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아무 의미 없는 것이라는 건, 없다.
시작은 대필(代筆)이었다.
나름 '이름'이 있는 사람들(회사 윗분들)의 연설문을 대신 쓰기 시작한 것이 처음이었다. 그 이전까지는 '글'을 쓴다는 것에 관심도 흥미도 없었고, 물론 소질도 없었다. '이름' 있는 사람들이 행사장에서 낭독할 연설문을 대신 쓰면서, 별다른 감흥은 없었다. 다만 월급을 받는 대가로, 시키는 대로 꾸역꾸역 썼던 것뿐이다. 이는 현재진행형이다. 지금도 내가 받는 몇 푼 되지 않는 월급의 절반 이상은 '대필(代筆)'의 '대가(代價)'다.
훌륭한 수준은 아니어도 보잘것없는 정도는 아니었었나 보다. 우연히 시작하게 된(원래 내가 할 업무도 아니었다) 연설문 대필은 이내 은근슬쩍 고정 업무로 못 박히게 되었다. 나름 '이름'이 있는 회사 윗분들은, 당연한 듯이 내게 대필을 지시했고, '이름'도 '힘'도 없는 나는 잠자코 시키는 대로 글을 썼다. 연설문으로 시작했던 대필은 차츰 그 범위를 넓혀 갔다. 신문 기고, 언론 인터뷰, 송년사와 신년사, 발간(창간) 축사 등등. 나중에는 업무와는 무관한 사적인 부탁(?) 또는 지시(?)까지도. (업무상 상하관계에서 '부탁'과 '지시'의 경계는 모호하다.) 자녀 면접시험 예상질문에 대한 모범답안, 대학원 과제물(소논문), 결혼식 주례사 등등. 그리고, 동물원 꼬마 원숭이의 재주넘기만도 못할 잔재주가 입소문이 나면서, 이웃 회사에서까지 자기네들의 '윗분'들 '이름'으로 낭독되거나 발표될 글들을 내게 부탁해 오고 있다. 모질지 못한 성격 탓에 지금도 거절하지 못하고 있다.
'이름'도 '힘'도 없는 말단 직원이 허무맹랑한 꿈을 꾸기 시작한 것은, 대필(代筆) 6년 차가 되던 해의 2월이었다. 회사 동료의 권유로 브런치스토리(당시에는 브런치) 작가 승인 신청을 넣었고, 며칠 후 작가 승인 메일을 받을 수 있었다. 기뻤었다.
이제, 내 '이름'으로 글을 한 번 써 보자.
......
그리고 3년 반이 흘렀다.
......
결과는 부끄러움. 그건 철저하게 나만의 몫이었다.
읽는 사람 거의 없는 볼품없는 글들을 써서 발행할 적마다, 능력의 부족함과 수준의 저열함을 뼈저리게 깨달아야 했다.(간혹 어쩌다 몇 명을 제외하고, 내 글을 읽는 이는 거의 없었다. 지금도 없다. 행여 이 글에 눈길을 주고 있는 당신에게 축복이 있기를!!!)
3년 반은 사람을 충분히 지치게 만들고도 남을 시간이다.
절필(絶筆)을 결심했다. 작품성도 대중성도 없는 글을 발행하는 것은 공해(公害) 일뿐이다. 자기만족적인 글쓰기란 어두컴컴한 골방 자위행위와 다를 게 뭔가. 그만하자. 이제 접자.
그런데.
절필(絶筆)이라. 붓을 부러뜨림? 애초에 내게 부러뜨릴 붓이라는 게 있었던가? 감히 작가라는 타이틀을 가질 수도 없는 아마추어인 주제에 대체 뭘 부러뜨린다는 건가? 그렇구나. 난 감히 절필(絶筆)을 할 자격도 없네?
데뷔조차 못한 배우가 좋은 건 딱 하나다. 영원히 은퇴할 일이 없다는 것.
이 네 컷 만화를 보고서, 붓을 꺾으려던 마음을 꺾게 되었다.
세상에 아무 의미 없는 것이라는 건,
없다.
죽는 날까지도, 결국엔, '이룸'을 못 만날 수도 있다.(대부분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루는 자는 절대 멈추지 않는다.
멈추는 자는 절대 이루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