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

잃어버린 한 마리 양과 탕자 비유의 의미

by 오로라


“너희 중 어떤 사람에게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가운데 한 마리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판에 두고 잃은 양을 찾아다니지 않겠느냐?” (누가복음 15장 4절)


이 비유는 한 사람을 향한 절대적인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가치를 보여준다. 중요한 가치를 살펴보자.


첫째. 모두가 소중한 존재

하나님께서는 단 한 사람도 다른 대상으로 대체 가능한 존재로 보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아흔아홉 마리의 양이 곁에 있어도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이 있다면 반드시 찾아야 할 존재로 생각한다. 인간 세계에서 불필요한 존재가 있다고 보는 관점과 대조적이다. 창조주 하나님은 피조물인 사람은 누구라도 포기하지 않는다.


“그러다 찾으면 기뻐서 양을 어깨에 메고 집에 돌아와 친구들과 이웃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나와 함께 기뻐합시다. 잃은 내 양을 찾았습니다” (누가복음 15장 5절~6절)


둘째, 먼저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사랑

양은 스스로 길을 찾지 못하는 존재로 목자가 필요하다. 길을 잃은 양은 목자가 직접 찾아 나서서 끝까지 찾아야만 생존할 수 있다. 그래서 이 비유는 인간이 하나님을 찾기 전에 먼저 찾아오시는 관대한 사랑을 의미한다.


셋째, 회복의 기쁨

목자는 잃어버린 양을 찾았을 때 기뻐하며 잔치를 연다. 갈 길을 찾지 못한 양을 책망하지 않는 것은 죄인을 정죄하기보다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을 기뻐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즉, 어떤 죄인일지라도 진심으로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나오면 회복될 수 있고, 돌아온 양처럼 그 자체를 위해 잔치를 벌일 만큼 기뻐하신다는 메시지다.


넷째, 관계가 중요한 사랑

사람은 99보다 1이 더 중요한 이유에 대해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사랑을 관계로 본다. 즉, 창조주에게 인간은 통계적 숫자나 집단보단 개별적인 존재 자체만으로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존재이다.


잃어버린 양의 비유는 하나님이 인간을 향해 보이는 사랑의 본질을 보여준다. 누구라도 절대 포기하지 않으시는 존재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죄인의 상태에서 돌아오는 것을 기뻐하신다. 그런 존재라는 것은 ’탕자‘에 대한 비유에서도 알 수 있다.


탕자의 비유는 누가복음 15장 11절에서 32절에 기록된 말씀이다. 이 역시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깊이 보여주는 이야기 중 하나이다.

이야기의 줄거리를 먼저 살펴보자. 부자 아버지에게 두 아들이 있었다. 그중 둘째 아들은 아버지에게 재산을 요구하고 곁을 떠나 재산을 탕진하고 몰락한다.


“며칠 후 작은아들은 자기 재산을 다 정리하여 먼 나라로 가서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재산을 모두 날려 버렸다.” (누가복음 15장 13절)


고생 끝에 갈 곳이 없어 돼지의 쥐엄열매까지 먹는 비참한 생활을 하다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온다.


“그는 너무나 배가 고파 돼지가 먹는 쥐엄나무 열매로 배를 채우려 했지만, 그것마저 주는 사람이 없었다.” (누가복음 15장 16절)


그런 아들을 아버지는 간절히 기다렸던 것처럼 먼저 달려가 맞이한다. 이런 아버지를 큰아들은 못마땅해한다.

둘째 아들에게 보인 모습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해석할 수 있다.


첫째, 절대 버리지 않는 언약적 사랑

하나님은 인간과 언약 관계를 맺으신 분이다. 그래서 인간이 실패로 끝났다고 하더라도 관계를 끊지 않는다. 아버지의 재산을 요구하고 떠난 둘째 아들은 아버지와의 관계를 먼저 끊고 마음대로 떠났다. 하지만 아버지는 집 나간 아들을 계속 기다리고 돌아왔을 때도 반긴다.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였다. 어서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가락에 반지를 끼우고 신발을 신겨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와 잡아라. 우리 함께 먹고 즐기자.” (누가복음 15절 22절~23절)


둘째, 먼저 다가오는 하나님의 은혜

탕자는 아버지 곁에 있는 편안함 대신 자기 마음대로 집을 떠났다가 돌아가기로 했다. 이런 아들의 모습은 죄인인 인간이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나오길 바라는 아버지 마음이다. 돌아올 것을 바라며 하나님이 집 밖에 먼저 나가 기다린다.


탕자 이야기는 하나님의 구원의 메시지를 담은 내용이기도 하다. 탕자의 행실에 따라 아버지가 회복의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제적 사랑으로 아들의 자리로 복귀할 수 있다. 즉, 조건 없이 돌아온 아들로 아버지는 바로 회복시켜 주었다. 이처럼 하나님의 구원은 회개 후 돌아오면 누구라도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돌아온 탕자가 미안한 마음에 종으로 살겠다고 하지만 아버지는 종이 아닌 원래의 아들로 대한다. 그래서 자색 옷을 입히고 반지를 끼우며 신분을 회복시켜 크게 잔치를 벌인 것이다. 권위를 상징하는 반지를 끼우는 행위자 잔치를 베푸는 것 모두 회복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죄인인 사람을 단순히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자녀로 다시 받아들이는 무한한 사랑의 본질을 보여준다. 즉, 자비와 은혜를 베푸는 모습을 나타낸다. 더불어 동생의 귀향을 못마땅한 큰아들에 대해서도 사랑의 메시지를 전한다.

“아버지가 대답하였다. 애야,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가 가진 모든 것이 다 네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네 동생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잃었다가 다시 찾았으므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누가복음 15장 32절)

하나님은 집을 나간 탕자 아들도 곁에서 의로운 척하는 큰아들 모두 사랑한다. 즉, 하나님은 어떤 유형의 인간이라도 포기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잃어버린 한 마리 양과 탕자의 비유 모두 인간이 하나님을 먼저 떠나도 하나님은 절대 당신과의 관계를 포기하지 않는 것을 강조한다. 두 가지 비유 모두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라는 선언적 말씀의 가장 핵심적 내용이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모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4장 8절)


결론적으로 두 가지 비유 모두 창조주 하나님의 피조물에 대한 참사랑을 보여준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을 알고 믿고 있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 사랑 안에 사는 사람은 하나님 안에서 살고 하나님도 그 사람 안에 계십니다.” (요한일서 4장 1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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