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촌 사이 남편과 아내
부부는 어떤 관계보다 매우 친밀하다. 촌수를 따질 수 없을 정도가 가깝다. 둘의 관계를 ‘님’과 ‘남’의 의미로 해석해 보자.
보통 ‘님’은 그리운 사람, 사랑하는 사람 등을 시적으로 표현할 때 많이 사용한다. 사전적 뜻을 살펴보면, 님은 의존명사로 ‘그 사람’을 높여 이르는 말로 ‘00 씨’보다 높임의 뜻을 나타낸다. 반면, ‘남’은 남성을 의미하는 명사이기도 하지만 ‘자기 이외의 다른 사람’을 뜻한다. 더 자세하게 살펴보면, 자신과 아무런 관계가 없거나 관계를 끊은 사람을 말할 때 사용하는 명사이다. 그래서 “남의 일에 상관 마세요.” 또는 “남들은 모르지.”와 같이 관계성이 거의 없는 사람을 지칭할 때 인용한다.
부부는 서로에게 님의 존재와 같다. 남편과 아내를 아울러 부를 때 부부라는 말을 쓴다. 즉, 동시에 부를 때 사용한다.
‘부부 일심동체’란 말을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이 말은 부부가 한마음과 한뜻으로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이렇게 사는 부부가 있기는 할까? 현실에서 매 순간 이렇게 살기는 어렵다.
부부로 산다는 것은 연애시절과 다르다. 어쩌면 두 사람 모두 새로운 역사를 써야 할지도 모르겠다. 마치 새 생명을 부여받는 것만큼 서로의 태도와 행동에 생소할 수도 있다. 이전까지 알았던 사람이 아닌 것처럼 생각될 수도 있다. 그래서 간혹 결혼 후 속은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배우자와 둘 다 결혼 생활이 처음이니 잘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 그렇게 24시간 여생을 붙어사는 것이 결혼의 현실이다.
부부 생활은 남이 님으로 바뀌는 순간 이후의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마음속까지 알지 못했던 사람이 법적으로 제일 가까운 촌수로 명명되며 곁을 차지한다. 서로에게 보호자의 지위를 부여하는 아주 가까운 사람이 되는 일이다.
보통 성인 이후에 결혼하니 최소 20년 이상 다른 세계에서 살았다. 서로 다른 부모와 환경에서 살아온 사람과 어느 날부터 한집에서 사는 것이다. 처음부터 한마음과 한뜻을 이루기 쉽지 않아야 정상이 아닐까? 때때로 외계인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결혼하면 아주 사소한 일에서부터 생길 갈등을 염두에 두는 편이 낫다. 그러므로 일심동체란 서로 다른 생각을 조금씩 맞추어가는 조율의 힘을 강조한 것으로 생각하자.
초등학교 때, 둥근 공을 정물화로 그린 적이 있었다. 마음은 한 번에 쓱쓱 동그랗게 그릴 것 같은데 좀처럼 그릴 수가 없었다. 지우개로 거듭 지우면서 새로 선을 그었다. 시작은 어느 한 지점에서 짧은 선 긋기부터다. 이후 조금씩 연필심을 살살 터치하듯 둥근 형태로 잡아간다. 원형이 될 때까지 짧은 선을 이어가며 수정을 반복한다. 나중에 원과 무관한 선들을 모두 지운다. 밖으로 삐져 나간 부분을 대부분 지우개로 깨끗하게 정리하면 구형에 가까워진다. 완전히 둥글다고 할 수는 없지만 멀리서 보면 둥근 공의 모양이다. 시작할 때 볼 수 없는 구형을 보면서 나름 뿌듯했던 것 같다.
둥근 모양 중 하나는 축구공이다. 엄밀히 말하면 축구공은 완전한 구형은 아니라고 한다. 축구공은 경기의 특성상 발로 차도 찢어지지 말아야 하고, 머리로도 차야 해서 너무 딱딱하면 안 된다. 갑자기 비가 와도 경기를 할 수 있도록 물이 공 안으로 들어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 만약, 물이 스며든다면 무거워서 선수들이 차기 어려워지기 때문에 더 신경 써야 한다. 다시 말해, 축구공은 내부압력과 방수기능을 잘 갖추어야 한다. 이런 점을 고려해 보통 합성 가죽으로 만든다. 축구공의 제작은 여러 차례 변형과 변화를 통해 만들어졌다. 수학자가 발견한 구형에 최대한 가까운 형태를 유지하기 위해 다면체가 되었다. 즉, 정오각형 12개와 정육각형 20개의 꼭짓점을 이어서 만든 정십이면체다. 가장 구에 가까운 모양으로 이어 붙인 것이다.
부부로 산다는 것은 어쩌면 축구공을 만드는 과정처럼 보인다. 부부 생활을 하려면 두 사람의 내부 갈등을 이겨내고 외부 환경의 어려움으로부터 함께 견딜 수 있는 힘을 키워야 유지된다. 외유내강의 모습을 갖추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결혼 이후 남편과 아내의 역할을 저절로 잘하는 것은 아니다. 이 역시 처음 가는 길이다. 그 길은 아주 길다. 그 때문에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면 함께 가기 어렵다. 때때로 가는 길이 힘들어 중간에 이혼이란 이름으로 멈추기도 한다. 그러나 그 결정 역시 쉽지 않다. 가능한 한 결혼했다면 긴 시간이라도 부부가 함께 가는 것이 좋다. 그러기 위해선 양쪽의 노력이 불가피하다. 최근엔 기대 수명의 연장으로 길면 50년 이상 더 길어지면 70년까지도 부부가 동행하며 살 수 있다. 결코 쉽지 않은 여정일 것이다.
부부가 잘살기 위해선 무엇보다 두 사람 모두 원가족으로부터 독립해야 한다. 독립은 새로운 연합을 만들어내기 위한 출발이다. 단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결혼하면 가장 가까운 사이가 부모나 형제자매에서 부부 두 사람으로 옮겨진다. 절친이 바뀌는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부부 사이에 다른 관계가 끼어들지 않도록 말이다. 이를 위해선 육체적, 경제적, 심리적, 정신적으로 홀로서기해야 한다.
첫 번째, 원만한 결혼 생활을 위해 육체적 독립은 필수적이다. 부모와 생활의 분리를 하는 것이다. 여러 가지 이유와 필요 때문에 부모와 합가 하거나 다른 형제와 같이 살 수는 있다. 1960~80년대 배경 드라마를 보면 양가 부모나 시동생, 시누이, 처제, 처남 등 배우자의 가족과 함께 결혼 생활을 하는 예가 흔했다. 확대가족과 혈연 중심의 가족 관계에서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시대상이 반영된 것으로 다자녀였던 그 시절엔 매번 출가하는 자녀를 독립시킬 수 없어서였을 것이다. 즉, 분가시킬 만큼 부모나 결혼 당사자가 돈이 충분하지 않아서 함께 사는 경우였다. 하지만 같은 집 안에서도 신혼부부 방을 별도로 준비하는 것은 필수적이었다.
부부는 두 사람만의 공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친밀함을 유지하고 연합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두 번째, 경제적 독립이다. 부모에게 의존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종속 관계가 될 수 있다. 요즘처럼 신혼집 마련이 어려운 경우, 시작할 때 부모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매번 생활비와 같은 부분까지 부모에게 의존하지 말라는 의미다.
얼마 전, 지인의 사촌 여동생 L은 이혼했다. L은 시부모가 부동산 수입으로 경제적 여유가 있어 남편이 특별한 직업이 없었지만 결혼했다. 시댁에서 마련해 준 가게를 남편과 함께 운영하며 결혼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남편은 가게 일을 등한시했고, 자녀가 태어난 후에도 육아를 따로 돕지도 않았다.
결혼 전까지 풍요로운 환경에서 부모의 도움 속에서만 살았던 남편은 스스로 경제활동을 적극적으로 해 본 적이 없었다. 자녀가 태어난 이후에도 시부모가 생활비를 계속 지원해 주었다. L은 시부모에게 매달 생활비를 받는 것이 점점 눈치가 보였다. 가게 운영에 대한 일도 시부모가 간섭하는 것처럼 느껴져 불편해졌다. 남편에게 독립적으로 가게 일을 하거나 싫으면 구직을 해 보라고 여러 번 부탁했다. 하지만 어려울 때마다 남편은 시댁의 도움을 받는 편을 선택했다. 도무지 구직 활동을 하지 않는 남편 때문에 L은 심리적 부담이 가중되었다. 경제적 문제가 심리적 문제로까지 이어져 자주 다투었다. 차츰 시댁에서도 경제적 지원을 줄여가자 부부 갈등은 더 심해졌다. 결국 부부 갈등을 줄이지 못하고 헤어졌다.
L은 경제적 어려움이 지속될 것을 우려했지만, 결정적인 이혼 사유는 근로에 대한 남편의 태도가 달라지지 않을 것이란 불신 때문이었다. 주변에선 시부모 사후 상속을 받아 생활하면 되지 않냐고 했지만 L은 근본적인 문제에 부딪쳐 이혼을 선택한 것이다.
개인이나 회사, 국가도 경제적으로 우위에 있을 때 독립적인 지위를 유지할 수 있다. 가장 작은 단위의 사회인 가정을 함께 꾸려가는 부부 역시 경제적 문제를 외면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결혼생활에서 부부의 경제력은 중요할 수밖에 없다.
세 번째, 심리적, 정신적 독립이다. 이 역시 중요하지만 소홀하게 여기기도 한다. 전통적인 사회에선 결혼하면 나이와 상관없이 성인으로 예우하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나라 역시 민법 제807조에 따르면, 만 18세 이상이면 부모의 동의 없이 결혼할 수 있다. 미성년자라도 부모의 동의가 있으면 가능하다.
성인이란 자신의 행동에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 미성년자와 성인을 구분하는 가장 큰 차이는 법적 책임일 것이다. 결혼 이후 성인 취급을 받고자 하면 심리적, 정신적으로 독립하는 것은 당연하다. 만약, 그렇지 못하면 스스로 의사결정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남에게 매번 의존하는 것은 성인으로 적절하지 않다. 물론 부모처럼 의논 상대를 두지 말라는 뜻은 아니다. 연장자로서 부모나 형제에게 얼마든지 조언은 구할 수 있다. 결혼 생활에서 생길 수 있는 어려움을 안전하고 친밀한 부모나 형제와 같은 가족에게 상의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배우자를 배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가장 먼저 부부끼리 상의하고 외부의 도움을 받는 자세가 필요하다.
심리적 혹은 정신적으로 부부 이외의 관계를 더 중요시하면 부부 갈등을 유발할 수 있다. 이런 결과를 초래하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한다. 두 사람 사이에 균열이 생기면 다른 관계가 끼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자식도 예외일 수 없다. 부부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하지만 부부 사이 보다 자식과 더 친밀해지는 것 또한 새로운 문제를 초래한다. 부부 사이가 견고한 이후에 부모자녀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좋은 부모자녀관계 역시 원만한 부부관계에서 출발한다.
부모에게 강한 애착을 보이는 사람을 ‘마마보이(mama's boy)’라고 부른다. 여기서 보이(boy)라고 꼭 남성 즉, 남편만을 일컫는 것은 아니다. 아내 역시 친정 부모에게 어린아이처럼 의존한다면 마마보이와 비슷하다. 이 경우, 자식도 문제지만 결혼한 자식을 오롯이 떠나보내지 못하는 부모에게도 문제가 있다. 마냥 어린아이처럼 성인 자녀를 대접하는 것은 독립을 저해한다. 특히, 법적인 자식인 며느리와 사위조차 자기 자식처럼 마음대로 힘을 행사하고 통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과도한 간섭은 부부 사이를 갈라놓는 문제를 초래한다. 이전부터 고부갈등을 대표적으로 꼽았고, 최근엔 장모와 사위 갈등도 그에 못지않다.
부부는 함께 생활하면서 이전까지 알지 못했던 서로의 사소한 습관이나 태도 등을 발견할 수 있다. 자신의 생활 방식과 전혀 다른 경우, 당황스럽고 불편하다. 우스갯소리로 치약을 짜서 쓰는 일, 양말을 벗어 놓는 형태의 차이로 갈등이 시작된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이런 사소한 일로 다툰다는 것은 얼마나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살아왔는지 짐작하게 한다.
나 역시 결혼해서 바로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 남편의 습관 중 하나는 식후에 길게 누워 쉬는 것이다. 배가 부르니까 자연스럽게 눕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소화를 시키려면 먹자마자 눕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해서 남편의 행동이 내 눈에는 이상했다. 살다 보니 남편 행동의 이유를 알게 되었지만, 여전히 나와 다른 스타일이 낯설다. 지금 달라진 것은 왜 밥을 먹고 바로 눕냐고 말하지 않는 것뿐이다.
원만한 부부관계를 위해선 결혼 후 한쪽 눈을 감고 살란 말이 있다. 반면 결혼 전엔 배우자 선택을 위해 두 눈을 크게 뜨고 살피라고 한다. 하지만 콩깍지로 결혼 전엔 거의 눈을 감다시피 하고 결혼 후엔 눈을 부릅뜬다. 결혼 후 너그럽게 보기 위해 눈을 살짝 감아도 좋지만 크게 뜬 눈으로 잘잘못을 따지며 싸운다.
어른들이 한쪽 눈을 감고 살라고 한 것은 웬만한 것은 서로 이해하라는 뜻이다. 하지만 절대 쉽지 않다. 사사건건 자신과 다른 방식으로 행동하는 배우자의 모습은 눈에 거슬린다. 새롭게 발견하는 행동이 많아질수록 오히려 너그러움을 발휘해야 한다.
사랑이란 감정만으로 태도나 행동까지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부부로 산다는 것은 상당한 인내를 요구한다. 인생에 있어서 둘도 없는 친구를 찾는 일이 결혼이다. 이런 친구를 만드는 일이 어찌 쉽겠는가?
부부가 좋은 관계를 지속하거나 원수처럼 헤어지는 것은 서로 하기 나름이다. 결혼은 처음부터 헤어지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므로 두 사람의 노력은 필수적이다. 이혼은 마지막 보루여야 한다. 그러나 예외도 있다. 가정폭력이나 외도, 지속적인 경제적 무능력은 결혼생활을 유지하기 어렵게 한다. 이혼 사유가 될 수 있다. 단회기적인 것이 아니라 이런 일이 반복되고 개선의 여지도 없다면 이혼은 불가피하다.
부부는 다른 관계와 달리 매우 긴 시간 동안 함께 살아야 하므로 한쪽의 고통을 담보로 유지할 수 없다. 두 사람 모두 여생에 영향을 주고 남들에게 드러낼 수 없는 내밀한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갈등이 대부분이라 당사자가 아니면 해결도 어렵다. 따라서 부부로 살아가는 것은 커플의 숫자만큼 다양한 방식이 존재한다.
가장 친밀한 부부 사이를 유지하기 위해선 사랑하는 방법뿐 아니라 갈등을 해결하는 기술도 알아야 한다. 자동차를 운전하기 위해서도 운전면허를 딴다. 사고 예방을 위해선 충분한 주행 연습도 필수다. 하물며 남은 인생의 반려자와 사는 일인데 어떠한 기술도 익히지 않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한 가지 기술을 능숙하게 사용하려면 시간 투자가 반드시 필요하다. 단시간에 이루어지는 예는 드물다. 초보운전자가 자동차 유리창에 커다랗게 ‘왕초보’라고 붙이고 다니는 것을 봤을 것이다. 아마도 운전 기술이 서툴러 사고 날 위험성이 있으니 다른 운전자들을 향해 도와달라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기술이 부족한 사람을 유경험자들이 돕는 형국이다.
성경에서도 부부를 향해 서로 사랑하라고 했다. 부부는 짝사랑의 존재가 아니어야 한다. 사랑과 싸움의 기술을 모른다면 오랫동안 잘살기 어렵다. 운전을 잘하기 위해선 연습이 필요한 것처럼 결혼 생활을 위해선 선경험자의 조언을 듣는 것도 도움이 된다. 결혼은 운자처럼 연습할 수 없다. 바로 실전이다. 그런데도 너무 쉽게 성인 중 일부는 준비 없이 결혼하고 기술조차 익히지 않는 것 같다. 사랑의 기술을 익히더라도 어려운 게 결혼 생활이다.
최근엔 부부학교라는 이름으로 짧은 회기 형태라도 수업하는 곳이 있다. 성당이나 교회에서 결혼식을 하고자 할 때 일부 기관은 이런 과정을 예비부부에게 의무화했다. 그래서 참여하는 커플이 있다. 하지만 부부가 되는 커플 숫자와 비교해 참여자는 여전히 부족해 보인다. 운전면허증이 없이 운전하면 무면허로 처벌받는데 결혼은 기술이 없어도 할 수 있다니 안타깝다. 부부학교에 대한 현실적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이혼율이 증가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단면을 예방하는 효과에도 부부 대상 교육은 도움이 될 것이다.
아동과 청소년 대상 상담자로 오래 일하면서 자녀 문제의 근본적 원인을 생각해 본 적이 많다. 상당 부분은 부부 갈등에서 초래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녀의 기질이나 심리 특성과 같은 개인의 문제도 물론 있지만 부부 갈등이 부모 역할의 걸림돌로 나타나 자녀 문제로까지 확대된 예가 적지 않았다. 부부관계의 중요성을 소홀히 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부분 부모 이전에 부부로 살아간다. 그러므로 결혼을 생각한다면 먼저 좋은 부부관계를 위한 노력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원만한 가정을 만드는 초석은 부부관계에 달려 있다.
좋은 부부관계를 유지하고 난 뒤 자녀 출생에 따른 부모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음번에는 부부 사이만큼이나 중요한 부모자녀관계를 위한 부모 됨에 대해 알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