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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떡볶이, 쫄면, 밑반찬의 공통점

왜 세상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 키워드 : 음식

by Chloe J

나는 떡볶이를 좋아한다. 워낙 떡도 좋아하고 매운 것도 좋아하는 편인데 그 둘의 조합이라니! 그래서 일주일에 한 번은 먹는다. 간편하기까지 해서 남편이 없는 주말에는 고정 메뉴다. 쌀떡인 가래떡으로 먹으면 떡의 쫀득함에 양념이 잘 밴 떡볶이가 맛있고, 밀떡으로 먹으면 매콤 달달 양념맛에 쫄깃쫄깃 식감까지 느낄 수 있는 국물떡볶이를 만들어 먹을 수 있어서 좋다. 조롱이떡이나 떡국떡이 있어도 떡볶이를 만드는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렇게 만들어먹는 주말 점심 떡볶이는 행복이다.


그런 떡볶이를 최근 가능하면 덜먹으려고 노력 중이다. 마음으로만... 헬스장에서 PT를 받은 지 1년이 넘었다. 처음 그곳에서 상담을 받을 때 트레이너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너무 스트레스받지 마시고 적당히 단백질 섭취를 생각하면서 식사하시면 돼요. 떡볶이 같이 탄수화물만 잔뜩인 음식만 좀 피하면 되죠!"


소심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면 신경도 쓰지 말 것이지 혼자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렇다고 떡볶이를 안 먹는 것도 아니었다. 아니, 절대 그만 먹을 수 없었다. 떡볶이는 나의 소울푸드가 아닐까 싶다. 국민학교시절 에너지 넘치는 나는 어딜 가도 그렇게 뛰어다녔다. 방과 후 친구와 달리기로 교문을 통과해 나오면 교문 양 옆으로 문구점이 2개씩 각양각색의 희한한 물건들로 아이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문구점마다 주인의 솜씨를 뽐내며 팔던 떡볶이 맛은 아이들 사이에 호불호를 갈랐고 나는 절친과 조금 매콤한 양념의 떡볶이를 팔던 문구점 한 군데와 걸쭉하면서 달달한 양념의 옆집을 번갈아 들렀다.


문방구 한쪽 편 곤로에 끓여 팔던 떡볶이를 100원, 200원 주문하면 초록색 점박이 접시에 일회용 비닐을 뒤집어 씌우고 한국자 듬뿍 건네받는다. 이렇게 친구와 호호 불어가며 먹던 게 떡볶이의 시작이었다. 엄마를 따라 시장에 나가면 커다란 철판에 시뻘겋게 양념된 애기 팔목만큼 굵은 가래떡 떡볶이를 팔았다. 이쑤시개로 하나씩 콕콕 찍어먹으며 한입 베어문 떡을 다시 양념장에 푹 찍었다. 코로나 이후로는 생각도 할 수 없는 위생관념이었다. 혼자 자취를 처음 시작했던 그때, 할 줄 아는 음식이라고는 김치찌개와 떡볶이 밖에 없어서 파스타처럼 뭐든 떡볶이로 변신시켜 먹던 전투식량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내가 엄마를 좋아하듯 날 좋아하는 딸과 수다 떨어가며 시간을 보낼 핑계가 돼주는 게 떡볶이다.


늘어나는 체중에 마음을 멀리 해보려고 노력하지만 사실 쉬운 일은 아니다. 어디 음식이 배가 고파서만 먹겠나? 그래! 살 좀 덜 빼고 운동 더하지 뭐...


떡볶이가 현재의 나와 딸의 추억음식이라면 나와 엄마의 음식에도 추억이 있다. 중앙분식이라는 쫄면집이 있다. 내가 자란 경상북도 영주에서는 꽤나 유명한 집이다. 메뉴는 쫄면뿐이었다. 친정을 가면 몇 끼 못 먹고 돌아와야 하는데 그곳에는 들러야 했다. 가끔 엄마가 집에 오실 때 포장해서 가져오시기도 할 정도로 좋아했다. 맛도 맛이지만 그곳에는 내 어린 시절과 학창 시절이 모두 들어있다. 새로 리모델링해서 많이 식당스러워지기 전에는 흡사 옛날 다방 같은 모습의 분식 식당이었다.


엄마가 매운 음식을 좋아했고 나는 엄마를 좋아했다. 엄마랑 그런 것도 닮고 싶었던 게 분명하다. 5명의 가족 중에서도 둘만 신호를 주고받곤 했다. 엄마와 친구처럼 기대하며 시내를 가로지르던 그때가 그립다. 지금은 쫄면 안 먹은 지 10년은 더 된듯하다. 엄마의 소화력이 떨어지면서 쫄면이 부담스러워지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자연스럽게 안 먹게 되었다. 나는 내가 정말 쫄면을 좋아하는 줄 알았다.


엄마에서 나로, 나에게서 딸로 사랑은 음식을 통해서 흐르는데 우리 집에는 음식이 없다. 없다기보다는 없애려고 한다. 늘 다이어트를 하고 있는 남편을 배려한 부분이기도 하고 음식을 남기는 걸 싫어하기 때문에 많이 만들지도 않는다. 만들까 말까? 살까 말까?를 고민하면 안 만들고 안 사는 편이다. 이런 우리 집에도 음식이 넘쳐날 때가 있다. 바로 친정엄마가 집에 오실 때다. 무릎도 안 좋으시면서 우리 집에 오실 때마다 캐리어 한가득 반찬을 갖고 오신다. 전에는 이게 싫었다. 엄마가 힘든 것도 싫고, 엄마가 만들어준 음식을 다 못 먹어서 버리게 되는 건 더 싫었다. 그래서 갖고 오실 때마다 안 좋은 소리를 했었다. 엄마를 생각해서 한 말이니 서운해하지는 않으셨지만 알았다고 하면서도 늘 가방에 한가득 반찬을 싸들고 오셨다.


요즘은 싫어하지 않고 그냥 받는다. 잘 먹겠다고 말하고 먹는 장면을 인증사진까지 찍어서 보낸다. 너무 많다는 소리는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음 가방은 더 무거워질 테니...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엄마와의 시간 때문이다. 소중히 받아들이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냉장고를 채우고 있는 반찬은 짐이었다. 이럴 때면 몇 가지 반찬을 소진하는 나만의 방법이 있다. 반찬을 꺼내먹다 지치면 첫 번째로 시도하는 건 비빔밥이다. 양푼이에 밥과 함께 반찬을 넣고 고추장 한 숟갈 혹은 양념간장 한 숟갈을 얹는다. 거기 사람수, 숟가락 개수만 맞춰서 고루 양념이 섞이도록 잘 비벼 먹는다. 비빔밥도 3번이면 지친다. 그렇다면 다음 시도해 보는 건 밥전이다. 비빔밥보다 간을 적게 해서 비빈 밥에 달걀을 적당히 넣고 섞어서 전으로 부쳐먹는 방법이다. 부침개로 먹으면 색다른 맛이 있다. 이렇게 먹어도 반찬이 남았을 때 마지막으로 해볼 수 있는 방법은 김밥이다. 이때 김밥 속을 준비하지 않는다. 김밥에 넣을 재료는 그냥 냉장고에 있는 반찬이다. 신기하게도 김밥은 모양 자체로 다른 음식인 듯 만들어준다. 반찬이 애매하다면 단무지만 추가해도 한두 끼는 거뜬히 해결 가능하다. 한번 말기가 귀찮아서 그렇지 10줄 정도 말아두면 2끼 정도는 해결가능하니 일석이조다.


하루에 2~3번씩 누군가 만든 음식을 먹는다. 누군가의 시간을 먹는다. 누군가와 함께 먹는다. 음식은 단지 맛이나 에너지로만 설명되지 않는 마음이 담긴다. 마음이 담긴 식사를 하며 함께하는 이의 마음도 사랑으로 헤아려본다.


여러분의 쫄면은? 떡볶이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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