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 키워드 : 성장
내 성장 이야기다. 누군가의 성장일 수도 있는 흔한...
키가 다 크면 성장은 끝나는 줄 알았다. 주민등록증을 받으면 성장과는 관계없는 사람이 되는 거라 생각했다. 대학생이 되면, 그때까지만 버티면 공부도 성장도 끝일줄 알았다. 선택한 대학은 공부를 많이 할 수밖에 없는 곳이었다. 딱 거기까지겠지. 그곳을 나와 직장을 가지게 되길 눈이 빠지게 기다렸다. 다시는 아무것도 배우고, 공부하고, 성장 발전하고 싶지 않았다. 의대 4년, 그동안 공부하느라 했던 고생이면 남들 평생치할 공부를 몰아서 했다고 치고 싶었다. 대학은 지방에서, 병원은 수도권에서 수련을 했다. 시험이 끝나고 어쩌다 딸려온 책을 제외하고 학생 때 교재를 모두 버리고 왔을 만큼 더 이상 공부는 내 할 일이 아니었다.
배워야 하는 신분을 중도에 벗어던진 그날이 지금도 생각난다. 머리에는 온통 싫다는 생각뿐이었다. 누가 와서 설득해도 가슴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렇게 팽개치고 나와 최대한 쉬운 일을 구했다. 그리고 다시는 공부하지 않기로 했다. 어떤 일을 하든 반복되는 단조로움에 일이 지루해지는 때가 찾아온다. 정도의 차이에 따라 조금 더 복잡하고 단순하다는 차이가 있다. 처음에 당황스럽던 예외 상황도 길게 보면 더딘 반복일 뿐이다. 쉬운 일 더 단순 반복적인 일은 2개월 차를 넘기기도 전에 벌써 지루하기 시작했다. 오죽하면 일하면서 함께 할 수 있는 소일거리를 들고 출근을 했다. 그리고 3년째부터 문제가 생겼다.
왜 사는 걸까? 인생의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느슨하고 단조로운 일을 통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이렇게 재미없는 일을 하는 이유가 돈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하루 뱃속의 아이를 생각하며 출산 전까지만 일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아이가 2개월 되었을 때부터 출근을 시작했다. 지루함을 견디기 힘들어하고 의미를 찾으면서도 힘든 일은 싫은... 도대체 뭘 하자는 건지... 지금 생각해도 답이 없다. 딸을 풍족하게 키우고 싶다는 생각에 그 지겨운 일을 다시 시작했다. 목표는 단지 월급이었다. 돈과 가족만을 위해 일하는 직장에서 나는 다시 나를 잃었다.
원하던 일도 아닌, 쉽고 아무나 할 수 있어서 시작한 일을 한 지 7년째가 되던 날이었다. 성장이 멈춘 나는 7년 동안 스스로도 인식하지 못하게 아주 조금씩 가라앉으며 자신을 갉아먹고 있었다. 나 자신의 가치를 찾을 수가 없었다. 단지 하나밖에 없는 가치는 아이의 양육자, 거기에서만 내가 살아갈 이유가 있는 것 같았다. 삶의 의미 그 전부인 아이에 모든 걸 걸었다. 한참 잘못된 생각이었다. 오래가지 않아 아이와 갈등이 생기고 더는 설 자리도 없다고 느꼈다.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시간과 생각만 많아졌다. 제대로 좀 살고 싶은데 방법을 몰랐다. 그때 우연히 미라클모닝을 알게 되었다. 그게 시작이었다. 새벽시간은 오직 나만을 위했던 결과를 만들어줬다. 책을 필사하고 완독권수도 한 권씩 늘어나면서 피곤했지만 긍정적인 그 느낌을 더 알고 싶었다. 책은 책을 불렀다. 책은 쓰고 싶다는 욕구를 일으켰다. 여태껏 써온 모국어인데 고등교육을 받고도 5줄을 못쓰는 나를 발견했다. 그렇게 아침 시간의 고요가 온라인 공부 모임으로 자연스레 연결됐다.
줌이란 걸 처음 켜봤다. 딸이 1년 전부터 비대면 학교수업을 했었기 때문에 아이디는 갖고 있었다. 참가라는 버튼을 누르고 아이디라고 적힌 칸에 도무지 뭘 적어야 할지 몰랐다. 내가 생각하는 아이디는 메일이나 쇼핑몰 아이디였다. 영어와 숫자로 된 내가 정한 조합. 줌 가입할 때 적어 넣었던 늘 동일하게 사용하는 이메일주소 앞 아이디를 적었다. 잘못된 링크라고 나왔다. 한참을 고민하다 안내문자에 적힌 암호처럼 나열된 숫자를 적어봤다. 그리고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그날은 아이캔유 첫 줌 수업시간이었다.
물러설 자리도, 선택의 여지도 없었기 때문에 별 망설임은 없었다. 아이캔유의 수장이신 김익한 교수님이 "나다움"이라는 단어를 말하자마자 한 번도 보살핌 받지 못한 자신을 들여다보며 그 말의 생경함에 수온조절 안 되는 샤워기에서 갑자기 찬물로 온몸을 맞은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처음으로 일과 가족과 부정적인 나에서 벗어나보는 세상과의 만남이었다. 세상을 알아가는데 전혀 관심이 없었다. 하물며 타인에 대해서는 무감각하다 할만했다. 다들 그렇게 사는 줄 알았다. 남에게 관심도 없고 명확히 영역표시된 내 울타리만 단단히 지키고 사는 게 보통의 삶이라 생각했다. 이타적이란 말은 나와는 관계가 없는 말이었다. 그저 광고에서 본 책을 잘 읽게 된다는 말, 글을 잘 쓰게 된다는 궁금증에 스르르 온라인 배움의 공간으로 흘러들었다. 흘러들어 조용히 아주 조용히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게 얼굴도 목소리도 없이 그들의 나눔을 훔쳐봤다. 그 속에 있었지만 함께는 아니었다.
카메라를 켜고 수업을 들으면서 관계가 만들어졌다. 이것은 거미줄보다 가늘고 다시 볼 때까지 한 번도 떠올려지지 않을 만큼 얄팍한 관계의 시작이었다. 단지 앞으로 이 영토에 남아있고 싶다는 바람이 카메라를 켜게 만들었다. 그 속에서 누군가와의 관계는 생각해보지 못했다. 리더에게 좀 더 잘 보이고 싶었을까? 하지만 몇백 명 중의 나는 묶어놓은 국수의 한가닥 같았다. 철저하고 엄격하고 늘 남과 비교하던 나를 느슨하게 해주는 분위기가 좋았다. 이래도 될 것 같은, 잘하지 못해도 괜찮을 것 같은 받아들여짐이 행복감을 줬다. 그들이 서서히 소중해졌다.
그들이 변한 것은 없었지만 우리의 관계는 나 자신의 위치 지움으로 달라진다. 내가 애정을 가지고 그들을 알고자 하면서 우리 사이는 단지 느슨한 긍정적인 기운을 주는, 가느다란 관계에 머물러지지 않았다. 화학기호의 삼중결합 같은 뜨거운 관계가 익숙했던 내가 애착을 가지니 자꾸 관계를 끌어당기고 단단하게 만들려고 했다. 뜨겁고 단단한 관계가 꼭 좋다고 말할 수 없다. 뜨겁고 단단하면 기대하게 되고 바라게 된다. 그리고 언젠가 실망하는 사이가 된다. 관계에 익숙하지 않은 나는 당겼다가 놨다가 거리조율이 원활하지 못했다.
좋아서 열심히 하다 보니 잘하고 싶었다. 잘하고 싶어 더 열심히 하다 보니 그들과 가까워졌다. 관계가 짧고 단단해져 갈수록 내심 좋았다. 그래서 더 열심히 했나 보다. 그러다 힘들어졌다. 그때는 그냥 다 힘들었다. 몸을 돌보지 않고 그저 더 잘하지 못하는 나를 책했다. 관계에 있어서도 문제가 생겼다. 관계의 총량은 같은 건지 내 관심이 줄어든 가족들이 서운해했다. 내 삶에 핵심이 무엇인지, 중요한 걸 잊고 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때로 그냥 놔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놓을 수는 없었다. 그 속에 내가 바라는 나 자신이 있었다.
조율을 해야만 했다. 내가 원하는 걸 얻기 위해서 자신을 포함한 소중한 사람들의 마음을 살피고 설득해야 했다. 밀당의 과정은 쉽지 않았다. 그리고 끝나지도 않았다. 서로 얽힌 관계의 끈을 밀었다 당기며 흔들림은 줄어들고 있다. 또 언제 한쪽이 세게 당겨지며 흔들림의 폭이 커질지도 모른다. 그때마다 균형을 잃고 쓰러지지 않게 잡아주는 손이 있었다.
타인에 대한 긍정은 관계의 확장을 가져왔다. 가족 아닌 진심을 나누는 사람이 생겼다. 겉으로 평온해 보이는 이 관계도 출렁임은 있었다. 적당하고 건강한 관계의 경험이 적어 나는 다가갔다 멀어졌다를 반복했다. 친구가 알고 싶기도 하고 내 이야기를 하고 싶기도 하지만 적정선을 유지하는 게 힘들어 독서수다를 시작했다. 한 달에 한번 고전이 한 권씩 늘어가면서 어느덧 13권이 되었다. 우리는 함께 운동하고, 책을 보고, 책 나눔 하고, 글을 공유했다. 성장이었을 테지만 힘들다고 느낀 적는 즐거움이었다. 물론 가끔 친구가 부럽거나 샘이나기도 했지만 결국 칭찬과 축하로 변했다. 내가 알게 된 좋은 정보는 알려주고 싶어 목구멍이 간질거렸다. 그녀의 멋진 부분은 따라 하고 싶어 안달이 났다. 그렇게 벌써 우리는 일 년 반을 놀았다.
이렇게 즐거운 성장만 있으면 사는 게 얼마나 기대될까? 하지만 세상은 그리 편하게 우릴 놔두지 않는다. 성공은 언제나 스트레스와 노력의 힘든 시간을 이겨냈을 때 따라온다. 뿐만 아니라 패배감이 지속되는 상태에서는 성장동력이 생기지 않는다. 작은 성공 아주 작은 성공이 또 다른 성공을, 도전을 불러온다. 일 년 남짓 개인사, 전례 없는 도전을 하는 중이다. 블로그 사진에 얼굴공개도 못하던 내가 온라인 모임 방장을 맡고, 100명이 넘는 분을 모시고 재능기부 강의를 했다. 자기 역사 쓰기라는 집필과정을 견디고 완료하기도 했다. 얼마 전에는 재능기부 했던 마인드맵을 강의로 찍어 오픈을 기다리고 있다. 1년이라는 시간이 놀라울 정도로 나는 다른 사람이 되어있었다. 무엇보다 스스로에 대한 자기 효능감이 좋아졌다. 내가 나를 좋아하게 되었다.
어떤 새로운 도전 앞에서 우리는 모두 부담을 느끼고 스트레스를 받는다. 건강한 스트레스라는 것을 알면서도 피하고 싶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 그리고 지금 조금 더 크고 엄두가 안나는 도전을 앞두고 있다. 어떤 날 생각해 보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새로운 도전을 해낼 나를 생각하며 기분이 들뜨다가 또 다음날에는 절망이다. 절대 해낼 수 없을 것 같다고 내 안의 검열자가 단단히 가로막는다. 당장 가서 포기하겠다 말하고 싶어 진다.
어제가 절망의 날이었다. 굴속으로 파고드는 그때 친구가 "우리 그거 성장통이라고 생각하자!"라 말했다. 한 번도 상상해보지 못한 단어였다. 이건 성장통이다. 맞았으면 좋겠다. "성장통" 나의 목표, 꿈, 길잡이별이 저기 멀리 있다. 단숨에 뛰어올라 성공하고 싶었던 내 욕심이 절망과 희망의 파동을 만들었다. 두 흔들리고 요동치는 마음 때문에 실제의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불안과 긴장 속에 있었다. 정신 차리고 옆을 돌아볼 잠이 확 깨는 단어 '성장통'이라는 말을 듣고서야 친구가 왜 전화했는지를 떠올렸다. 어제 친구는 작가가 되었다. 가슴 벅찬 성장의 결과물을 가장 먼저 나에게 알리고 싶어 소식을 들은 후 1분 만에 전화를 했다. 친구의 반짝임이 빛나서 내 그늘이 더 어두워 보였다. 축하는 반도 전하지 못했다. 미안했다. 지난 일 년 동안 내 곁에는 함께 성장하는 친구가 있다. 한결같이 응원해 주고 축하해 주고 함께 가주는던...
"네가 있어서 또 한 번 견뎌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 진심으로 마음을 다해 감사해 소피아"
그리고 "축하해 김작가"
우리 성장 이야기다. 한 번도 멈춘 적 없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