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다잉을 생각하는 중년

당신은 몇 살까지 살 것이라고 예상하십니까

by 오로라

김장을 끝내고 송년 모임이 많아지는 연말이다. 한 해를 정리하면서 긴 겨울을 준비하는 시간이다. 어릴 적 이맘때면 친정엄마는 많은 양의 김장김치와 연탄을 준비했다. 그때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월동 준비의 하나로 김장은 한다.


친정엄마가 돌아가신 이후 김장은 친정언니 담당이 되었다. 올해도 어김없이 언니는 김장을 끝내고 가지러 오라고 연락을 주었다. 오빠까지 함께 모여 식사하기로 한 날 시간에 맞춰 도착했다. 오빠는 보이지 않았다.


"전화해봐. 언제 오나?"


식탁을 차리려는 언니의 말에 오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빠, 어디쯤이야?"


나보다 가까운 위치에 사는 터라 오는 중일거라 여겼다.


"좀 늦을 것 같아. 먼저 먹어."


이유를 물었더니 장례식장이란다. 곧 출발은 하겠지만 식사 시간을 맞추긴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알겠어. 조심해서 와."


그렇게 언니와 먼저 식사를 마쳤다. 커피까지 느긋하게 마신 후에도 오빠는 도착하지 못했다. 적당히 붉게 양념한 배추와 알타리로 담근 김치, 국물이 누렇게 익어가는 시큼하지만 기분 좋은 냄새를 풍기는 동치미까지 챙겨 현관 앞에 두었다. 설거지와 뒷정리를 거의 할 때쯤 오빠가 도착했다.


"누구 장례식에 다녀온 거야?"


어두운 표정으로 오빠가 대답했다.


"고등학교 동창"


놀라 또 물었다.


"왜? 사고야?"


"아니, 심근경색."


"많이 놀랐겠네"


"그렇지."


전날 부고 소식을 들은 오빠는 빈소로 달려갔다. 지방 여러 곳에 흩어져 사는 친구들이 장례식장으로 하나 둘씩 모여야 하는 탓에 더 기다린 모양이었다. 그렇게라도 친한 친구들이 모이게 되어 얼굴이라도 보고 오려고 생각에 기다리느라 늦었다고 이유를 자세히 말했다.




고등학생 외동딸을 둔 오빠의 친구는 어젯밤 세상을 떠났다. 예고없이 찾아 온 친구의 죽음 앞에 동창들이 모였을 것이다. 오빠는 망연자실 넋 나간 미망인에 대한 이야기까지 전했다.


오빠를 위해 새로 식탁을 차리는 언니의 표정도 어두웠다. 그 이유를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6년 전, 형부의 사인도 오빠의 동창과 같았다. 그날 언니도 오빠가 본 미망인처럼 망연자실의 상태로 운구차로 형부를 모시고 장례식장으로 왔다.


형부는 단풍이 곱게 물든 10월 중순 가족 곁을 떠났다. 예순을 넘긴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중년에 갑자기 들려오는 가까운 사람의 사망소식은 당황스럽고 안타깝다.


"너도 조심해."


오빠 앞으로 밥과 국을 내밀며 언니가 한 말이다.


"그래, 오빠. 이제 우리도 있을 수 있는 나이야. 안 그러면 좋겠지만."


막내 동생까지 모두 쉰 살을 넘기고 모두 중년기에 접어 든 우리 형제들은 최근 여러 번의 장례를 치렀다. 형부와 친정부모님이 모두 소천하셔서인지 언니는 누군가의 사망 소식을 들으면 더 어두운 얼굴이 된다.




우리나라도 초고령화가 되었다. 장수하는 사람도 늘고 있지만 오빠의 친구처럼 더 살아도 좋을 나이에 사망하는 예도 있다.


중년 이후 노년기까지 사망 원인은 다양하지만 심장 질환도 적지 않다. 성인병 못지 않게 중요해진 심장질환은 평소 관리가 필요하다고 의사들은 말한다. 특히, 갑작스러운 사망에 이르는 심근경색이나 심부전, 고혈압은 위험군으로 더 신경써야 한다.


백내장이나 난청, 근골격계 질환은 치매, 파킨슨병, 뇌졸증과 더불어 대표적인 노년기 질병으로 분류된다. 나이들수록 노화로 인해 생기는 병은 불가피하다. 특히, 치매, 골관절염, 심혈관 질환은 우울증상을 동반해 삶의 질을 급격하게 낮춘다.


대부분의 질병은 몸에게 신호를 보내 알아챌 수 있지만 조용히 찾아오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건강을 자신하면 안 된다.

질병 예방은 장수 시대 필수적이다. 그러나 평상시 건강 관리를 하는 사람보다 바쁜 일상으로 하지 못하는 사람이 더 많아 보인다. 소홀하면 질병에 노출되기 쉽다는 것을 알면서도. 특히, 오빠의 동창처럼 중년기 가장들의 돌연사는 가족 모두에게 심리적 상처와 안타까움을 더한다.


이들은 대부분 가족을 위해 자신의 건강은 뒷전으로 미루고 바쁘게 살다 떠나기도 한다. 그래서 마음이 더 아프다. 형부의 죽음도 비슷했다.

가족과 함께 하는 미래의 안정적인 생활을 담보로 자기 몸은 돌볼 겨를도 없이 희생하다 황망하게 떠났다고 느껴져 더 아프다.




미성년자 딸을 두고 떠난 오빠의 동창생 이야기를 들으니 형부 생각이 더 났다. 그 해는 늦둥이로 태어난 막내 조카가 갓 대학생이 된 시기였다. 막내 아들만 졸업시키면 당신이 좋아하던 설악산이 보이는 고향으로 돌아가 집을 짓기로 한 형부였다. 아버지가 물려주신 땅에 집을 짓기 위해 사망하기 몇 해 전부터 집터 주변을 정리했다. 이미 터 파기 공사와 조경석 정리까지 마친 상태였다.


집성촌일 정도로 형부의 친인척이 근처에 거주하는 동네였고, 집터 바로 옆엔 남동생의 소형 주택이 이미 별장처럼 자리잡고 있었다. 나도 언니를 따라 가끔씩 가본 그곳에서 설악산과 점봉산, 방태산은 보다 쉽게 갈 수 있었다. 마음 먹으면 속초에 가서 회 한 접시도 먹고 당일 되돌아 올 수 있는 거리였다. 집에서 도보 5분이면 내린천과 더불어 아름다운 강원도만의 겹쳐진 산봉우리가 한 눈에 들어온다.


서울~양양간 고속도로 개통 이후 유명했던 내린천 휴게소가 멀지 않다. 공기가 좋은 곳으로 도시민들에게 알려진 곳이기도 하다. 형부가 다져 놓은 집터는 그대로 있다. 가족 곁을 떠났을 뿐 형부가 살고자 했던 마을의 풍경은 매년 되풀이되어 찾아온다.




형부 사망 이후 3년 동안 언니는 정신없이 일했다. 쉬는 날이 없을 정도로. 나중에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마음이 무너질 것 같았다는 언니의 말이 가슴 아팠다. 하나뿐인 어린 처제라며 유독 더 잘 챙겨주었던 내가 이 정도인데 배우자인 언니의 심정은 어땠을까? 조카 셋은 얼마 전 형부 기일에 맞춰 아버지의 빈자리를 느끼며 그곳에 다녀왔다. 부모의 빈자리는 자식의 나이와 무관하게 공허하다.



나이듦에 따라 웰니스뿐 아니라 웰다잉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누군가는 기대수명이 길어진 탓에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걱정한다. 하지만 또다른 이는 기대수명에 턱없이 미치지 못한 시간에 유명을 달리해 무상함을 느끼게 한다. 그래서 웰다잉이 더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닐까?




웰다잉(well dying)은 인간으로서 존엄성과 가치, 품위를 지키며 삶을 마무리하는 것을 의미한다. 잘사는 것만큼 잘 죽는 것이 중요하다는 역발상으로 나타난 새로운 인식의 흐름이다.


갑작스러운 친구의 사망 소식을 접한 오빠의 동창생들은 장례식장에서 뜻하지 않은 연말모임을 가졌다. 어떤 이야기가 오갔을까?


친구를 애도하며 예를 갖추고 온 오빠는 식사를 잘 하지 못했다. 친정부모님 장례기간 동안 나 역시 그랬다. 임종을 지켜본 후 입맛을 바로 잃어버렸다. 빈소를 지키는 내내 물 이외에 넘길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었다.

고등학교 친한 친구가 조문을 와 그런 나를 보면 말했다.


"기운차려야지."


이어 내가 먹지 않으면 자기도 먹지 않겠다고 숟가락을 쥐어져 겨우 국을 입에 넣었지만 잘 넘기지 못했다. 장례 후에도 현실이 된 그리움으로 눈물흘리며 비슷한 시간을 보냈다.


스스로 몇 살까지 살지 알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기대수명이 늘어나고 있지만 예측은 어렵기만 하다.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나 한 번은 맞이해야 하는 일이 죽음이다. 그 시간이 나에게 언제 어떻게 다가올지 모른다.


오빠의 친구처럼 예상하지 못한 시간에 찾아온다면?


누군가의 죽음을 보면 그래서 지금 이 순간 숨쉬고 있는 것 자체를 기적이라 말하나 보다. 기적같은 하루가 또 주어진 것이다.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어제 떠난 이가 그토록 기다린 내일을 나는 오늘로 살고 있다. 아직까지 주어진 인생의 시간이 소중해진다. 이런 소식을 들은 날엔 더욱.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나에게도 죽음으로 끝이 날 시간이 올 것이다. 지금 살아 숨쉰다면 '조금 더 놀자, 좀 더 자자'라고 말하기 보다 '조금 더 사랑하고 조금 더 배려하고 조금 더 나를 존중하자'라는 마음으로 살아가면 어떨까? 나답게 내가 원하는 인생을.


'사랑할 수 있을 때 사랑하기!'

캘리그라피.사랑2.png 캘리그라피 수업 중 만든 사랑에 대해서


작년에 캘리그라피 수업 때 떠올린 글이다. 한 해 더 살았으니 이런 글로 이어보면 어떨까?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미루지 말고 지금 그 마음 표현하자!'




떠난 뒤에 후회할 일을 만들지 않으면 좋겠다. 특히, 사랑하는 사람에게 해야 할 말이나 행동이라면.

이별하면 못한 것 때문에 아픔이 배가 된다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주어진 인생의 시간이 예상보다 길지 않을수도 있는 게 우리의 삶이기에.


삼가 오빠 친구분의 명복을 빌며, 남은 가족을 위해 위로의 기도를 한다.


'부디 건강하고 덜 아프길.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는 열정과 용기를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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