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순간부터 나는 평범한 삶의 위대함을 동경했다. 매일 하루하루의 시간이 흐르지만 아침이 찾아오는 것이 두려운 순간들이 있었다. 아무 일 없이 무사하길 바라는 마음이 커졌다. 나는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았는데 어김없이 버거운 하루가 찾아오곤 했다.
내가 일확천금을 바라는 것도 아니고 그저 아무 일 없이 평범하기를 바라는 것은 작은 소망이기에 욕심을 부리는 것이 아니라 겸손한 자세라 생각했다. 하지만 하루하루 무사하다는 것은 큰 행운이다.
학창 시절에 시간이 아까운 순간은 시험 기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일을 하게 되고 점차 남을 위해 시간을 써야 할 경우가 많아지자 억울했다. 집안일을 하면서는 언제나 시간이 부족했고 못마땅했다. 시간뿐만이 아니었다. 나를 완전히 갈아 넣는 희생을 해야 할 때도 있었다. 매일이 예상치 못한 사건의 연속이었다.
‘시간이 아깝다’라는 말을 하는 사람은 많이 보았지만, ‘오늘 하루도 참 알차게 보냈다’라는 말을 버릇처럼 하는 사람은 별로 보지 못했다. 우리가 시간을 쓰는 게 아니라 시간이 우리를 쓰고 있다. <간소한 삶에 관한 작은 책, 진민영>
무사함은 큰 행운
온몸에서 기력이 쇠하는 느낌이 들었다. 식사와 잠조차 내 의지대로 하지 못했다. 아주 기본적이고도 당연한 것들이 당연하지 않은 일들이 되었다. 몸이 피곤해졌고 마음도 철저히 지쳐갔다. 고된 하루가 계속되자 내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따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정도로 힘들 만큼의 잘못을 한 적은 없는 것 같았다. 보통 사람들은 그냥 그저 그렇게 잘 살고 있는 것 같은데 뭔가 크게 잘못되었음이 틀림없었다.
아무 일도 없는 날에는 너무 행복했지만 이 행복이 깨질 것 같아 두려울 정도였다. 무사함은 별거 아닌 일이 아니라 아주 커다란 행운이었다. 불행한 순간이 매일, 매시간 찾아오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냥 별일 없는 하루가 끝날 때쯤 긴장이 풀렸다.
힘든 시간은 지나간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평범한 일상의 순간은 언제나 찾아왔다. 가족이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도(물론 원천적인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지만) 밥을 먹고, 잠을 잤고, 전자책을 보고, 병원을 산책했다. 옆 병상 보호자의 위로를 듣고 마음이 따뜻해졌고, 잠시 샤워를 하려는 아기 엄마를 위해 아기를 대신 봐주며 서로를 도와주었다. 병원에 있다는 사실은 안타깝지만 살아있다는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다.
사실 힘든 시간들은 지나가고 있었다. 아픈 사람은 병이 낫고 있었고, 나는 힘들고 불편하다고 생각했던 환경에 적응하고 있었다. 나는 혼자 사는 것을 선택하는 대신 스스로의 의지에 의해 가족을 이루었고, 그에 따른 책임을 질 수밖에 없었다. 힘든 시간, 평범한 시간, 행복한 시간은 번갈아 가면서 찾아온다. 내 감정이 기쁨, 슬픔, 우울, 희망, 지루함 등으로 바뀌듯이 굳이 나누지 않아도 일상은 흘러가는 것이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도 어쩌면 매일 수도 없이 많은 일들을 겪으면서 크고 작은 어려움을 안고 살아갈 것이다. 삶이란 흔들리고 불완전한 것이다. 소설을 보더라도 기승전결이 따른다. 큰 고통은 내 인생에서 가장 갈등이 고조되는 순간이라고 생각했다. 두려워하는 것은 시간 낭비다.
시간이 다 해결해 준다는 말이 사실은 정말 맞는 말이다. 삶이 고달프다는 생각이 들 때 과거의 힘들었던 그때를 생각한다. 과거의 두려움에서 벗어나 현재의 행복을 만끽한다. 미래에 또 괴로움이 찾아올지 몰라 불안해하지 않고 지금을 묵묵히 버텨낸다. 일상이 엉망이 될 때에도 다시 회복하는 힘을 믿는다.
잠들기 전, 오늘 하루도 무사했음에 감사한다. 내일도 평범한 하루가 찾아오길 바라면서 잠이 든다. 이렇게 편안하게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할 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한다. 하고자 하는 일도 큰 꿈도 품고 있다. 그렇게 매일 무언가를 한다는 것이 큰 무기가 되어 내 삶을 이어 갈 것이다. 내 삶에 매일이 꽃이 피고 환하게 빛이 비칠 수는 없을 것이다. 슬픔이 영원할 수는 없듯이 하루하루 무사히 살아가는 나를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