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란 존재도 흘러가는 역사 속 어딘가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역사를 몰라도, 역사의식이 없다고 사는데 아무런 불편함이 없었다. 왜 역사를 알아야 하고 나는 그것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나라는 존재는 우선 직장에서 작은 역할을 맡고 있다. 집에서도 선택하거나 주어진 이름표에 따른 일들을 한다. 그 일이라고 하는 것은 끝이 없고 그것만 하고 살아도 한평생 심심하지 않다. 이렇게 발끝만 보며 당장 닥친 일만 처리하면서 사는 게 잘 사는 걸까? 잠시 고개를 들어 눈에 들어오는 현실을 감각해 본다. 우선 나는 가정을 넘고 작은 동네를 지나 직장이라는 단체에 소속되어 그 직장이 가지는 가치를 함께 실현해 가는 존재다. 자유 민주 국가란 이념을 가진 나라에서 한 명의 구성원으로 나름의 이바지를 하고 있다. 조금 더 넓혀보면 우리는 하나로 연결된 세계 속에 있고 그렇기에 함께 환경문제를 고민하기도 한다. 우리가 발붙이고 살아가는 지구는 태양계에 속하고 태양계는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우주의 특별할 것 없는 일부다. 시간이라는 축을 두고 보면 시공간 속 인류의 역사마저도 티끌이나 될까 모르겠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각자의 자리에서 인류의 작은 족적, 자신만의 역사를 써 내려가는 중이다. 역사의 구성물로써의 우리는 어쩌면 자신의 본질을 모른다는 사실도 모른 채 살아왔는지도... 우리가 잘 살아야 할 이유가 이기적 유전자에 나오는 종족의 번식 단지 그것뿐인 걸까? 작게 생각해 보면 내 아이가 이 세상을 잘 살기 위해서, 조금 더 넓혀보면 후세를 위해 역사를, 특히나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를 아는 것은 미래의 생존을 유리하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역사란 이미 결론이 나버린 이야기다. 한때 높은 계급으로 운이 좋게 태어난 사람들만 살만했던 적도 있었고 잘 상상할 수는 없지만 지옥과 다름없던 전쟁의 시기도 지나왔다. 지금의 우리는 비교적 평온해 보이는 시국이라 보다 나은 방향으로 변해가는 인류를 믿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불과 얼마 전 코로나가 왔을 때 실체도 제대로 알 수 없어 두려움만 가득했던 그 시절을 떠올려본다. 짧은 기간이긴 했지만 비관론이 팽배해지면서 우리는 두려움에 빠졌었다. 그때 다들 어떻게 마음을 다잡았는지 모르겠다. 나는 까뮈의 페스트를 읽었다. 그 속에 우리가 있었다. 그리고 그 속에 결국 찾아온 희망도 있었다. 역사의 의미는 어쩌면 힘든 현실을 만날 때 찾는 희망 아닐까?
E.H. 카, 저자의 일생은 세계 1차 대전과 세계 2차 대전을 관통한다. 엘리트층이라는 사람들이 회의적이고 비관적으로 세상을 해석했을 때 저자는 희망으로 우리의 미래를 내다봤다. 아직 세상은 살만하고 앞으로 인류는 진보할 것이라 믿었다. 그가 말하는 역사란 무엇이고 역사를 통해 우리는 무엇을 알 수 있을까?
역사란 무엇인가?
저자가 말하는 역사는 현재를 살아가는 역사가와 과거 사실 간의 끊임없는 상호작용이자 대화다. 따라서 역사를 알기 위해서는 역사를 조사한 역사가가 속해있던 역사적, 사회적 환경을 알아야 한다. 역사가도 결국은 역사와 사회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작은 의문이 생겼다. 역사가에 의해서 다르게 해석이 될 수 있는 이런 역사가 과학적인 학문적 의미를 지닐 수 있을까? 역사가의 해석에 따라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다면 그 역사는 보편적인 사실이 될 수 없고 일반화가 불가능하다. 일반화가 불가능하다는 것은 역사를 통해서 미래를 내다볼 수 없다는 말이다. 이에 저자는 책을 통해 말한다. 역사란 일반화를 통해 번성한다. 조각으로 뿌려진 수많은 사실들 중에 일반화할 수 있는 사료들을 과학적 기준으로 골라내는 것이 역사가들의 할 일이다. 이러한 선별로 인해 일반화된 역사는 그 속에 있는 가르침을 당대 혹은 후대에 남기기 위한 목적을 가진다. 따라서 역사는 보다 과학적이 되어야 하고 역사가들은 통일된 명확한 기준으로 역사를 취사선택, 해석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리고 우리는 늘 그런 방향으로 진보하고 있다.
늘 진보하고 있다는데 동의하고 싶지 않을 수도 있다. 나는 이 부분을 읽을 때 히틀러의 집권이 가장 마음에 걸렸다. 그러나 우리의 진보는 일정한 출발과 종점이 없는 것처럼 일직선의 진보가 아니다. 약간의 후퇴도 있지만 결국엔 낙관적인 미래를 예측하는 진보를 말한다. 인간은 합리적인 이성을 가졌으므로..
글쓰기에 관심이 많은 나에게 저자가 말한 역사가의 일이 눈에 들어왔다. 중요한 사료를 읽다 보면 쓰고 싶어 못 견디고 그러다 보면 읽으면서 쓰는 작업을 계속하게 된다. 읽는 동안 쓰기는 추가, 삭제, 수정된다. 읽기는 쓰기로 인해 풍부해지고 쓸수록 더 많이 알게 된다. 이것은 내가 책을 읽었을 때 일어났던 일들이다. 책을 읽으면 쓰고 싶고 읽기와 쓰기는 서로에게 더 풍부한 읽을거리와 쓸거리를 제공한다. 그리고 더 많은 지식을 남겨준다.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었다. 문단의 길이가 길고 내용도 쉽게 들어오지 않았다. 페이지가 잘 넘어가지 않았다. 하지만 글의 내용을 담고 있는 굵직한 한 줄을 발견할 때마다 읽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이래서 고전이구나! 싶은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