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란 무엇인가 - 키워드 : 나의 역사
한 사람의 역사, 인생의 변곡점에는 사람이 있다. 나는 불안도가 높은 사람이다. 대학을 다닐 때 까지도 학기중은 물론이고 방학도 편히 보내기 힘들었다. 내 불안의 근원은 거의가 밖에 있었다. 나보다 잘하는 친구, 나에게 기대하는 부모님, 공부를 그리 잘하지 못해서 선생님께 관심받지 못한 것 모두가 불편했다. 좌불안석. 마음이 바닥으로 내려앉지 못하고 늘 심장 위 목구멍 바로 밑에서 두근거리며 머리를 쉼 없이 부정적인 스토리를 쓰게 만들었다. 그 마음으로 수험생활과 남들보다 긴 학교생활을 버텼다.
그때 한 동기 남학생을 만났다. 3명이 한 조로 활동하는 실습에서 한조가 되었다. 1년을 함께하게 될 4살 어린 그 애를 처음에는 좋아하지 않았다. 서있어도 무릎이 나와있는 운동복을 입고 여자 동기들과 대화하는 것을 본 적이 별로 없을 정도로 조용했다. 나와는 한 번쯤 인사를 해봤나 어쨌나 생각도 잘 안 났다. 비호감이라기보다는 서로에게 무관심이었다. 나와는 다른 세계에 사는 아이. 게임을 하면서 도서관도 잘 안 오는데 시험은 잘 치는...
연애라는 걸 네이버에서 배운 모태솔로인 그가 같은 조가 된 지 2주가 되었을 때 사귀자고 고백을 했고 어쩌다 보니 연인이 되었다. 그 애는 마음이 단단했다. 그 마음 정가운데 자기 자신이 있고 하는 일은 뭐든 자신 있어 보였다. 시험준비를 많이 하든 적게 하든 스스로를 믿었고 후회나 과거에 매달리지 않았다. 그 애를 아주 가까이서 지켜보면서 부러웠다. 닮고 싶었다.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다던데... 나는 변했다. 15년 동안 천천히 좀 더 편안하고 좀 더 안정적인 사람으로 한집에 같이 살고 있는 그 애를 닮아갔다.
남편으로 인해 긍정적인 변화가 시작되긴 했지만 30년 만들어온 성향을 하루아침에 지울 수가 없었다. 결혼 후에도 아이가 태어나기 전 내 삶은 모두 부모에 맞춰져 있었다. 딸이 태어나면서 내 삶은 온통 딸을 통해서만 존재했다. 그리고 마흔이 넘어서 내 삶의 기준을 내게로 가져오고자 혼자만의 투쟁을 하는 중이다. 이기적이고 싶어도 이기적이기 힘든 천상 K장녀로 길러진 나는 가능하면 이기적으로, 나를 기준으로 세상으로 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런 내가 몇 년 전부터 일을 할 때 따르려는 말이 있다. “아님 말고” 실패에 인색하고 도전에 불안한 내가 스스로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격려다. 어떤 실패도, 어떤 고통도 그곳에 머물러있지 않는다. 진부한 옛말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우리의 삶은 앞을 향해간다.
잘못된 결정을 하거나 한참을 공들인 일을 그만둬야 할 순간을 만날 때도 있다. 이때 원망하고 후회해 봐도 소용없다. 그냥 '아님 말고~' 뒤돌아 나오면 된다. 적어도 그 힘듦을 견디고 버티며 경험치가 쌓였다. 다른 길로 다시 시작해도 적어도 체력이라도, 맷집이라도 좋아져 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이기만 한 게 아니라 실패는 도전의 다른 말이고 성공의 씨앗이다.
한 번도 멈추지 않고 우리는 변화해 왔다. 우리를 변화시키는 것은 시간이다. 시간 속 경험은 우리를 조금씩 채워가며 키운다. 때로 경험은 역방향으로 거슬러 가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역사도 그랬다. 큰 전쟁을 겪으면서 인류는 뒤로 거슬러 흘러가는 것처럼 보였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코로나 때만 해도 우리는 한동안 본능 그 이상을 생각할 수 없었다.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과거에서 우리는 배울 점을 찾고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역방향으로 흘러가 보였던 시간은 약간의 벗어남이었고 결국 우리는 다시 진보 위에 서있다.
우리의 역사도 마찬가지다. '쓸모없는 경험은 없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지방 공과대학에 입학해 지금 하는 일과 하나도 상관없는 이론을 배웠다. 다시 대학을 들어가면서 지난 4년이 쓸모없는 버려진 아까운 시간이라는 생각뿐이었다. 이제와 문득 생활 속에서 화학, 물리를 이해하고 아이에게 설명해 주는 나를 발견할 때면 배운 게 어디 가지 않는다는 말이 맞다 싶다. 또 그때 신나게 허송세월 보냈으니 지금의 내가 이렇게 열정을 가질 수 있는 게 아닐까? 그 어떤 경험도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이따금 일직선상에서 벗어날 수 있지만 자기 가치판단만 할 수 있다면 나는, 우리는, 진보한다.
그 진보의 끝에서 나는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첫 끄적임은 나를 위한 위로로 시작되었다. 세상의 중심을 내게 가져오면서 위로보다 나아가고 싶은 열망이 생겼다. 세상을 알고 싶고 알면 나누고 싶어졌다. 나눔도 처음에는 나를 드러내지 않고 시작되었다. 결국 사회적 동물인 인간으로 소통이란 게 하고 싶어졌다. 그리고 꿈이 생겼다. 책을 쓰고 싶다는 꿈. 책으로 한삶을 살다가는 증거를 남기기보다 공동체 속에서 함께한다는 존재감을 느끼고 싶다. 그리고 삶의 결과로 쓰인 책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