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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이름으로

부모도 자격이 필요하다

by 오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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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면 자녀 출산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최근 딩크족(DINK族)이 늘어나는 추세라는 보고가 있다. 딩크족은 'Double Income No Kids'의 앞 글자를 따서 만든 말이다. 이 말은 '수입은 두 배, 아이는 없다’라는 의미로 정상적인 부부 생활을 영위하면서 의도적으로 자녀를 두지 않는 맞벌이 부부를 이른다.


자녀를 출산하는 것은 진화생물학적으로 보면, 자신의 유전자를 다음 세대로 전달하는 역할이다. 우리나라 전통적인 가치관에서 자녀 출산은 아들을 중심으로 한 가계 계승을 중요하게 여겼다. 아들이 많을수록 이익을 부여받고 아내의 지위 역시 격상하는 경향마저 있었다. 그래서 기혼 여성이 자녀를 출산하지 못하면 죄악으로 취급했으며, 아들이 없는 경우 양자를 들이기도 했다. 이런 문화는 일반 가정뿐 아니라 왕위를 계승하는 왕가에서 더 뚜렷했다. 왕들은 다음 보위를 위해 아들을 낳은 여성에겐 신분과 상관없이 왕비의 지위를 부여했다. 현대사회의 관점으로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최근엔 우리 사회도 결혼과 출산에 대한 변화가 있다. 자발적 비혼을 선택하기도 하며, 결혼하지 않고도 부모가 되는 선택을 하는 예가 있다. 혼자서 자녀를 낳아 키우는 것은 어렵지만 배우자와 함께 결혼으로만 부모가 되는 것에서 벗어나 논란의 여지도 있어 극소수의 사람만 선택하는 실정이다. 어떤 방법으로 부모가 되었든지 부모 역할을 하는 것은 다르지 않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부모는 성인의 발달적 욕구와도 관련이 있다. 자신을 닮은 자녀를 출산하여 세대를 전승하는 의미도 있지만, 정서적인 측면도 중요하다. 즉, 부모로서 애정을 주고 싶은 욕구를 충족하기에 자녀가 가장 좋은 대상인 것이다.


자녀 양육을 통해 부모는 강한 책임감을 느낀다. 가족이란 울타리를 통해 사랑과 소속감의 욕구를 충족할 수 있다.


사회심리학자 에릭슨(Eric Erikson)에 따르면 성인기는 친밀감을 통해 이성인 배우자와 새로운 가족을 형성하고 자녀 출산으로 생산성의 과업을 완성한다고 보았다. 인간은 전 생애 발달 과정을 통해 시기마다 주어진 발달 과업을 성취하면서 성장한다. 그래서 성인기가 되면 연애와 결혼, 자녀 출산을 통한 가족 구성원이 증가하는 일을 보편적으로 받아들인다. 결혼 후 출산이 어려운 경우엔 입양제도를 통해서라도 부모가 되고자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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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역할을 하고자 하는 성인들의 심리는 무엇일까?

욕구 이론을 주장한 매슬로(Abraham Maslow)에 따르면 대부분 사람은 위계에 따라 자신의 욕구를 충족한다. 즉, 가장 강력한 "생리적 욕구"를 시작으로 "안전 욕구", "애정과 소속감의 욕구", "존중 욕구", "자아실현 욕구"로 이어진다. 생존을 위해 인간은 가장 기본적으로 생리적 욕구를 충족한다. 살기 위해 가장 먼저 배고픔을 위해 당연히 먹고 싶다. 배가 부르면 편안하게 쉬고 잠자고 싶은 욕구가 생기고 위협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안전한 울타리 속에 있고 싶은 것 역시 마찬가지다. 이처럼 욕구는 생존에 필요한 것들을 동기화한다. 소속감의 욕구는 성인기 가정생활을 통해 채워지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가정이란 울타리 속에서 부모와 자식으로 구성된 사회를 만들고 소속감을 통해 가족 간 결속력을 높인다.


가족은 친구, 동료, 상사와 같은 타인과 다른 정서적 인간관계를 형성한다. 좋은 인간관계 형성을 위해서 가정은 바람직한 훈련장과 같다. 특히, 자녀를 통해 성숙하는 부모와 부모를 통해 사회를 배우는 자녀가 함께 성장한다. 자녀에게 조건 없고 헌신적인 사랑을 베풀 기회를 얻는 부모는 희생을 통해 더 많은 것을 얻는 기쁨과 행복을 경험한다.


자녀 역시 가정 안에서 부모가 제공하는 안전한 울타리에서 무한 사랑을 받으며 자아정체성을 확립해 간다. 한 생명이 인격체로 성장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부모 역할은 세대와 시기를 불문하고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부모가 되는 시기는 보통 성인기이지만 개인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다. 이전까지 부모 됨에 관한 생각을 충분히 하지 않았어도 자녀가 태어나면 정서적 기쁨은 크다. 최근 인기가 있었던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속았수다'에 관식과 애순이 누워있는 첫 딸 금명이를 바라보며 서로에게 좋냐고 묻는 장면은 이를 말해준다. 19살과 18살에 부부가 된 이들이 모든 게 처음인 가정생활에서 자녀를 통해 점점 성숙하고 성장해 가는 내용이 인상적이었다. 물론 자녀가 여럿이면 양육에 대한 심리적 부담은 커질 수 있다. 그러나 무쇠로 표현된 관식의 책임감처럼 부모가 되면 자식을 위해 그 역할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게 된다.


임신과 출산, 육아는 우리 사회에서 이전까진 어머니의 몫으로 취급하는 예가 더 많다. 그래서 어머니는 임신기부터 자녀의 생존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모성이 강조된다. 모성은 애착 이론으로 살펴볼 수 있다.


대부분의 애착 연구자들은 어머니와 안정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아동이 성인 이후에도 타인과의 관계를 긍정적으로 맺는다고 강조했다. 그만큼 어머니는 자녀의 신체적, 정서적, 사회성 등 전반적 발달의 밑거름을 제공한다. 아버지 역시 양육자로서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그러나 전통적인 육아에서 아버지 역할을 크게 강조하지 않은 측면이 있다. 최근 맞벌이 부부가 증가하고 자녀의 출생 숫자까지 줄면서 부부가 나란히 육아에 참여하는 상황으로 바뀌고 있다. 이런 이유 중 하나는 여성의 사회진출이 증가하자 육아만 전담하는 어머니가 감소했으며, 부부의 성역할도 변화했기 때문이다.


어머니 혼자 양육하는 것보다 아버지의 동참이 더 긍정적으로 인식될 뿐 아니라 자녀의 성역할 발달에 도움을 준다는 연구들이 많이 발표되고 있다. 이는 사회적 활동을 많이 하는 아버지를 보고 자란 자녀가 어머니 못지않게 사회성 발달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와의 긍정적인 관계를 강조하는 이유가 있다. 특히, 남아는 아버지를 통해 남성성을 잘 이해하고 성역할의 유연함을 가진다.


세대가 달라지면서 이전까진 양육에 덜 참여했던 아버지가 자녀와 놀이와 활동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예가 증가하고 있다. 아동 발달 측면에서 보면, 자녀가 10세 이전까지 아버지가 신체적 놀이를 포함한 활동을 많이 해 준 아동이 사회적 상호작용에 필요한 기술을 더 잘 습득한다는 연구도 있다. 이렇게 부모 역할이 더 중요하게 강조되면서 결혼 이전부터 자녀 계획에 대한 것을 상의하는 부부들도 늘어나고 있다. 매우 바람직하다.




부모의 이름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부부 중심의 생활에서 자녀가 태어나면 누구의 아빠와 엄마로 불리며 부모의 이름으로 살아가게 된다. 자신을 닮은 자녀를 보는 것은 매우 신기하고 정서적으로 만족감이 크다. 성장하면서 부모의 성격과 행동을 자연스럽게 배우는 것 역시 부모에게 놀라운 경험이다. 부모는 자녀에게 긍정적 혹은 부정적 영향 모두를 준다.

부모는 자녀에게 가장 안전한 울타리를 제공해야 한다. 첫 자녀의 육아를 시작할 때 서툰 것은 당연하다. 자녀의 나이만큼 부모 역할을 하는 것이기에 함께 성장한다. 즉, 자녀가 자라는 속도만큼 부모도 성장해야 하기에 부모 역시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교육을 받을 필요가 있다.


한 생명이 태어나 자립할 때까지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대상이 부모라는 것은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게 한다. 같은 부모였을 지라도 성장 과정에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따라 자녀의 성장 모습은 천차만별이다. 그래서 부모의 이름으로 산다는 것은 사회적으로도 매우 중요할 수밖에 없다.




부적절한 부모 역할로 기사화된 부모들을 종종 본다. 특히, 아동학대처럼 심각한 문제를 초래하는 예는 보는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얼마 전, 대전의 모 초등학교에서 정교사가 하늘 양을 살해한 사건으로 우리 사회는 충격을 받았다. 그 교사 역시 누군가의 부모이다. 내 자식이나 남의 자식이나 아동은 위험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하는 존재이다. 이번 사건이 더 안타까운 이유는 안전해야 할 학교 안에서 발생했으며, 아동의 인권을 존중해야 할 교육자가 피의자였기 때문이다. 정신병 전력이 있더라도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모든 아동은 누군가의 자녀이다. 이들은 성장하면서 부모와 같은 성인의 보호 없이는 혼자 살아갈 수가 없다. 지난 목요일 아동을 지원하는 회사의 후원자 모임에 참석했다. 그날은 보호 종료 청년들의 자립에 관한 이야기를 주로 나누었다. 자립을 이룬 한 청년들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사업가로 성장한 K는 누구나 언젠가 고아가 될 수 있다며 자신은 아주 어릴 때 그 경험을 했을 뿐이라고 했다. 그는 아주 어릴 때 아동 시설에 맡겨져 이름조차 시설장이 지워주었다. 어떤 삶을 살았을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사회복지사가 된 J는 시설에서도 맞고 자랐고, 학교에서도 고아라는 놀림을 받은 아픈 경험을 나누어 주었다. 9월에 결혼을 앞둔 J에 사회자가 앞으로의 꿈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는 “여기 계신 분들처럼 사는 거요.”라는 대답을 했다. 부모와 자녀들이 함께 사는 평범한 삶을 말하는 것이었다. 두 사람의 진솔한 이야기는 부모 자녀 관계의 중요성을 더 깨닫게 했다.




생물학적 부모가 되는 일은 더 쉽다. 하지만 인격적으로 성숙한 부모 역할을 하는 것은 누군가에겐 고도의 기술이 필요할 만큼 어렵다. 즉, 부모 역할은 저절로 익혀지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부모 됨의 의미를 성인기 이전부터 이해하고 부모가 되었을 때 아버지와 어머니로서 역할을 잘 수행해야 할 것이다. 부부가 자녀와 함께 성장한다는 자세로 어린 영유아기부터 존중할 필요가 있다.


최근 우리 사회는 4세와 7세 고시란 말이 있을 정도로 어린 아동들의 놀 자유를 박탈하고 지나친 사교육시장에 몰아넣고 있는 일부 부모의 잘못된 행태가 있다. 외신들조차 이런 상황을 지적한다는 기사를 봤다. 결국 유명 학원에 들어가기 위해 영어 인터뷰까지 준비하는 이런 행태를 고발하기 위해 국민 1,000명으로 구성된 국민 고발단이 국가인권위원회에 아동학대로 규정해 달라고 진정했다. 이들은 교육 당국의 강력한 제재와 더불어 실태조사부터 촉구했다. 고발단의 입장에 공감한다.


오랜 시간 아동을 대상으로 상담과 부모교육을 해 온 나는 과도한 조기 교육 시장의 행태에는 내 아이만 뒤처지는 것을 불안해하는 부모의 마음을 이용한 일부 몰지각한 성인들의 욕심이 내포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무한경쟁과 같은 치열한 한국의 입시경쟁으로 과도한 사교육비를 어린 아동 시기부터 시작하는 것은 명백하게 아동 발달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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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은 성인의 축소판이 아니며, 자녀는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다. 독립된 하나의 인격체로 발달에 따라 개인차를 인정하며 아동의 권리 역시 성인과 마찬가지로 존중해야 한다.


얼마 전, 개그맨 이수지가 대치동 제이미 엄마 캐릭터로 사교육 열풍을 풍자한 영상이 최근 폭발적인 인기를 끈 이유 역시 되새겨 봐야 할 일이다. 이 또한 힘이 약한 자녀에게 강요된 교육이 된다면 위력에 의한 폭력과 마찬가지다. 따라서 쉽지 않더라도 올바른 부모 역할을 수행하기 위한 노력을 위해 훈련을 받는 자세가 필요하다.



좋은 부모는 자녀를 일등이 되도록 채찍질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신뢰를 주고 안정감을 가질 수 있는 튼튼한 심리적 지원자여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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