 주기도 한다. 자연은 우리를 포용하고 품어주고 그들의 자리를 내어준다. 인간의 수명에 비하면 영원할 듯 한자리를 지키는 나무들을 바라본다. 100년도 채 살지 못하면서 미워하고 시기하며 시간을 낭비하는 우리는 결국 무엇을 위해 그러는 걸까? 겨우 문제집 숙제 때문에 세상 무엇을 줘도 아깝지 않을 딸에게 상처가 되는 말을 하곤 하는 나를 되돌아본다. 숲에서 자라난 굽이치는 파도를 닮은 나무가 자기 자리를 지키며 산을 이뤄낸다. 하나하나가 모두 그 자체로 빛나고 소중하다. 부모의 역할은 학습매니저는 아니었음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자연을 통해 다시 한번 배운다. 사람은 말로, 글로 배우는데 익숙하지만 말없는 자연이 주는 가르침을 넘어서기 힘들다.


우리는 자연에게 배우며 자연의 일부로 살아가면서도 마치 자연을 소모품처럼 쓰고 있다. 벗어나 살 수 있을 것처럼... 자연이 소중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는 가장 큰 원인은 사회적 경쟁의식이다. 같은 이유로 우리는 자연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도 돌보면서 살아갈 여유가 없다. 자신을 목표를 이뤄내기 위한 도구화 하듯 자연도 이용의 대상으로 생각하며 살아왔다. 환경 이상이 극으로 몰리는 현실이 그 증거다. 지금까지 잘못 생각했다고 다시 시작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건강이 나빠졌다고 다시 태어날 수 없는 것처럼 이미 많이 망가진 현재의 자연을 지금부터라도 보듬으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자연과 함께 살기 위해서는 가장 중요한 할 일은 자연을 느끼는 데 있다. 자연이 거기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를 지각하고 감사의 마음에까지 도달할 수 있다. 그리고 그다음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다. 나는 자연과 나를 위해서 지금 할 수 있는 쓰임을 다하는 생활을 하려고 노력한다. 물질이 풍요롭다 못해 넘치는 이 시대에 나에게 주어진 작은 물건이라도 쓰임을 다하고 내 쓰임이 자연의 지나친 이용이 아니어야 함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첨단 과학 속에, 도시 속에 살고 있어도 결국은 자연 안에 있다. 힘들고 지칠 때 하늘을 바라본다. 언제 봐도 지겹지가 않다. 하루의 시작에 바라보는 하늘은 북한산 능선에 후광을 드리운다. 아침의 하늘은 산속에서 만난 맑은 물 웅덩이를 닮았다. 물에 무엇이든 비치듯 아침 투명한 하늘에는 내 마음이 비친다. 늦지 않았다. 알면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keyword
이전 29화6-2. 어쩌다 보니 애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