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 키워드 : 문화
우리가 함께 살고 있다는 자체로 주변을 둘러싼 모든 것은 문화다. 오늘 이야기는 온전히 그 문화의 혜택을 보고 있으면서도 아는척도 하고 싶지 않았던 나의 양가감정으로 뒤얽힌 직업과 관련된 문화에 대해서다.
느즈막히 의대에 들어갔다. 다른 대학을 졸업하고 다시 들어간데는 스스로의 필요보다 가족의 문화가 큰 영향을 줬다. 지방대 공과대학을 졸업한 나는 부모님에게 어디 내놓을? 타이틀이 되지 못했다. 내 꿈이 10%는 있었을까? 인정욕구를 채우기 위해서 대학교 4학년때부터 편입을 준비해 2년만에 운좋게 합격했다. 내 원가족의 문화로는 장녀와 아들은 집안을 빛내야했고 이쯤하면 내가 할몫을 다 했다고 생각했다.
생각보다 더 힘든 생활의 연속이었다. 가장 힘들게 공부했을때 스트레스로 38kg이었던 적도 있다. 잠잘 시간에 공부했고 먹을 시간에 잠을 자야했다. 사는게 전쟁이었다. 생사가 걸린 위안이 필요했던 내게 장녀라서 이겨내야한다는 말만 돌아왔다. 그게 우리집의 문화였다. 그래! 이를 악물고 이겨냈다. 자격증을 따고 졸업을 하면서 여러번의 투쟁을 통해 더이상은 휘둘리지 않는 삶을 살겠다는 선언을 했다. 아이를 잃을 위험에도 전문의 수련을 유지하라는 아빠의 강요섞인 당부전화 다음날 사직서를 제출했다. 딸의 장래를 걱정해서 그랬을 테지만 나는 내 삶을 내가 결정하고 후회도 스스로 하고싶었다.
내 직업의 시작이 삐뚤어져있었다. 원한적 없었고 죽을 고생을 했으며 부모님의 미움과 뒤엉켜 해결의 실마리도 찾을 수도 없었다. 그러면서도 버릴수는 없었다. 내 젊은 날을 다 바쳤고 고생한 만큼이나 수월한 금전적 보상이 있었다. 자체의 양가감정도 심했다. 대학 친구들 모두 당연히 하는 전문의를 유산의 위험이라는 이유가 있었지만 그만뒀다. 커리어가 끊겼다. 이제 나는 의사중에 가장 꼴찌였다. 내 마음이 그랬다. 그때는 전문의 과정까지 모두 하는게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래서 내 마음 속 나는 의사도 아니었다. 의사도 아닌 의사, 의사밑의 의사 그런일을 하는게 나였다.
그래서 문진의를 하게 되었다. 의사라면 누구나 다 할수 있는 일, 병원에서 누가해도 상관없는일, 공공병원 입사후 2년동안 홈페이지에 이름도 없던 의사. 직업인으로 자존감은 없었다. 장녀의 할일은 다 했다고 생각했는데 전문의를 포기한 딸이 부모님은 부끄러웠다. 그 누구도 만족시킬 수 없던 일, 이게 나의 가질수도 버릴수도 없는 직업적 갈등이었다.
우리는 문화를, 대세를 따라 행동하곤 한다. 문화는 우리가 그 속에서 따라야할, 지켜야할 전통이라고들 생각한다. 이 생각을 뒤집어봤다. 문화를 만드는 것은 결국 나와 우리다. 나와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느냐가 결국 하나의 문화적 흐름이 된다. 그렇다면 내가 속한 문화에 끌려다니며 상처받지말고 멈춰서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먼저 생각해야한다. 내가 원하는 문화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내가 만들어가고 있는 방향이 대세인 문화와 같다면 유지하고 발전시키면된다. 그렇지 않다면 지금이라도 문화의 흐름에서 조금씩 다른 방향으로 노를 저으면된다. 그게 다시 흐름이 되기도한다. 문화는 그렇게 흐르고, 변하고, 지워지고, 만들어진다.
직업에 있어서 내가 원하는 문화, 내가 가고 있는 문화를 만드는데 역할을 하지는 못했다. 나는 상처받았고 직업 문화속 내 자리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어떨때는 단지 월급날만 기다리는 가치없는 사람이라는 생각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보다 위를 보느라 내가 있는 곳에서 가치를 찾으려고 하지도 않았다. 내가 준 도움에 대해 사소히 여기고 남이한 대단한 일을 부러워했다. 그런데 문화가 흐름이 바뀌었다. 나는 그 흐름에 일조하지 못했는데 요즘 아이들이라고 불리는 MZ세대가 내가 있는 곳을 대세흐름으로 바꿔놓고 있었다.
내가 그렇게 부끄러워하던 '전문성 없고 책임이 무겁지 않은 일, 아이를 케어해야해서 오전 4시간만 근무하는 일, 보장되는 휴가를 모두 사용하기 위해서 공공병원에서 근무하는 것, 적당히 일하고 적당히 버는 일'을 그들은 좋은 일자리라고 부르며 원하고 있었다. 8년전에 한 선배에게 '그렇게 일하느니 그냥 그만두는게 어떠냐'는 말을 내게 했었다. 그리고 2주전 같은 선배가 내 일자리를 "내가 아는 가장 좋은 직장"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사람이 바뀐게 아니라 대세, 문화가 달라졌다.
기분이 묘했다. 대세가 내 방향이면 바른 방향인가? 문화가 바뀌면서 전공의를 하는 후배들이 줄었다. 아무도 생명을 다루고 힘든 수술을 하고싶어하지 않는다. 물론 여기에 개인의 문제만 있는것은 아니다. 돌아오는 보상보다 위험부담이 큰 일에 인생을 걸지 않으려하는 것이 때로는 당연한 선택일 수도 있다.
살면서 내 직업과 관련된 입장을 드러내지 않았다. 외부인처럼 보고 듣고 행동했다. 공공병원에서 공무원으로 근무하기에 월급이 다른 의사만큼 많지 않다. 전문성도 떨어져서 어디가서 의사라고 말도 잘 하지 않았다. 투쟁을 하던, 레지던트가 구속이되던, 원격진료를 추진하던, 포괄수가제를 하던 남의 일처럼 구경만하며 살고 있었다. 나를 이 직업 문화를 구성하는 구성원으로 인정하지 않았던건 바로 나였다. 대세가 바뀌며 내가 다니는 좋은 직장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찬물을 맞은것 같았다.
25년부터 정원의 2배에 달하는 인원을 매년 뽑는다고 한다. 의사는 진짜 부족한가? 그 부족이 단지 양적 문제인가? 특정지역, 특정과만 보통 부족하다. 이문제는 사회문제와 닿아있다. 왜 부족한지, 왜 그토록 기피하는지의 문제 해결 없이 의사가 흘러넘쳐 소아과와 산부인과까지 채우도록 할 생각인가보다. 내가 대학진학을 고민했을때 초등학교 선생님이라는 일은 선망의 직업이었다. 그리고 의무없이 권리만 강조되는 학부모의 행태와 아이중심으로 흘러간 교육계가 지금의 국면을 맞이하게 했듯 비슷한 절차를 겪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25학년도 2배의 증원이 되면 대략 10년후 우리는 증원된 의사를 맞는다. 10년이 되기까지 자기자리에서 소신 진료를 하던 의사들은 하루라도 빨리 자리잡기위해 개원을 하고자 할지도 모른다. 개원의사는 자꾸 늘어나고 경쟁병원이 많아지니 이 머리좋은 의사들은 수입을 줄지 않게 하기 위해 필요없는 검사를 추가하고 시술을 행함으로써 의료비를 높인다. 의료보험은 자연스러 높아지고 법으로 규제를 강구한다. 이 사이 의료의 질은 떨어져간다. 대형병원으로 몰림 현상은 극도로 심해진다. 병원을 많고 갈 병원은 줄어든다.
인턴 2년을 군대처럼 전국 오지로 무작위 돌린다고 하던데... 월급을 엄청 낮출꺼라고 하던데... 그러면서 생명에 책임질 의사는 몇이나 될까? 앞에서 말했듯 내 일은 사소하다. 하루에도 백명이 넘는 환자를 만나고 백장이 넘는 종이에 사인을 한다. 루틴으로 하는 일처럼 보이지만 백번 넘는 그 일은 매번 면허를 걸고 하는 행위다. 내 사인에 원장님이 책임을 지지 않는다. 의료적 책임에대한 비용이 줄어드는게 좋은일로만 생각할수는 없다. 그렇게되면 정부의 의도중 몇은 해결될 것이다. 의대 열풍은 사라질테고 의사수는 많아 진다. 누군가에게서 문자를 받았다. 거기에는 이제 의사로 직업이 하나인 시대가 끝났으니 의사라는 적은 월급을 창출하는 직업은 적게 일하고, 적게 책임지면서 좋은 머리로 다른 일을 계획하라는 내용이었다.
나같은 의사가 늘어난다? 그게 대세가 된다? 나는 내 직업을 부정했다. 읽고 쓰기로 다시태어나고 싶어했다. 그동안 쓸데없이 오랜시간 직업공부를 한게 아깝고 억울했다. 적당히 직장을 다니며 다른 공부를 하고 유튜브를 찍고 다른 일에 정성 쏟는다. 생명을 다루는 데 관심과 정체성이 없는 의사, 나같은 사람이 많아지고있단다. 문화의 흐름을 끊을 수는 없다. 하지만 그대로 받아들이면 그 책임질 실체가 없어진다. 우리는 모두 흘러와서 이 자리에 있다. 부모님의 강요에 떠밀려왔든 스스로 개척해왔든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에서 우리가 벗어날 방법은 없다.
내 삶을 부정하며 아무런 노력 없이 절망하고 있을수 없다. 절망은 쉽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절망은 쉽다. 희망은 힘들다. 뭐든 하라고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희망은 힘들다. 우리는 문화라는 바다에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조그만 한명이다. 하지만 문화를 이루는 것은 우리다. 우리만 그 문화를 바꿀 수 있다. 그래야 다음도 있다. 잠시 급류에서 벗어나 대세가 아니라 나다움을 생각해볼 때이다. 나도 내 소리를 내기로 했다. 맞다고 생각하는 바에 행동하기로 했다. 그 방향이 틀렸다면 나혼자만 가는게 아니니 다른 생각에 깎이고 다듬어지고 성장할 것이다. 우리는 단지 전통의 계승자가 아니다. 우리가 문화 그 자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