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탄의 도구들 - 키워드 : 여행
서양을 그릴 때 먼저 등장하는 단 두나라가 있다면 미국과 영국이다. 영어를 공부하는데 30년 이상의 세월을 썼으니 그들의 문화를 부러워한다고 말할 수도 있다. 직장에 외국인이 오면 어떻게든 짧은 영어로 해결해 보려고 노력한다. 늘 하던 말이야 한다 치고 그들의 어디로 튈지 모르는 질문에 언제나 긴장하곤 한다. 그런 내게 직장동료가 했던 말이 있다. “그거 문화 사대주의야! 한국에 왔으면 그들이 우리말을 쓰려고 노력해야지.”
영어 사대주의 본고장 영국에 와있다. 미국을 생각하면 좀 더 세련되다는 느낌과 쿨한 사람들이 떠오르고 영국 하면 조금은 딱딱하고 원칙적인, 고지식하다는 느낌이 있었다. 가보지 못한 편견으로 미국을 더 좋아했다. 3일째 내가 보고 있는 영국은 다르게 다가왔다. 그들의 고집은 시간에서 나왔다. 대부분의 가정집이 150년 이상된 굴뚝 달린 집이었고 500년 된 집을 자랑스럽게 보존해나가고 있기도 했다. 1743년에 처음 문을연 약국이 지금까지 운영을 이어왔다. 호그와트 마법사의 학교, 날아다닐 것 같은 건물에서 아직도 학생들이 공부를 하는. 내가 가진 것에 대한 자긍심을 갖고 그것을 소중히 할 줄 아는 마음은 역사라는 시간을 입으며 명품이 되었다.
영국 시골마을 버포드 교회에 갔다. 마을 전체가 영화에서만 볼 수 있을 것 같은 중세시대를 떠올리게 했다. 낮은 담장 곁으로난 열린 문으로 들어가니 두 사람이 붙어서 걸어야 할 정도의 구불구불한 길이 교회입구까지 나 있었다. 길 주변은 삐죽빼죽 정렬되지 않은 제각기 비석의 무덤이 펼쳐져 있었다. 두껍고 무거운 나무문을 밀었다. 마법의 문이 열리듯 끼익 소리를 내면서 생긴 틈 사이로 추운 겨울바람과 함께 한발 내디뎠다. 밖과는 다를게 바람이 불지 않는 실내라는 것뿐, 입김이 피어나는 교회내부에는 관리인분이 예배를 준비하고 있었다. 일행이 들어오자 환한 표정으로 환영의 인사와 각국 나라말로 번역된 교회설명서를 나눠주셨다.
재료의 빛깔을 그대로 간직한 마을 안에 12세기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한 교회는 본래의 모습을 간직한 채 세월의 조각으로 시간이 흐를수록 유일한 것이 되어가고 있었다. 종교를 초월한 감동에 관리인분께 교회의 아름다움과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했다. 수만 번 지어진 표정으로 눈에서 반원을 그리면서 깊어진 고랑이 다시 패이며 환한 웃음과 함께 되돌아오는 영어에 좀 당황스러웠다. 다음 여행지가 어디인지, 그곳에서는 무엇을 꼭 보라는 이야기, 그리고 다시 환대의 말들... 우리가 서양사람들이 다 비슷해 보이듯 그들 눈에도 나는 하루에도 수십 명씩 다녀갈 동양인에 불과하다. 그런 내게 보낸 따뜻한 환대는 내 일상을 돌아보게 했다.
길도 좁고 관광객도 많고 빨리 달릴 수 없는 버스에서 신호가 걸릴 때마다 비눗방울을 창 밖으로 날려주던 윌스미스를 닮은 기사아저씨, 하루에 수천 명의 출입국으로 잠시도 눈을 뗄 수 없어 보이던 유로스타 역에서 아이들의 작은 제스처에 함께 진심으로 대답하던 직원분의 모습...
우리의 일상은 대부분이 반복이고 일은 심지어 의미가 없어 보이기까지 한 무료함이 함께하기도 한다. 창의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도 조금 더 큰 사이클을 그릴뿐이다. 매일의 반복 속에서 첫 마음처럼 일하는 그들은 행위로써 우리를 대하는 것이 아닌 가치의 실현으로 매일을 살고 있었다. 내가 일하는 모습이 교차되며 감동과 반성이 마음에 머물렀다. 여행에는 여러 의미가 있겠지만 생소한 곳에서 자기 일상을 발견하게 되기도 한다. 낯설고 할 일이 사라진 곳에 생각들이 들어찬다. 일상을 떠나서 머릿속으로 일상을 꾸려보게 된다.
내려가기 위해서 산을 오르는 것처럼 돌아가기 위해서 떠나온다. 한때 여행의 나태함이 다시 돌아온 일상을 힘들게 만든다는 생각을 했다. 여행은 짧고 우리의 삶은 영원할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오랜 기간 변하지 않고 강조하는 몇 가지 주장이 있다. 땀이 날 정도의 운동을 규칙적으로 해야 한다. 소식이 건강에 유익하다…. 이견이 있기는 해도 우리가 살고 있는 당대에는 적어도 대부분 인정할 의견들이다. 건강으로 운동을 하듯 사람들은 여행을 떠난다. 오랜 시절부터 여행은 존재했다. 오랜 세월 많은 사람이 해온 일에는 이유가 있다. 누군가의 삶은 그 자체로 여행이었고 누군가는 깨달음을 위해 고행이라는 이름으로 떠나기도 했다.
지금의 우리도 여행을 떠난다. 눈으로 보이는 지금의 여행은 문명의 발달로 본래의 색을 잃은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호텔방 한편에 우두커니 서있는 캐리어 두 개를 바라보며 부끄러운 마음이 든다. 일상을 떠나오기 위해 다른 세상으로 일상을 잔뜩 담아왔다. 그리고 다른 세상 속 일상들을 가져가기라도 할 요량으로 체중까지 실어 꾹꾹 쑤셔 담아본다. 이곳에서의 행복을 물건과 사진이라는 고정된 형상으로 집으로 가져가려 한다.
허상이다. 이곳의 행복은 여기에만 있다. 그리고 돌아갈 곳에는 그곳의 행복이 있다. 어디나 있는 노을, 떠나온 낯선 곳에서야 사랑하는 사람과 미소로 마주할 수 있었다. 느낌과 마음으로만 가져갈 수 있다. 그러면서 배운다. 하루하루 처리하며 사는 게 아니라 소소한 일상 시간 속에 사랑하는 이에게 머무르는 것만이 추상적인 행복 속에서 구체적인 즐거움과 기쁨을 느끼는 길이라는 것을…
행복은 가지는 게 아니다. 행복은 존재하는 것. 행복 속에 있다.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