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지런한 개미와 게으른 베짱이 이야기가 있다. 나는 사실 개미와 비슷하게 살아왔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먼저 나서서 일하고 발을 동동 구르며 항상 무언가를 했다. 준비하고 계획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 해야 할 일들을 미루지 않는다. 개미가 부지런히 일을 하고 있을 때 편안하게 누워 악기를 연주하는 베짱이는 얄미워 보인다. 하지만 이제 와서 베짱이를 생각해 보니 그렇게 편해 보일 수가 없다.
나는 무언가를 열심히 하는 것을 좋아한다. 부지런히 움직이고 그에 맞는 좋은 결과를 낼 때 만족감을 얻는다. 계획된 것이 없으면 불안하고 미리 준비를 해 놓아야지만 마음이 편하다. 하지만 그 불안함 때문에 마음이 쉴 틈이 없는 것 같다. 조금은 여유를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집에서 생활하면서 맞이하는 일상은 평범한 것 같지만 매일이 다르다. 가족 중에 누가 아프면 일상은 깨져버린다. 병원을 함께 가거나 병간호를 하면서 식사를 잘 챙겨야 하고 잠자는 동안도 살펴야 한다. 갑자기 비가 많이 오는 날에는 도서관에 가거나 운동을 나가는 계획이 틀어져 버린다. 주방 정리를 하기로 마음먹은 날은 하루 종일 부산하다. 약속이라도 있는 날에는 그날 하루가 완전히 소비되는 날이다.
누구나 매일이 다르고 새롭다. 그런 새로움을 받아들이기 위해 나는 베짱이의 느긋함을 배우고 싶다. 가끔은 베짱이처럼 게으름을 피우면서 할 일을 대충 하고 쉬고 싶다. 힘든 날에는 얼마든지 그렇게 쉬어갈 수도 있는 것인데 나는 그러지 못하고 마음이 조급해져서 힘들었다. 그렇게 쫓기든 살다 보니 해결되는 일은 없고 스트레스만 더 쌓였다. 내가 열심히 한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는 일들도 많고 나 혼자 애쓴다고 해도 혼자만 애가 타고 바뀌는 것이 없는 경우도 많았다.
성실하게 자기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은 큰 미덕이다. 하지만 개미처럼 한여름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 부지런히 일하는 것만이 유일한 방식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너무 잘하려고만 하지 말고 해야 할 일을 즐기면서 하는 법을 터득하는 중이다. 잘되지 않는 일을 할 때는 다음 날 다시 해보면 갑자기 잘 해결될 때가 있다. 글을 쓸 때도 의식을 흐름대로 거침없이 쓴 글이 더 마음에 든다.
왜 나는 개미처럼 열심히 일하는데도 할 일이 이렇게 쌓여 있고 남들은 베짱이처럼 누워서 노는데도 편안해 보이는지 불공평하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마음먹기에 따라 다르다. 남들이 보기엔 매일 바쁘고 분주한 내가 이상해 보일 수도 있다. 막상 내가 다 해결하지도 못하는 문제에 매몰되어 두통과 소화불량을 호소하는 일도 잦았다. 심지어 내 일도 아닌 일인데 부탁을 받고 혼자 해결하려고 하다가 감정이 복받쳐 올라오는 경우도 있었다. 이제 남의 일을 대신해 준다고 나서서 고생하지 않는다. 모두의 시간은 소중하며 그중에서 내 시간은 가장 값비싼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나만의 속도로 하루를 보낸다. 성실하게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하면서도 너무 많이 하지 않는 쪽으로 마음을 굳혔다. 그 시간과 에너지를 모아서 내가 좋아하는 일에 쓰면 된다. 베짱이의 능청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최소한의 집안 살림을 한다. 살림살이는 끝이 없고 아주 중요한 일이다. 그렇지만 살림을 할 때 에너지를 적게 쓰고 빠르게 할 수 있도록 한다. 책을 읽다가 잠이 오면 잠시 청소기를 민다. 글을 쓰다가 진행이 잘 안 될 때는 설거지를 하기도 하고 갑자기 서랍 한 칸에 들어있는 물건들을 몽땅 꺼내어 정리하기도 한다. 잘하려는 욕심은 버리고 후딱 해버린다. 그러고는 다시 내가 좋아하는 책상 자리로 돌아와 글을 읽고 쓴다. 부지런한 베짱이의 모양새로 성실하게 집생활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