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4-4. 절망에서 찾은 자유

역사란 무엇인가 - 키워드 : 희망

by Chloe J

절망이라는 단어에는 언제나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올라오는 경험이 있다. 아무리 이야기해도 감정이 마르지 않는다. 100번을 이야기해도 100번 모두 최대치로 슬프고 힘들다. 이따금 어쩔 수 없이 나오기도 하는 이 일은 괜히 쿨한 척 '이젠 괜찮아요.'라고 말하지만 아직 나는 그 절망 속에 한쪽 발을 담그고 있음에 틀림없다. 괜찮다고 말해야 할까 봐 어지간히 친한 사이가 아니라면 말하고 싶지 않다. 나는 둘째를 잃었다. 허둥대다 많이 슬퍼해주지도 못하고 보내놓고 연기로 사라지고 나서 기한 없이 아파한다.


그 속에서는 희망을 찾는 게 죄악인 것 같았다. 그냥 모든 게 나로 인해 생긴 것 같았고 아무도 날리지 않은 그 무거운 화살은 나에게서 떨어져 나가 내게로 박혔다. 아무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혼자서 허우적거렸다.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이 며칠 지나가고 받아 들일수밖에 없는 현실이 앞에 있었다. 그리고 내 품에 안겨 아무것도 모른 채 갑자기 너무 달리진 현실에 불안해하는 딸이 보였다. 유일한 내 희망.


내게 남은 희망을 발견하고 다른 엄마가 되었다. 원래 보통의 다른 엄마들과 같았다. 딸이 3살 때 튼튼 영어를 신청해 아이에게 조기 영어교육을 한다고 선생님을 부르기도 했고, 직장 다니면서도 주말이면 온 동네 문화센터는 다 다니던 열혈 교육맘이었다. 큰 한쪽 마음을 놓치기 전까지 나는 욕심이 앞섰고 아이의 마음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아이가 무언가를 하는 이유는 언제나 나였다. 엄마와 무언가 하는 게 좋아서 내 무릎 위에 앉아 있었는데 나는 정작 아이가 아닌 다른 것을 보고 있었다. 주변의 다른 아이들, 내 아이에 대한 선생님의 반응...


어쩔 수 없는 상실이 지나간 후 딸은 숨만 쉬어도 이쁘다. 잘 먹고 잘 자는 모습을 생명 다하는 날까지 보고 싶은 게 소망이 되었다. 다시는 소중한 것을 잃고는 살아갈 수가 없었다. 남들보다 잘하는 것이 하나도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시간은 흐르고 어느덧 아이는 육 학년이 되었다. 의대 정원 늘리는 이야기에 교육계가 들썩이는 우리나라 같은 곳에서 귀를 닫아도 들리는 소음은 어쩔 수 없지만 하나만은 지키고자 노력한다.

"하고 싶은 거 다 해. 무조건 찬성이야."


경험은 모두 소중하다. 잊고 싶어도 절대 잊을 수 없고 잊어서도 안 되는 기억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잃은 것을 후회하며 절망 속에서 끝도 없이 살아가고 싶지 않다. 힘든 경험이 보여준 희망을 통해 가진 것에서 가치를 찾는 사람이 되려고 한다. 지금 내 곁에 숨만 쉬고 있어도 안도가 느껴지는 딸이 있다. 아이를 향하는 욕심이 빠지면서 보다 더 큰 무조건의 사랑을 줄 수 있게 되었다. 할머니 같은 사랑이라고 할까? 그리도 엄격하시던 엄마가 손녀인 딸에게 주는 무조건의 사랑 말이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이전의 나는 잘하는 만큼의 사랑을 줬다. 나쁜 마음을 먹고 의도한 적은 없었지만 결과적으로 그 조그만 아이에게 성취와 성과를 강요하고 집착했다. 아무런 조건이 없는 사랑을 절망에서 배웠다. 먹은 마음을 실천할 수 있는 아이가 곁에 있다는 희망적 사실이 감격스럽다.


아이를 자유롭게 둘 수 있는 마음을 배웠더니 생각하지도 못했던 기회가 따라왔다. 딸의 꽁무니를 따라다니던 내 시선이 나에게 머물렀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가고 있다. 조금 늦은 감 있는... 이제 와서 부딪혀보고 깨지지만 날 만날 수 있어 다행이다. 나도, 아이도 세상의 틀에서 살짝은 벗어났다. 자유롭다.

keyword
이전 20화4-3. 숨은 행복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