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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주하 Oct 13. 2023

예쁜 외모가 나를 구원해 줄까

외모강박에 대하여

 나는 어린시절 예쁘다는 말을 별로 들어보지 못했다. 아, 저번에 브런치에 썼던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다 (brunch.co.kr)

이 글의 '그 사람'을 제외하곤 그리 예쁘다고 해준 사람이 없었다. 그리고 예전이나 지금이나 외모에 신경을 별로 쓰지 않는다. 365일 중 350일은 안경에 노메이크업으로 다니고 옷도 후줄근하게 입고 다닐 때가 많다.


이미 여러 번 썼지만, 나는 좋은 가정에서 자라지 못했다. 정확히 말하면 아동학대 당했다.

나르시시스트 엄마는 딸을 어떻게 피말리는가(1) (brunch.co.kr)

나르시시스트 엄마는 딸을 어떻게 피말리는가(2) (brunch.co.kr)

 이 글의 주제가 나의 아동학대 경험이 아니라 자세히 쓰진 않겠지만, 요약하자면 아빠는 매우 폭력적이고 자기 조절이 되지 않았으며 경제적으로 무능했다. 엄마는 어릴 적엔 방치하고 나를 남편과의 갈등과 고부갈등등으로 쌓인 스트레스를 푸는 '화받이'로 이용했으며 커서는 경제적, 정신적으로 나를 적극방해했다. 본인들의 형편에 대한 수치심과 열등감이 매우 심했던 나머지 큰 동생을 '마지막 희망'으로 여기고 나는 그 애의 기를 죽이는 존재로 여기며 '자존감 제물'로 썼다. 그 덕에 나는 만만한 존재로 여겨져 큰 동생에게 성희롱과 추행도 당했다.


그렇지만 나는 10대 후반부터 외모를 가꾸기 시작하면서 연애도 꾸준히 하고 남자들의 대시(요즘은 플러팅이라 한다ㅎㅎ)도 꽤 많이 받았다. '미인'이라고 할 법한 외모는 아니지만 어릴 적에 비하면 비약적으로 예뻐져서 외모칭찬도 종종 들었다. 그러다가 얼마 전 결혼할 뻔했다. 대학도 졸업하지 못해 직장도 없고 가진 거라곤 학자금대출만 있는데 당장 결혼하자고 할 만한 남자는 어떤 남자겠는가. 좋은 직업을 가졌고 나이차이가 많이 났다. 나를 매우 아껴주었으며 세심하고 다정했다.

사랑받는 여자는 티가 난다는 말을 증명하듯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엄마가 가장 먼저 눈치챘다. 그 남자와 아직 얼굴도 마주하지 않은 시점에 엄마는 일을 그만두려고 상사와 면담 약속을 잡았다. 브런치에 몇 번 썼지만 갚아야 할 차 할부금이 월 150, 월세가 50이다. 사실상 시집가서 본가에 매달 200만 원 이상 송금해 달라고 압박한 것이다. 나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딱 잘라 거절했고 엄마는 직장을 계속 다니기로 했다.


지금은 그 남자와 헤어졌지만 이 일을 겪은 이후로 엄마와 아빠는 나에게 함부로 하지 못한다.아니, 눈치 보며 두려워하기도한다. 그 남자와 다시 잘되거나 아님 다른 재력 있는 남자를 만나서 본인들을 부양해줄까 봐서도 있고 본인들이 그동안 해온 악행 (특히 엄마가 직장을 그만두고 그 남자를 착취하려 한 것)들을 친인척과 지인들에게 발설할까 봐서도 있을 것이다. 그때부터 현재까지 엄마아빠의 괴롭힘에서 어느 정도 벗어났다고 할 수 있다.


그 뒤로 나의 머릿속에선 이런 사고회로가 잡혔다.


능력 있는 남자가 나에게 예쁘다고 하며 좋아한다 → 그걸 알게 된 엄마아빠가 나를 괴롭히지 못한다. → 아, 외모가 예쁘면 괴롭힘 당하지 않는구나. 더 예뻐져야지.



실행에 옮긴 것은 거의 없지만 하고 싶은 시술이 늘어났다. 이마보톡스도 맞고 싶고 옆볼필러도 맞고 싶고 각종 레이저와 주사도 맞고 싶어 시술 정보와 후기들을 계속 찾아봤다. 거울을 보며 내 얼굴의 흠을 찾아냈다. 이것저것 보다보니 자연스럽게 예쁜 여배우들 사진도 많이 보게 되었다.


그러다가 이탈리아 레전드미녀 '모니카벨루치'사진을 보게 되었다. 이탈리아에서 이분 미모를 모욕하면 정말 큰일 난다나 뭐라나.

가수 화사가 오마주 하기도 했던 영화 말레나의 주인공이 모니카 벨루치이다.


그런데 최근 모습은 이렇다.

사실 처음에 보고 '아, 미인도 세월 앞에 어쩔 수 없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한 인터뷰기사를 봤다.


https://n.news.naver.com/article/145/0000015642


"나는 몸에 집착하지 않는다. 난 젊을 때도 볼륨이 있었고 그렇게 말랐던(Skinny) 적이 없었기에 여전히 자연스럽다. 그리고 평화로운 방법으로 늙고 싶다. 당신이 50세나 60세일 때 20대와 같은 몸을 고집할 수 없다. 인생에는 많은 순간들이 있다. 젊은 시절은 생물학적 ‘순간’의 아름다움이다. 인생은 계속된다. 몸이 노화된다는 것은 운이 좋다는 의미다. 우리가 오래 살고 있다는 증거니까. 육체가 사그라들수록 영혼은 커진다”



보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잠깐이지만 내가 그동안 외모에 신경 쓰고 시술정보를 찾고 늙으면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이 없어질 텐데..... 하고 불안해했던 시간들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흐르는 물줄기를 손으로 막으려 애쓰며 손 틈새로 새어나가는 물 때문에 괴로워하는 미련한 사람과 같았던 것이다.


이 인터뷰 기사를 보고 위의 최근사진을 다시 보니 노화를 '맞은' 모습이 아닌 '받아들인'모습으로 느껴졌다. 세계적인 레전드 미녀 모니카벨루치도 본인 외모에 집착하지 않는데 연예인 하라는 소리나 길거리에서 번호 달라고 하는 남자도 없었던 내가 뭐라고. 좀 민망함이 느껴졌다.


어차피 다 늙는다. 어쩔 수 없다. 그러니 애초에 누구에게도 외모로 어필하려 하지 말자. 시간이 갈수록 익어가는 것들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자. 나 또한 평화롭게 늙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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