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본캐가 좋아지려 할 때
역사란 무엇인가 - 키워드 : 역할
[가짜노동]이 베스트셀러에서 눈길을 끌었던 적이 있다. 그때 애써 외면했지만 내 일에 대해 드는 부정적인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내 일은 부지런함을 미덕으로 생각하는 사회에서 억지로 만들어낸 가짜노동이 아닐까? 건강검진센터에서 내가 하는 문진이라는 일은 그 본래의 가치를 잃은 것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의사를 만나지 않고 검진을 해도 대부분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단순 반복되는 일과 질문까지 복제한 듯 동일해서 더 그렇게 느껴졌다. 이렇게 사는 건 그야말로 우스갯소리로 말하는 월급루팡이 나인 것 같았다. 이런 사회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는 생각은 의욕을 떨어뜨리고 일을 떠날 생각만 키워가게 만들었다.
우리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게 일하는 시간이라는 글을 본 적이 있다. 그 많은 시간을 들이는 일과를 때우는 시간으로 죽이고 하루에 겨우 몇 시간 삶의 기쁨을 찾는다면 과연 내 삶이 올바로 굴러가는 것일까? 이런 생각의 흐름은 결국 퇴사만이 살길이며 그 길만이 날 행복으로 날라줄 것 같았다. 하지만 현실은 한 달의 무급휴가도 신청하지 못하는 지금이라니... 대책이 필요했다. 내 일의 본질은 무엇일까? 내가 하고 있는 일의 의미는 뭘까? 한참 다이어리한쪽에 의미 없는 선만 그어보지만 떠오르지 않았다.
사람들의 건강에 관한 질문에 답을 주는 게 내 일의 본질일까? 아니다. 내가 아니어도 인터넷만 찾아도 검증된 자료들이 많다. 오히려 업데이트되지 않은 내 정보가 틀렸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검진과정 다음 차례로의 안내가 내 일의 본질일까? 안내인이 없어서 이곳에 앉아있는 것은 아니리라. 아니면 국가에 국민 건강 데이터를 확보해 주는 게 그래서 정책적으로 유용한 다량의 정보를 주는 게 내 일의 본질인 걸까? 데이터 모으는데 내가 이 자리에 있을 필요가 없을 듯하다. 그러다 하나의 비교적 만족스러운 답을 찾았다. "사람들이 평범한 행복을 유지하기 위해 예방적 치료를 가장 먼저 캐치해 주고 불안을 줄여주는 건강한 삶 가이드"
나는 가장 일반인과 가까이 있는 의사다. 내 상상이긴 하지만 가끔 외과의사는 조금 과장하면 신과도 같은 기분을 느낄 때가 있을 것 같다. 암을 수술해서 완치를 시켜 확실하게 생명을 연장시키고, 심장을 멈췄다가 혈관을 교체하고 다시 심장을 뛰게 만드는, 실로 기적과도 같은 일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직 환자가 되지 않은 사람들의 소소한 걱정을 들어주는 것이다.
사람들은 걱정이 많다. 인터넷이 발전하면서 정보가 많아지고, 많아진 정보는 사람들이 직접 많은 것을 찾아볼 수 있게 만들었다. 하지만 많아진 정보 덕분에 사람들은 걱정도 늘었다. 자신의 특별하지 않은 증상을 걱정하거나 일반적일 수 있는 정도를 크게 부풀려 걱정하곤 한다. 그러면서도 너무 걱정되는 나머지 검사를 받지는 않는다. 자신이 걱정하는 결과가 나올까 봐 바쁘다는 이상한 핑계로 외면하려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 이런 사람들은 병원에 가길 두려워한다. 하지만 2년에 한 번씩 검진은 오고 내게는 이런 고민을 털어놓는 일이 많다.
내 일의 가치는 사람들의 지나친 걱정을 벗어나게 도와주는 데 있다. 검사와 진료로 이어지게 도와주고 걱정을 거기서 멈추는 게 아니라 적극적인 치료를 돕거나 괜한 걱정에서 벗어나 일상을 더 긍정적으로 살게 해 준다. 세상을 좀 더 밝게 만드는 가치가 내 일에 있다.
언제 또 내 일에 대한 가치와 본질이 바뀔지 모른다. 분명한 건 변화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건 적어도 불안한 수정이 아니라 내가 내 일을 더 보람 있고 열정을 쏟기 위한 나만의 다짐과 위한을 위한 혼자만의 주문이다.
일이 아름답거나 기대에 찬 시작은 아니었다. 부모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 드러낼 수 없는 초라한 시작이었다. 모두 전공의를 할 때 그만두고 나와 돈을 벌면서 나는 거기 멈췄다. 다들 높게 넓게 더 나아갈 때 성장이 멈춰버린 초라 나한 나무가 된 것 같았다. 어디에서도 인정받을 수 없었다. 사실 어디에도 인정받을 필요가 없었으나 자격지심으로 결국 나 자신을 미천하게 생각했다. 의사 자격증을 갖고 있기는 했다. 각자의 전공을 가진 다른 이들보다 기능이 떨어진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지만 자격을 갖춘다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그렇게 나는 의사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밖에 할 수가 없었고 그냥 그 자리를 견디기 시작했다. 견딘 이유는 단순했다. 아이가 있고 아직 전공을 마치지 못한 남편이 있고 누군가 돈을 벌어야 했다.
그렇게 시작된 일에도 성장이 있었다. 아무리 쉬워 보이는 일도 그 속에 발전이 있다. 보다 빨리 사람을 파악하고 질문을 잘 파악하고 말의 숨긴 무언가를 잘 찾게 되었다. 좋은 기술인지는 모르겠지만 들어와서 인사만 해보면 조심해야 하는 사람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도무지가 말을 끊을 수 없는 사람을 다음 차례를 진행시키는 능력도 생겼다. 그냥 들으면 일하는 꼼수같이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사람을 대하는 직업 특히나 감정적인 부분까지 다뤄야 하는 일을 하면서 나와 상대를 함께 지키는, 그리고 검진과 검사를 잘 진행하는데 필요한 능력이다. 사람을 비교적 잘 대하는 능력이 성장했다. 그 사람의 요점을 잘 파악하고 그 사람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잘 추측하고 내게 듣고 싶어 하는 말과 내가 해야 하는 말을 잘 조율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애증의 내 본래 캐릭터는 의사다. 투철한 직업정신도 없었고 힘든 것도 싫어해서 가장 편안한 일을 하고 있다. 솔직하게 가장 부끄러운 부분이라면 책임지기 싫어서 어쩌면 한발 빠져있었다. 1년마다 계약 갱신이 필요한 직업이라서 한때는 매번 올해까지만 하고 그만둔다는 소리를 달고 살았다. 다른 할 일이 있어서라기 보다가 그냥 그 일이 싫었다. 어쨌든 사람을 대하는 감정노동이었고 환자나 보호자로부터 위협을 받던 위험했던 경우도 두 번 정도 겪어서 더 그랬던 것 같다.
1년 전에 부캐가 생겼다. 아이캔유를 졸업하면서 이룸 멘토가 되었다. 처음에는 튜터라는 이름을 가졌었는데 시작부터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본 직업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쓰고, 잘하려고 노력하면서 점점 더 멘토에 가까운 사람이 되고 있다. 부캐를 키워나가면서 배운 삶을 대하는 자세는 본캐에도 영향을 줬다. 모든 일이 어느 정도는 반복적인 지루함 속에 이루어진다는 사실과 그 속에서도 배움과 보람을 찾는 방법을 배웠다. 한동안 본캐가 싫어 다 던져버리고 부캐를 본캐로 받아들이고 싶었던 적도 있었다.
꿈과 현실 중 선택이었다. 꿈을 버릴 수도 현실을 버릴 수도 없었다. 그래서 부캐에서 배운 삶의 태도를 본캐로 가져가고 있다. 그리고 지금은 훨씬 적은 노력을 쏟고도 개인적으로 만족스러운 대우를 받는 본캐도 좋아지고 있다. 부캐는 내가 좋아하는 일이니 좋고 본캐는 딸과의 유럽여행을 가능하게 해 줬으니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