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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이 Sep 24. 2024

남의 집 생활자

 


 우리 집에는 에어컨이 없다. 3년째 에어컨 없이 생활하고 있다. 첫해에는 에어컨이 고장 났다. 오래된 에어컨이 고장 나서 새로 구입하는 편이 더 나은 것 같았다. 그런데 1년 후에 이사계획이 있으니 첫해는 에어컨 없이 더위를 참았다. 내가 살았던 지역은 여름에 매우 더운 편이었는데도 견딜만했다. 환경도 생각하고 전기세도 줄일 수 있어서 오히려 좋았다. 



 이사를 와서 작년 여름은 더웠다. 뒷산이 있고 남향인 집에는 여름에 에어컨이 필요 없을 정도로 시원하다는 거주자들의 후기와는 다르게 후끈했다. 기후변화 때문에 지구가 많이 힘들어서 그럴 것이다. 거기다 습도가 너무 높아 후덥지근했다. 하지만 이사 온 집도 2년만 살 계획이었다. 이미 더운 지역에서 1년을 보내고 온 후라서 새로 에어컨을 장만하지 않고 버티기로 했다. 환경보호에 매우 민감한 가족도 에어컨이 필요 없다면서 선풍기만으로 잘 견뎌 주었다. 



 그리고 올해 대망의 무더위가 시작되었다. 7월 말 가족의 휴가가 시작되는 시점부터 찌는듯한 더위가 시작되었다. 불 앞에서 요리를 할 때와 청소를 할 때, 더운 베란다에 빨래를 널 때 땀이 주르륵 흘렀다. 그래도 나는 견딜만하다고 생각했다. 다른 가족은 한창 더울 낮시간에 에어컨이 빵빵한 건물로 가서 잠바를 꺼내 입어야 할 정도로 추위를 타다가 돌아온다(여름에 긴팔 입고 겨울에 반팔 입는 거 정말 이해불가). 주말마다 에어컨이 없는 집으로 오는 또 다른 가족이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밤마다 열대야를 겪으니 온 가족이 잠을 푹 잘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엄마의 집으로 대피했다. 




 


 

 엄마도 사실 에어컨을 잘 틀지 않는다. 우리 가족까지 복작대니 에어컨을 가동한다. 짐까지 싣고 와서 쾌적한 날들을 보냈다. 우리 집이 아닌 남의 집 거실에 편하게 드러누웠다. 역시 어딜 가든 집이 최고다. 아침부터 책을 쌓아놓고 읽었다. 엄마 반찬도 맛이 좋았다. 서로가 불편했지만 서로에게 도움을 주었다. 우리 가족이 신세를 지는 입장이었으므로 내가 집안일을 도왔다. 엄마도 너무 불편했겠지만 매끼 혼자 밥을 먹다가 가족이 함께 끼니를 챙겨 먹는 것이 좋아 보였다. 나도 너무 덥다는 가족들의 아우성을 듣지 않게 되어 좋았다.



 열흘가량 머물면서 많은 대화가 오고 갔다. 평소에 가까운 곳에 사는 가족이지만 사실 그렇게 자주 만나지도 않았다. 우르르 몰려와 죄송스러운 마음도 있었지만 배달음식도 먹고 에어컨도 트는 일탈이 좋았다. 한편으로는 불편하기도 해서 휴가기간이 끝나자 얼른 집으로 돌아왔다. 어딜 가든지 내가 머무르는 곳을 어지럽히지 않고 잘 지내는 것이 중요하다. 집으로 돌아오니 또 우리 집의 소중함을 알 수 있었다. 나에게 알맞게 꾸려진 집안을 보니 안심이 되었다. 더운 여름 나에게는 아이스팩과 선풍기가 있었다. 







 이사를 가면 에어컨을 구입할 예정이다. 이제 여름은 4월부터 11월까지라고 한다. 찬물샤워를 여러 번 하고도 기력이 빠지는 여름이었다. 올겨울은 한파가 몰아친다고 한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고통받고 있다. 집안 온도가 30도 아래로 내려가야지 생활하는 것도 잠을 자는 것도 힘들지 않은 것 같다. 가족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기 때문에 나 혼자만 괜찮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올해 여름은 남의 집에서 무사히 버텼다. 우리 모두 잘 이겨낼 수 있도록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고민하고 실천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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