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떡볶이를 좋아한다. 워낙 떡도 좋아하고 매운 것도 좋아하는 편인데 그 둘의 조합이라니! 그래서 일주일에 한 번은 먹는다. 간편하기까지 해서 남편이 없는 주말에는 고정 메뉴다. 쌀떡인 가래떡으로 먹으면 떡의 쫀득함에 양념이 잘 밴 떡볶이가 맛있고, 밀떡으로 먹으면 매콤 달달 양념맛에 쫄깃쫄깃 식감까지 느낄 수 있는 국물떡볶이를 만들어 먹을 수 있어서 좋다. 조롱이떡이나 떡국떡이 있어도 떡볶이를 만드는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렇게 만들어먹는 주말 점심 떡볶이는 행복이다.
그런 떡볶이를 최근 가능하면 덜먹으려고 노력 중이다. 마음으로만... 헬스장에서 PT를 받은 지 1년이 넘었다. 처음 그곳에서 상담을 받을 때 트레이너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너무 스트레스받지 마시고 적당히 단백질 섭취를 생각하면서 식사하시면 돼요. 떡볶이 같이 탄수화물만 잔뜩인 음식만 좀 피하면 되죠!"
소심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면 신경도 쓰지 말 것이지 혼자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렇다고 떡볶이를 안 먹는 것도 아니었다. 아니, 절대 그만 먹을 수 없었다. 떡볶이는 나의 소울푸드가 아닐까 싶다. 국민학교시절 에너지 넘치는 나는 어딜 가도 그렇게 뛰어다녔다. 방과 후 친구와 달리기로 교문을 통과해 나오면 교문 양 옆으로 문구점이 2개씩 각양각색의 희한한 물건들로 아이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문구점마다 주인의 솜씨를 뽐내며 팔던 떡볶이 맛은 아이들 사이에 호불호를 갈랐고 나는 절친과 조금 매콤한 양념의 떡볶이를 팔던 문구점 한 군데와 걸쭉하면서 달달한 양념의 옆집을 번갈아 들렀다.
문방구 한쪽 편 곤로에 끓여 팔던 떡볶이를 100원, 200원 주문하면 초록색 점박이 접시에 일회용 비닐을 뒤집어 씌우고 한국자 듬뿍 건네받는다. 이렇게 친구와 호호 불어가며 먹던 게 떡볶이의 시작이었다. 엄마를 따라 시장에 나가면 커다란 철판에 시뻘겋게 양념된 애기 팔목만큼 굵은 가래떡 떡볶이를 팔았다. 이쑤시개로 하나씩 콕콕 찍어먹으며 한입 베어문 떡을 다시 양념장에 푹 찍었다. 코로나 이후로는 생각도 할 수 없는 위생관념이었다. 혼자 자취를 처음 시작했던 그때, 할 줄 아는 음식이라고는 김치찌개와 떡볶이 밖에 없어서 파스타처럼 뭐든 떡볶이로 변신시켜 먹던 전투식량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내가 엄마를 좋아하듯 날 좋아하는 딸과 수다 떨어가며 시간을 보낼 핑계가 돼주는 게 떡볶이다.
늘어나는 체중에 마음을 멀리 해보려고 노력하지만 사실 쉬운 일은 아니다. 어디 음식이 배가 고파서만 먹겠나? 그래! 살 좀 덜 빼고 운동 더하지 뭐...
떡볶이가 현재의 나와 딸의 추억음식이라면 나와 엄마의 음식에도 추억이 있다. 중앙분식이라는 쫄면집이 있다. 내가 자란 경상북도 영주에서는 꽤나 유명한 집이다. 메뉴는 쫄면뿐이었다. 친정을 가면 몇 끼 못 먹고 돌아와야 하는데 그곳에는 들러야 했다. 가끔 엄마가 집에 오실 때 포장해서 가져오시기도 할 정도로 좋아했다. 맛도 맛이지만 그곳에는 내 어린 시절과 학창 시절이 모두 들어있다. 새로 리모델링해서 많이 식당스러워지기 전에는 흡사 옛날 다방 같은 모습의 분식 식당이었다.
엄마가 매운 음식을 좋아했고 나는 엄마를 좋아했다. 엄마랑 그런 것도 닮고 싶었던 게 분명하다. 5명의 가족 중에서도 둘만 신호를 주고받곤 했다. 엄마와 친구처럼 기대하며 시내를 가로지르던 그때가 그립다. 지금은 쫄면 안 먹은 지 10년은 더 된듯하다. 엄마의 소화력이 떨어지면서 쫄면이 부담스러워지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자연스럽게 안 먹게 되었다. 나는 내가 정말 쫄면을 좋아하는 줄 알았다.
엄마에서 나로, 나에게서 딸로 사랑은 음식을 통해서 흐르는데 우리 집에는 음식이 없다. 없다기보다는 없애려고 한다. 늘 다이어트를 하고 있는 남편을 배려한 부분이기도 하고 음식을 남기는 걸 싫어하기 때문에 많이 만들지도 않는다. 만들까 말까? 살까 말까?를 고민하면 안 만들고 안 사는 편이다. 이런 우리 집에도 음식이 넘쳐날 때가 있다. 바로 친정엄마가 집에 오실 때다. 무릎도 안 좋으시면서 우리 집에 오실 때마다 캐리어 한가득 반찬을 갖고 오신다. 전에는 이게 싫었다. 엄마가 힘든 것도 싫고, 엄마가 만들어준 음식을 다 못 먹어서 버리게 되는 건 더 싫었다. 그래서 갖고 오실 때마다 안 좋은 소리를 했었다. 엄마를 생각해서 한 말이니 서운해하지는 않으셨지만 알았다고 하면서도 늘 가방에 한가득 반찬을 싸들고 오셨다.
요즘은 싫어하지 않고 그냥 받는다. 잘 먹겠다고 말하고 먹는 장면을 인증사진까지 찍어서 보낸다. 너무 많다는 소리는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음 가방은 더 무거워질 테니...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엄마와의 시간 때문이다. 소중히 받아들이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냉장고를 채우고 있는 반찬은 짐이었다. 이럴 때면 몇 가지 반찬을 소진하는 나만의 방법이 있다. 반찬을 꺼내먹다 지치면 첫 번째로 시도하는 건 비빔밥이다. 양푼이에 밥과 함께 반찬을 넣고 고추장 한 숟갈 혹은 양념간장 한 숟갈을 얹는다. 거기 사람수, 숟가락 개수만 맞춰서 고루 양념이 섞이도록 잘 비벼 먹는다. 비빔밥도 3번이면 지친다. 그렇다면 다음 시도해 보는 건 밥전이다. 비빔밥보다 간을 적게 해서 비빈 밥에 달걀을 적당히 넣고 섞어서 전으로 부쳐먹는 방법이다. 부침개로 먹으면 색다른 맛이 있다. 이렇게 먹어도 반찬이 남았을 때 마지막으로 해볼 수 있는 방법은 김밥이다. 이때 김밥 속을 준비하지 않는다. 김밥에 넣을 재료는 그냥 냉장고에 있는 반찬이다. 신기하게도 김밥은 모양 자체로 다른 음식인 듯 만들어준다. 반찬이 애매하다면 단무지만 추가해도 한두 끼는 거뜬히 해결 가능하다. 한번 말기가 귀찮아서 그렇지 10줄 정도 말아두면 2끼 정도는 해결가능하니 일석이조다.
하루에 2~3번씩 누군가 만든 음식을 먹는다. 누군가의 시간을 먹는다. 누군가와 함께 먹는다. 음식은 단지 맛이나 에너지로만 설명되지 않는 마음이 담긴다. 마음이 담긴 식사를 하며 함께하는 이의 마음도 사랑으로 헤아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