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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loe J Apr 12. 2024

6-1. 경제적이라는 착각

월든 - 키워드 : 경제생활

아이가 4살이 되던 해 남편이 군대(공중보건의)를 가면서 가정 수입이 절반으로 줄었다. 처음에는 막막하고 힘들었다. 늘 당연하게 사용하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은 상황이 짜증이 났다. 이래 저래 불만만 많아 스트레스가 쌓이고 있을 때 남편이 상황이 변하는 것은 어쩔 수 없으니 적응하고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고 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벌이에 맞춰 적게 쓰면서 살기로 했었다. 그것 말고 다른 방법이 없었다. 배달이나 외식은 한 달에 한 번만 한다는 규칙을 세웠고, 나머지는 모두 집에서 만들어 먹었다. 심지어 남편이 점심시간에 집에 와 함께 밥을 먹었다. 물값을 아끼기 위해서 보리차를 끓여마시고 하나밖에 없는 딸의 옷은 일 년에 딱 한번 의류 물류 창고개방에서 한꺼번에 구입했다. 공보의 3년간 아이는 유치원을 다녔다. 남들처럼 이라는 근거 없는 기준이 사실 가장 힘들었다. 사교육도, 모두들 갖고 있다는 책도, 장난감도 경제적 여유가 없어 가질 수 없었다. 할 수 있는 일은 가방끈이 떨어지도록 아이를 데리고 도서관에 다는 것뿐이었다.


시간이 흘러 경제적 여유가 생겼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부족함 없이 살고 있다. 최근 다시 제도의 변화로 수입이 줄어드는 상황으로 변하고 있다. 나는 어김없이 또 걱정폭탄에 스트레스만 받았다. 이번에도 남편은 얼른 받아들이고 할 수 있는 것을 하자고 했다. 다시 정신이 들었다.


삶에는 사이클이 있다. 올라갈 때도 있고 내려가는 기간도 있다. 내려가 한참을 헤매다 올지도 모른다. 그때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신세한탄만 한다면 아무런 해결을 못할 뿐만 아니라 우리가 가진 가장 소중하고 값비싼 시간을 불행한 마음으로 낭비하게 된다. 따지고 보면 경제적 풍요와 마음의 풍요가 늘 같이 가는 건 아니었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지니 마음의 여유가 생기게 되는 건 사실이지만 바로 그 돈으로 아이와 보내는 시간은 줄었고 행복도 줄어들었다.


객관적으로 요즘의 필수품에 대해 생각해 본다. 필수 가전제품이 빼곡하게 놓여있는 집이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언제부터 우리는 이런 것들을 모두 갖고 살아야 했을까? 그 필수품이라는 것을 가지기만 하면 주부로서 내가 해야 할 일을 대신해 엄청난 시간적 여유와 행복을 가져다줄 것만 같았다. 막상 집에 들여놓고 나면 기쁨은 줄어들고, 주기적으로 체크하며 관리해줘야 할 일들이 생겨났다.


잘 사용하는 집도 있겠지만 우리 집에 가장 큰 자리를 차지하면서 한 달에 한번 쓸까 말까 한 스타일러가 대표적이다. 당시를 회상해 보면 구성원이나 우리 집의 특징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남들이 좋다기에, 이제는 필수품이라기에 구입했었다. 사용을 잘하지 않는데도 주기적으로 관리를 해줘야 한다. 여름이 되면 곰팡이가 생길까 신경이 쓰인다. 정장도 안 입는 집에서 스타일러는 애물단지다. 이런 식으로 들어온 마케팅으로 필수품이 된 사치품들은 집을 좁게 만들고 일을 돕기는커녕 여유를 빼앗아간다.


남편을 따라 1년 동안 울릉도에서 살았던 적이 있다. 이때 집에 살림살이라고는 세탁기, 냉장고, 텔레비전, 소파도 되고 침대도되는 매트와 밥상, 옷걸이 행거 하나가 전부였다. 사람은 이렇게도, 이보다 더 조촐하게도 살아진다. 살림살이가 적고 집도 좁아서 청소는 전혀 힘들지 않았다. 우리가 현재 물질과 발전으로 획득한 경제적인 생활이 최고의 효율과 행복을 가져다주는 필수요건은 아님에 틀림없다.


우리는 때로 삶도 경제적으로 효율적으로 살기 위해 노력한다. 생산성에 집착했던 시절이 있었다. 잠시의 시간도 허투루 쓸 수 없었다. 설거지 할 때 오디오북을 듣고 짬시간뿐만 아니라 길을 걸으면서도 책을 읽었다. 그때 하루에 한 시간씩 걷기 운동을 했었는데 그 시간이 아까워 잘 이해도 안 되는 영어 고전소설을 들으며 머리를 쓰지 않는 시간을 없앴다. 그렇게 하는 게 가장 효과적으로 하루를 사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걷기 운동은 지속되지 못했다. 1시간 걷는 운동이 힘들었고 '영어 듣기가 늘지 않는다'라는 내 안의 의심이 생기자 곧바로 의지라는 게 떨어지면서 듣기도 걷기도 그만둬 버렸다. 경제적으로 시간을 쓰려다 결국 공부도 운동도 아닌 진짜 낭비한 시간이 되어버렸다.


이후 이사를 가고 삶의 패턴이 많이 바뀌면서 생활도 마음도 달라졌다. 건강의 문제로 다시 걷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걷기에 욕심 섞인 인풋을 버렸더니 생각이 들어찼다. 걷는 운동을 하면서 평소에 고민하던 생각을 따라갈 수 있었다. 보통 때는 다른 일들에 쌓여 제대로 깊이 생각해보지 못했는데 걷는 시간, 최소 30분 이상 생각할 시간이 보장되어 있었다. 생각이 이끄는 방향으로 가다 보니 마음이 가벼워졌다. 우리들의 보통 고민과 걱정은 쓸데없는 경우가 많다. 걷는 동안의 호흡과 움직임의 리듬이 쓸데없는 고민이라는 생각의 끝까지 데려다 주면서 스스로를 믿고 긍정할 수 있는 마음까지 가져다줬다.


가끔 우리는 시간이든 물건이든 돈이든 경제적으로 효과적으로 효율적으로 사용한다는 착각을 하고 살아간다. 가장 대표적인 게 1+1이다. 이런 마케팅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필수 살림살이도 마찬가지다. 필요 없는 물건을 더 구입했다는 사실은 구입에 대한 욕심과 욕구가 해소되어 집에 와 야만, 돌이킬 수 없어져야만 느껴진다. 시간도 마찬가지다. 시간을 쪼개서 더 많은 일을 한다고 반드시 절약은 아니다. 이 또한 욕심이다.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경제적인 생활을 위해서는 전반에 걸쳐 한발 떨어져 생각해 보는 관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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