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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완벽한 하루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 키워드 : 죽음

by Chloe J

누군가의 글을 읽는다는 것은 비교할 수없이 내밀한 관계가 되는 것이다. 매일 보는 사람이라고 내 마음을 알기는 힘들다. 그런 의미에서 글을 쓰기 위한 비어있는 페이지의 힘은 대단하다. 한때는 마음의 표현이 힘들던 적도 있었다. 이제는 기뻤던 일이나 작은 감동에서부터 마음속 불편함을 쏟아내야 털어내고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었던 수많은 일을 가슴속에 간직한다. 대다수의 아픔은 기억 속에 묻히지만 시간이 해결해 주지 못하는 일들이 있다. 나에게도 그런 아픔이 있다. 일주일 동안 죽음이라는 주제로 글을 쓰면서 겉으로 맴돌았다. 죽음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단 0.1초의 망설임도 없이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지만 아직도 자세히 메타적 시선으로 바라보기가 힘들어서 어쩌면 다른 소재를 빙빙 둘러 찾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죽음에 대한 글을 쓰지 않을 수는 있어도 결국 내 아이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 외에 다른 죽음은 떠오르지 않았다. 용기 내 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내 글을 읽어주는 소중한 독자들에게만.. 소곤소곤


딸 하나를 키우고 있다. 그리고 나는 2번의 분만을 했다. 한 번은 출산을 했고 또 한 번은 사산을 했다. 사산과 유산은 다르다. 유산은 아이가 태어나도 살 수 없을 시기에 뱃속에서 사망한 것을 말한다. 반면 사산은 뱃속에서 사망하지 않고 만약 분만을 했다면 살 수도 있던 아이가 죽은 것을 말한다.


개인적인 병력 중 26살에 조기폐경의 오진을 받은 기억이 있었다. 그랬다가 생긴 첫째는 유난을 떨면서 임신의 과정을 거쳤다. 조금만 움직임이 이상하면 병원으로 달려갔고 태교도 오버로 했다. 태교를 위해서 전화영어, 독서, 바느질을 시작했다. 결혼을 한 당시는 공부와의 결별을 외치며 더 이상 공부하고 싶지 않다고 당당하게 말했던 시기였으나 첫째가 생기며 독서를 다시 시작했다. 바느질도 10개월 동안 배냇저고리, 양말, 손 싸개, 베개, 속싸개, 겉싸개, 천 실내화에 어린이집에서 쓸만한 여름이불, 애착 인형 2개를 손바느질로 만들었다.


두 번째 임신은 느슨했다. 특별한 태교도 없었고 매일 디카페인 커피에 아주 가끔은 무알코올 맥주도 마셨다. 검진 일이 아니어도 조금만 이상하면 병원을 들락거렸던 첫째 때와는 다르게 둘째는 잘 크지 않아 늘 문제가 있었음에도, 담당 선생님이 직장을 그만두고 누워있으라고 했는데 경제적 문제로 그만두지 않았다.

'어떻게 일을 그만둘 수 있겠어...'


그렇다고 아이를 사랑하지 않거나 등한시한 것은 아니었다. 감사했고, 사랑했고, 내 품에 안기는 게 당연한 그런 아이였다. 태명도 있었고 이름도 있었다. 앞으로 함께할 날이 당연해서 지키지 못했다. 2015년 3월 31일 만삭 40주 검진을 받았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이제 아이가 2.5kg를 넘겼고 태어나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했다. 그동안 아이가 잘 크지 않아서 걱정이었는데 이제 태어나기만 하면 된다는 소리를 듣고 안심이 되었다. 다음 날인 4월 1일은 남편이 훈련소에서 나오는 날이었다. 공중보건의가 되기 위한 훈련의 시작인 한 달을 훈련소에서 가족과 떨어져 보냈고 이제 끝나서 시부모님과 함께 논산훈련소로 가기로 되어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일찍 논산훈련소로 가기 위해 준비를 서둘렀다. 배가 살짝 아팠지만 진통이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출산을 한번 해봤다고 다 아는 것만 같았고 컨트롤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훈련소에서 남편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딸기 축제에도 들러 가족들과 사진도 찍었다. 돌아와 오랜만에 함께 모인 가족들과 밤늦도록 이야기를 나누고 지친 몸을 뉘었다. 2015년 4월 1일은 아주 기쁜 날이었다. 의사인 남편 인생에 가장 여유로운 공보의 3년의 시작이었고 우리의 둘째가 이제는 아무 문제 없이 나오면 된다는 소리를 들은 다음날이었고 35번째 내 생일이었다.


딸을 재우고 자리에 눕자마자 양수가 터졌다. 시부모님께 아이를 부탁하고 남편과 웃으며 병원으로 향했다. 그리고 아직도 자세히 기억나지만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의 덩어리, 간호사들이 분주해졌고, 첫째 때와 달리 초음파 기계가 들어오고, 의사가 오고, 남편을 불렀다. 아이가 심장이 뛰지 않았다. 바로 어제 낳기만 하면 되는 40주 아기였는데 갑자기 꿈처럼 사라졌다. 제왕절개를 하면 다음 임신이 불가능해서 분만을 했다. 밖으로 나올 의지가 없는 아이를 낳는 고통은 가슴은 뚫린 채 뱃속의 내장 모두가 빠져나오는 것 같았다. 낳고도 아직 부른 배, 다른 가족들의 절망, 내 침대에 적힌 진단명 "fetal death", 현실감이 오락가락했다. 죽을 듯 슬프다가 나의 일이 아닌 것 같기도 하다가... 35번째 내 생일, 다정이는 하늘나라로 갔다.


키우던 아이가 잘못된 것은 아니었지만 있는 게 당연하던 아이가 없어졌다. 우리는 내일을 알지 못한다. 한 번도 안아보지 못할 아이라고 10달 동안 생각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당장 내일을 알 수 없으면서 준비했던 미래... 돌 드레스를 준비하고 아이는 금방 크니까 배냇저고리도 한 사이즈 큰 걸로 샀다. 기저귀에 젖병에... 하루 종일 아이의 태동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기억도 하지 못하면서 내일을, 내년을 준비했다.


아이의 장례를 준비해야 했다. 내가 살기 위해서 뭐라도 해야 했다. 두 손안에 쏙 들어올 것 같은, 굳어버린 작은 싸늘한 아이에게 80 사이즈 배냇저고리를 올려줬다. 편지를 쓰고, 엄마가 마지막으로 주는 분유를 타고, 돌에 입으려고 사둔 공주 드레스를 함께 관에 넣었다. 아이는 사랑한다는 한마디의 말도 듣지 못하고 하늘나라로 갔다. 뱃속에 있을 때 많이 해줬던 것 같긴 한데 아무리 기억해 보려 해도 사랑한다는 말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아이가 없는 줄도 모르고 눈치 없이 흐르는 젖과 아이를 잃었지만 젖몸살이 더 괴로운 내가 미웠다. 내년을 준비하느라 쓰다듬으며 사랑한다는 말도 제대로 해주지 않아 너무 미안했다. 지금을 소중히 살라는 교훈을 몸에 자식의 죽음으로 새겼다. 절망에 스스로를 망가뜨리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다시 지금을 소중히 살아야 할 이유가 있었다. 곁에서 내 손을 잡고 이 상황이 이해 안 된 채 불안해하는 이제는 하나뿐인 딸이 있었다.


엄마 배는 아직 부른데 어제까지만 해도 있었던 동생이 없어졌단다. 어른들은 만나기만 하면 울고 동생은 천사가 되어 하늘나라로 갔다고 들었다. 나에게는 날개가 없는데 왜 동생만 날개가 있어서 하늘나라에 갔을까? 하늘나라로 가면 만날 수 없다고 한다. 엄마도 하늘나라로 가버릴까 봐 불안하다.


죽음은 아직 내겐 끝나지 않은 공부다. 얽힌 매듭의 실마리를 찾지 못했다. 죽음과 삶의 의미, 본질을 계속 책에서 찾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죽음에 초연하거나 수도자와 같은 마음을 먹는 것은 생각할 수 없다. 죽음은 단지 지금을 살아야 할 이유일뿐이다. 날 살린 딸과 함께 오늘을 행복하기 위해서... 지키지 못한 딸을 만날 그날까지...


대부분의 경우 작별의 시간을 제대로 갖지 못한다. 자연적 노화와 대부분의 죽음으로 향해가는 질병은 인간이 느끼기에 진행이 느려서 '내가 벌써?'라던지 '나에게 왜 이런 일이!' 하는 식의 실제 작별인사에 방해되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단 하루의 삶만 남겨져 있다면 이런 후회, 원망이 가치 없다는 사실을 모를 수가 없을 것이다. 시간이 없다는 조바심을 느끼고 이제까지의 삶을 후회하고 현실을 원망하며 허비하기에 하루밖에 남지 않은 시간은 너무 짧다. 이런 소중한 하루를 점으로 엮어 선으로 만드는 삶을 사는 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죽음의 준비가 아닐까 싶다. 마지막으로 이 소중하고 완벽한 오늘, 하나의 점, 나의 마지막 날을 그려보고자 한다.


마지막 오늘은 모닝 루틴을 쉬기로 했다. 습관이 무섭다. 눈이 떠지고 의식이 너무 또렷해 도저히 다시 잠들 수 없어 몸을 일으켰다. 벌써 1년 4개월이나 아침을 함께한 파코기, 모닝 루틴을 켰다. 오늘은 더 반갑게 진심을 담아 인사하고 갤러리보기로 마음으로 연결된 사람들의 얼굴을 훑는다. 개인 공부 시간에 편지지를 꺼냈다. 6시까지 한 시간이 안 되는 시간 동안 내 삶을 의미 있고 빛나게 해 준 사람들에게 짧은 편지를 썼다. 이 세상에 내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가장 오랫동안 기억해 줄 사랑하는 이들에게... 5시 55분에 딸 곁에 눕는다. 늘 눈뜨자마자 엄마가 있길 원했는데 할 일이 있다는 핑계로 애써 모른척했었다. 오늘은 6시 정각 딸이 일어남과 동시에 안고 사랑한다고 말해준 다음 한참 그대로 있었다. 마지막 나의 완벽한 하루는 아무것도 서두르지 않기로 한다. 천천히 먹고 천천히 걷고 아이의 말, 작은 숨소리까지 마음에 담는다.

오전에는 나와 탁구치고 싶어 하는 남편과 2시간 동안 한눈팔지 않고 온전히 시간을 보낸다. 우리 세 식구는 집에서 영화 한 편을 보고 간단한 점심을 먹는다. 오후는 공기놀이와 보드게임을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오늘 하루가 마지막이더라도 이기고 싶은 것은 어쩔 수가 없나 보다. 늘 승부욕에 진심인 남편이 오늘따라 귀엽게 느껴진다. 저녁은 외식으로 산책 겸 걸어서 갈 수 있는 집 주변 식당으로 간다. 집에 돌아와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내다 방으로 들어온다. 딸의 10년 성장일기를 마칠 수 없게 되었지만 선물로 주고 싶어 오늘 날짜에 짤막한 메시지를 남긴다. 다 채우지 못한 내 일기는 엄마에게 남기고 싶다. 저녁이면 피아노 치는 남편에게 오늘은 정재형의 "사랑하는 이들에게"를 들려달라고 한다. 평소처럼 아무렇지 않게 장난인 듯 사랑과 고마움을 표현한다. 딸 책상에 10년 일기를 올려두고 마지막으로 딸을 재워준다. 올해 연말까지 우리 가족은 상품이 걸린 다이어트를 하는 중이었다. 각자의 목표를 달성하면 딸은 만년필을, 남편은 게임기를 받고 싶다고 적었다. 사실 우리 셋 모두 목표치를 달성하지 못했지만 쿨하게 결제를 하고 방으로 가 평범한 날인 듯 편안히 잠든다.

묘비명

소설이 끝났다.
자유와 사랑의 숨결을 마지막까지 불어내고
성장으로 삶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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