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인간다움, 음식, 고통, 기준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할 수 없다."
텔레비전을 보면 자주 볼 수 있는 아프리카 아이들의 가느다랗고 앙상한 팔다리와 볼록한 배를 보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옛말이다. 안 됐다는 생각이 들 때 선심 쓰듯 몇만 원 몇 개월간 보낸 적도 있지만 절대 해결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도 힘든 아이들이 있는데 거기까지 신경 쓸 여력이 안된다고 생각했다. 마치 다른 차원에라도 사는 듯 느꼈다.
관심이 없었다. 내가 먹고사는데 바빴고 당장 해결해야 할 일들을 처리하다 보니 나도, 가족도, 이웃도 아닌 그들을 걱정할 여력은 없었다. 그리고 여력이 안된다고 생각했다. 세계적으로도 늘어난 인구에 식량이 모두가 먹고살만큼 생산되지 않아서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변명이다. 조금만 세심하게 관심을 가졌으면 알 수 있을 일이다. 한쪽에서는 성인병을 걱정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7초에 한 명씩 10세 미만의 아이들이 이런 세상을 탓할 생각도 하지 못하고 죽어간다. 지금도.
딸의 과학잡지를 보면서 곡물연료 소개가 나왔을 때. 그 글에 적혀있던 단지 환경오염을 줄인다는 문구만, 딱 보여주는 것 밖에 이해하지 못했던 나 자신이 부끄럽다. 한쪽에서는 아무것도 먹지 못해 죽어가고, 한쪽에서는 옥수수를 태워 연료로 사용하고 소고기를 먹기 위해 곡물을 기른다. 소는 비육되고 사람은 굶어 죽는다. 이미 오래전부터 세계 굶주리는 사람들을 먹일 식량은 있었다. 능력도 있었다. 하지만 하지 않았다. 경제적 이유, 정치적 이유로 하지 않거나 외면했다. 심지어 자연도태설을 들먹이며 어쩔 수 없는 인구조절을 위한 세상의 이치라고 생각하기까지 했다.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이런데 있구나! 느꼈다. 편협한 내 세상 속에서 불편한 한쪽을 가려버리고 마음대로 생각하며 살았다. 이런 생각을 바로잡고 적어도 올바로 사실을 볼 수 있기 위해서 이 책을 읽어야 한다.
책에서 만난 낯 섬은 난민에서도 생겼다. 내게 난민은 가난하고 그러다 보니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나쁜 사람들이 많은 집단이었다. 아무런 이유 없이 그들을 싸잡아 일반화했다. 몇 해 전 우리나라에 난민을 들이는 이야기가 나왔을 때 누군가에 의해서 유포된 난민이라고 설명된 사람들로부터 공격받는 사람의 영상이 두려웠다. 그 제목에 쓰인 난민의 공격을 단 한 번 의심도 없이 믿어버렸다. 유명 연예인이 난민에 대한 소신발언에 비난을 받았다. 그때 함께 비난의 댓글을 다는데 속해 있지는 않았지만 그들 뒤에서 은근한 동의를 하고 있었던 게 나다. 이번 유럽 여행을 가면서도 난민 이야기가 나왔다. 영국이 난민을 받아들이고 치안이 안 좋아졌다는 이야기, 파리에 소매치기가 많은데 단체 원정단은 난민들이라는 이야기... 이 출처를 찾을 수 없는 이야기를 한 번의 의심 없이 믿었다.
책 속의 난민은 단지 그곳에서 태어나고 자랐다는 이유로 낙인찍힌 사람들일 뿐이었다. 전쟁 때문에, 더 이상 농사를 지을 수 없는 환경 때문에 난민이 된 이들이 단지 살기 위해서 그곳에 있었다. 우리들은 둔감하지만 당장이라도 북한에서 전쟁을 일으켜도 이상하지 않을 휴전상태에 우리는 살고 있다. 우리가 전쟁이 일어나 살던 곳에서 살 수 없어 떠나야 한다면 난민이 된다. 단지 남의 일이기만 한 것도 아니다. 똑같은 사람의 생명임에도 그들은 난민 캠프에서조차 선별작업 당한다. 효율적인 생명구조라는 이름하에...
온세계가 먹을 식량이 있는 상태에서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서의 인간이 누군가를 비참하게 굶주림에 고통스럽게 죽게 내버려 두는 이유는 어떻게 생각해도 구차하다. 하지만 이 문제야말로 가장 많은 사람들의 동의하에만 해결의 시작을 시도라도 해 볼 수 있다. 따라서 현실을 직시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람이라면 먹을 것이 없어 사라져 가는 생명에 안타까움과 미안함을 느낀다. 단지 그곳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두 발로 서서 세상을 보지도 못하고 죽어가는 아이가 없도록 그렇게 두는 것이 올바르지 않다고 학교에서부터 가르쳐야 한다.
적어도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게 에너지는 줘야 하지 않을까? 사람은 혼자서 살 수 없고 사람은 모두 존엄하다. 그들의 존엄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정치, 경제적 이유로 내 생명의 존엄도 보장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