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부르사의 화려한 과거

부르사, 추말르크즉, 이즈닉을 방문하다.

by 담소

지금 우리는 튀르키예의 화려했던 과거 중심지, 부르사(Bursa)에 머물고 있다.

부르사(Bursa)의 아침 하늘이 파랗고 햇살이 좋아 덩달아 기분이 좋다.


어제는 불가리아 소피아에서 출발, 이스탄불(Istanbul) 공항에 도착하면서부터 이곳 부르사에 도착하기까지 당황스럽고 힘든 과정을 겪었다.

여행을 하며 예기치 않은 일들을 접하기 다반사이고 당황스런 일을 만나는 경우가 허다하지만 어제와 같은 일은 여행 중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경험이었다.


이스탄불 공항에 도착 후 한국에서 예약한 자동차를 렌트하려고 했지만 렌터카 회사의 실수로 차가 우리에게 배정되지 않아 한참동안 기다려야 하는 일이 발생했다.

한국처럼 서둘러 해결해 줄 의향이 없는 그들은 결국 3시간 이상 우리를 공항에 방치해 놓았고 결국엔 우리에게 미안했던지 업그레이된 중형차로 빌려주긴 했지만 그래도 쓸데없이 시간을 허비하고 마음이 많이 다친 걸 생각하면 지금도 많이 속상하다.

또 어제는 토요일 오후. 한국에서의 토요일 오후 교통체증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이스탄불의 6차선 도로가 차들로 꽉 채워져 나들목에서는 나가지도 들어오지도 못하는 상황이 자꾸 반복이 되었다.

이런 교통체증은 고속도로에 접어들어서도 이어졌다.

넓고 곧게 뻗은 10차선의 고속도로는 최고 160km까지 속도를 낼 수 있다는 표지판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20~30km이상을 달릴 수가 없었다.

맞다! 세계 최고의 교통체증을 겪는 도시가 이스탄불이라던 기사가 이제서야 생각이 난다.

이스탄불 교통체증

한국 명절때의 도로상황은 비교도 안되는 것 같다.

특별한 이유가 없는 것 같은데 이렇게 밀리다니....

주말이라 많은 사람들이 도로로 나왔나보다. 가다 서다를 반복해야 하는 상황이 계속 이어지자 서서히 화가나기 시작했고 아무일도 아닌 걸로 남편에게 짜증을 내기도 했다.

아니나다를까 터키인들은 다혈질의 사람들이 많다고 했던가.

앞 차 사이로 다른 운전자가 끼어드는 걸 참지 못하고 멀리 있는 차들도 경적을 여기저기서 울려대는 바람에 더 신경이 날카로워진다.

그러고 보니 불가리아에서 여행하는 9일 동안은 경적 소리를 거의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이스탄불은 도착하자마자 여기저기서 울리는 경적소리로 짜증이 날 정도다.

바로 옆 가까운 나라인데도 분위기도 다르고 스케일도 다르고 사람들의 성격도 많은 차이가 있음을 느낀다.

이스탄불에서 부르사까지는 보통 1시간 40분이면 도착하는 곳을 우리는 무쳐 4시간 이상을 운전해야 했고 우리가 부르사에 도착한 시간은 밤 10시가 다 되어서였다.

튀르키예 고속도로에 있는 휴게소

다행히 터키의 고속도로에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휴게소 이용이 편리했다.

계획엔 부르사에 도착해 여유있는 저녁을 먹기로 했지만 시간이 지체되다보니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러 저녁을 먹어야 했다.

식사 주문을 해야 하는데 영어가 전혀 쓰여있지 않아 원하는 음식을 눈으로 보고 손짓으로 부탁을 했는데 이름도 모른채 처음 맛보는 터키 음식 치고는 먹을만한 맛이었다.

이렇게 부르사에 도착한 우리는 마음과 몸이 모두 지쳐 그대로 골아떨어질 수 밖에 없었다.




곤한 잠을 푹 자고 일어나니 몸도 개운해지고 화창한 날씨가 우리를 반겨 기분이 좋아진다.

도시 부르사(Bursa)에서의 행복한 하루가 우릴 기다릴 것만 같다.


부르사는 오스만 제국시절 1335년에서 1363년 사이 첫번째 수도였으며 비단 생산과 무역의 중심지로 중요한 역할을 한 도시였다.

특히 낙타를 데리고 다니는 여행자(caravaners)들이 하루의 여정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길가의 여관(카라반세라이)이 유명했는데 그중 가장 알려진 곳이 부르사의 Kosa Han이다.

이외에 바자(Bazaar), 베데스텐(Bedesten)과 같은 상업 건물이 이 도심에 세워져 주요 경제 활동 지역을 형성했는데 그것들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었다.

16세기에는 유명한 피렌체 메디치가문의 상업 대리인이 이 Kosa Han에 사무실을 두기도 했다고한다.

1923년 터키 공화국이 건국된 이후 부르사는 튀르키예의 산업 중심지 중 하나가 되었고 이는 곧 인구증가로 이어져 튀르키예에서 네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가 되었다.


부르사 올드타운을 구경하러 아침 일찍 나섰다.

어젯밤 늦게 도착한 탓에 우리 숙소가 어디쯤 있었는지 가늠이 안갔는데 오늘에서야 보니 올드타운 중앙에 위치한 호텔이었다.


부르사 올드타운 거리

몇 걸음 걷지 않아 제법 큰 재래시장과 만났다.

아침 9시가 막 넘은 시간이라 그런지 상인들이 막 가게의 문을 열고 있었다.

아침 시장의 분위기가 무척 활기차다.

눈에 띄는 건 쟁반에 차이(Çay)를 배달하는 사람들이었다.

차를 마신 후 하루 일과를 시작해야 하는 듯 시장 여기저기서 차이를 마시는 사람들이 꽤 많이 보인다.

이른아침 재래시장과 차이를 배달하는 사람

재래 시장내에서도 구역이 나뉘어져 있는데 우리는 먼저 'Kosa Han'에 먼저 들렀다.

Kosa Han은 과거에는 외국 상인을 위한 숙박 시설, 동물과 물품 보관소, 장인들의 작업장 또는사무실을 제공했던 장소였는데 그 당시에 Kosa Han은 Bursa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장소 중 하나였다.

지금은 그 역할이 사라지고 1층 광장엔 카페와 레스토랑, 2층엔 비단가게들이 들어서 있다.

광장 카페에 딸린 야외 테이블과 조그마한 분수와 자미(Camii)도 있다.

이른 시각인데 카페는 벌써 문을 열었고 카페에 앉아 차이와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이 있다.

Kosa Han의 광장과 2층 가게
Kosa Han의 광장 카페

우리도 터키에 왔고 또 여행자(caravaner)이니 과거의 그들처럼 이곳에서 차이(çay)를 마시며 분위기를 느껴보기로 했다.

'차이단 릭(çaydanlık)'이라는 2단 찻주전자의 윗 부분에서는 차를 우리고 아랫 부분에서는 물을 끓여 뜨거운 차와 물을 원하는 양으로 잔에 채워 마시면 되는 것이다.

예맨의 모카(Mocca)지역의 독립과 전쟁 후 물가 불안정으로 커피 가격이 급격히 오르자 나라에서는 커피대신 차이를 장려했는데 이후 오늘까지 차이를 많이 마시게 되었다는 말도 있다.

차이의 한 잔 가격은 보통 580원 정도이다.

잘록한 허리모양처럼 만들어진 작은 유리잔에 가득 담아주는 차이(çay).

뜨겁고 진한 감색 차이에 각설탕을 넣으면 사르르 녹으며 단맛이 살아난다.

처음 마셔보는 낯선 차이의 맛을 설명하기가 어렵지만 부담없이 마실 수 있는 계속 마시다보면 차이에 중독되어 갈 수도 있는 맛이다.

오늘처럼 차가운 아침 날씨에 야외 테이블에서 마시는 따뜻한 차이(çay)의 맛은 잊지 못할 것 같다.



부르사에서 유명한 '울루 자미( Bursa Ulu Camii)'에 들렀다.

울루 자미는 'Great Mosque'라고도 부른다.

울루자미는 미나레가 둘 뿐이지만 부르사에서 가장 크고 제일 유명한 자미이다.

이 자미는 약 5년간에 걸쳐 지어진 자미인데 오스만 건축에서 볼 수 있는 다중 돔형 모스크 형태의 가장 전형적인 곳으로도 유명한 곳이라고 한다.

많은 관광객들과 신자들이 아침 일찍 방문해서 예배를 드린다.

내부도 무척 웅장한데 특히 모스크 내부의 돔 아래 실내에 위치한 분수에 눈길이 간다.

왠지 내부의 아름다운 문양과 분수때문일까?

이슬람교의 엄격한 규율을 강조하기 보다는 조금은 개방적이고 현대적인 느낌이 드는 자미였다.


울루 자미 외관과 내부


부르사의 전망을 한 눈에 볼 수 있다는 곳, 톱하네 공원(Tophane Park)을 방문해보기로 했다.

울루자미에서 나와 톱하네 공원을 가려면 부르사의 바자르(Bazzar)를 지나가야 했는데 규모가 이렇게 클 줄이야.

이쪽 저쪽 사방으로 펼쳐져 있는 바자르의 규모는 이스탄불의 바자르 규모만큼이나 컸다.

하지만 이스탄불에 있는 바자르는 주로 관광객을 위해 기념품을 파는 가게들이 많았지만 이곳 부르사의 바자르는 실생활에 필요한 물품들을 현지인들이 구입하기 위해 찾는 바자르였다.

보석 중에서도 금(金)만 파는 구역, 실을 파는 구역, 면직물만 파는 구역, 실크만 파는 구역, 여성 드레스를 파는 구역, 남성 용품을 파는 구역 등 온갖 다양한 종류의 상점들이 바자르 안에 모여있었다.

바자르만 구경하면서 돌아다녀도 하루가 걸릴 것만 같다.

지도가 없으면 길을 잃을 것도 같다. 하지만 시장을 구경하는 건 언제나 흥미밌는 일이다.

Bursa Bazzar


바자르를 구경하고 '톱하네 공원(Tophane park)'에 도착했다.

이곳은 1855년 부르사 대지진이 일어나기 전까지 부르사 궁전이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톱하네 공원은 라마단 기간동안 '이프타르(일몰 시간에 맞춘 기도알림소리)'를 알리기 위하여 대포를 쏜 것에 유래하여 ‘대포를 쏘는 곳’이라는 뜻의 ‘Tophane’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톱하네 공원의 광장 중앙 시계탑(Saat kulesi)은 1905년에 만들어졌는데 고지대에 위치한 이점으로 부르사 시청에서는 이 탑을 화재 감시탑으로도 사용한다고 한다.

시계탑

또한 이 공원은 오스만 제국의 초대 술탄이 되는 '오스만가지' 와 그의 아들 '오르한가지' 의 영묘(陵墓)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오르한 가지는 부르사를 수도로 삼고 유럽지역을 정복해 나가는 출발점을 바로 부르사로 삼았으니 튀르키예인들에게 무척 의미있는 도시이다.

때마침 오스만가지의 영묘를 지키는 경비병의 교대식을 거행하는 시간이 되어 교대식을 구경했는데 흥미로운 볼거리였다.


영묘 내부에 들어가자 중앙에 오스만가지의 관(棺)이 안치되어 있고 좌우에는 부인의 관을 두고 그 뒤에는 아들 및 손자들의 관이 놓여 있는데, 이슬람교에서는 화장문화를 금지하고 매장문화를 고수하므로 관 아래에 시신이 매장되어 있다고 한다.

국토가 넓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언뜻 스친다.

오르한 , 오스만 무덤

영묘 뒤편에 있는 전망대로 가서 부르사 시가지를 바라본다.

드넓게 펼쳐진 평원에 세워진 빌딩들과 집들 그리고 우뚝 솟은 미나레를 포함한 자미들 그리고 사방으로 곧게 뻗은 도로....

끈이 안 보일 정도로 정말 넓다.

역시 과거의 수도이며 대도시답다.

도시 전체가 매우 활기차고 곳곳에 숨어 있는 유적과 명소들이 나에게 무척 인상깊게 다가오는 도시다.




아침부터 서둘러 돌아다녔더니 서서히 배가 고프다

남편은 부르사가 이스켄데르 케밥으로 유명한 곳이라고 하며 이스켄데르 케밥(İskender kebabi)을 먹자고 한다.

이스켄데르의 후손들은 아직도 부르사에서 케밥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는데, 때문에 이스켄데르 케밥을 '부르사 케밥(Bursa kebabı)' 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먹거리 골목에 도착했더니 양쪽 모든 가게가 레스토랑인데 웨이터들이 밖으로 나와 우리를 손짓하고 있다.

피델리 쾨프테와 이스켄데르 케밥, 그리고 아이란을 주문해서 먹었는데 과연 말 그대로 맛이 있다.

고기는 연하고 부드러우면서 쫀득하기까지 하다.

뜨거운 석쇠에 올려진 요구르트와 토마토, 그리고 구운 고기가 나오고 요리사가 나와 직접 고기위에 뜨거운 버터를 부어주는데.... 색다른 음식들의 조화가 환상이다.

둘이 먹다가 한사람이 죽어도 모른다는 식상한 속담이 저절로 생각이 나는 요리였다.




재래시장에 가보니 과일을 파는 구역에서 딸기를 잔뜩 쌓아놓고 파는 가게가 보인다. 10월에 딸기라니....

그것도 1kg에 1,400원이다. 도저히 지나칠 수 없어 절반을 샀다.

우습게도 아저씨가 저울에 달아보더니 조그만 딸기 1개를 비닐봉지에 더 넣어준다...한 웅큼도 아니고 한 개라니..이것도 덤이라고 할 수 있나? ㅎㅎㅎ

기분 좋은 관광을 마치고 부르사 근처에 있는 아름다운 마을 '추말리키직(Cumalıkızık)'으로 향했다.




201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 된 마을, 추말르크즉(Cumalıkızık)은 오스만 제국 시기 당시에 형성된 마을이다.

마을 이름이 참 어렵기도하고 독특하기도 하다.

마을 사람들이 금요일(cuma) 마다 기도를 위해 모이곤 했던 곳이기 때문에 Cumalıkızık라고 불렸다고도 하고 또 다른 소문은 오스만 베이가 마을을 세운 날이 금요일이기 때문에 이 마을에 "Cumalıkızık"라는 이름을 붙였다고도 하는데 어쨌든 이름도 마을도 모두 독특하다.

건축물들 또한 초기 오스만 건축 양식은 물론 그 당시의 정취가 가장 사실적으로 보존된 지역으로 Cumalıkızık 마을은 한마디로 '타임 캡슐'이었다.



마을 입구에 도착하자 오래된 플라타너스가 중심이된 광장이 먼저 우리를 맞는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 광장(?)은 마을에서 가장 넓은 공간이지 싶다. 현재는 이 광장이 마을 사람들의 바자회장소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추말리키직 광장


도착하니 관광객들이 꽤 많다.

마을은 매우 작아 약 한 두시간 정도면 충분히 둘러볼 수 있었다.

인도가 따로 없는 돌이 깔린 좁은 길

길 양 옆으로 보라색, 파란색, 노란색 흙벽돌과 나무집, 돌집을 보면 마을이 원형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게 된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장소가 많다더니 정말 독특하고 아름다운 마을이다.

아직도 흑벽이 남아있고 2층집으로 지어진 곳엔 창문이 2~3개씩 나 있는 게 특징이었다.

좁은 골목들은 울퉁불퉁한 자연석의 돌길로 조성되어 있고 좁은 골목길을 따라 마주보고 있는 전통 가옥들은 지금은 주로 레스토랑과 카페, 그리고 소품을 파는 집들로 용도가 대부분 바뀌어 있었다.

전통 가옥 내부를 잠시 들어가자 제일 먼저 넓은 정원이 보이고 1층엔 곡식 창고와 짐승들을 키우는 곳간이나 헛간들이 있다. 사람들은 2층에 주거를 했을 것 같다.



마을의 골목길은 빗물이 빠져나갈 수 있도록 경사로로 되어 있었고 좁은 골목 가운데에는 시냇물 흐르듯 물길이 나있는 것이 신기했다.

하지만 비가 한꺼번에 많이 내리면 빗물이 넘칠 위험도 있을 것 같다.

골목 풍경


마을을 구경하다가 전통가옥으로 된 카페에 들어가 차이와 전통 튀르키예식 커피를 주문했다.

아주 조그마한 에스프레소 잔에 진한 커피와 함께 물이 든 잔을 내어 준다.

커피 가루가 가라 앉을 때까지 한참을 기다린 후 한 모금 마셔보는데 무척 진하다.

그런데 몇 모금 마시자 금새 커피가루가 내 입안으로 들어온다....헉!

결국 끝까지 마실 수 없어 남겨야 했다.

진한 튀르키예식 커피를 즐기지 못하는 걸 보니 나는 튀르키예인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마을을 떠나 이즈닉(Iznik)마을의 호수(Iznik Lake)를 들러 보기로 했다.

이 호수는 튀르키예에서 다섯 번째로 큰 호수로 알려져 있는데 바다라고 해도 믿을 만큼 드넓다.


Iznik 호수의 길이는 33km, 폭은 12km, 둘레가 95km에 이른다고 하니 어마어마한 호수임은 틀림없다.

특히 고대 아나톨리아 반도에 존재했던 문명의 고대 교회유적이 발견된 호수로 유명하다.

2014년 Bursa시는 공중에서 이 호수를 촬영했는데 그때 수중 유적지가 발견되었고 그 유적은 대성당이었는데 740년에 지진으로 파괴된 것으로 추측되는 성당이다.

도로 높은 곳에서 멀리 내려다 보이는 이즈닉 호수를 보기 위해 잠시 내렸는데 정말 아름답고 잔잔한 호수다.

이즈닉 호수에 도착해 주변을 산책하기로 했다.

이즈닉 호수 근처에 있는 공원은 튀르키예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피크닉 장소라고 알려져 있어 그런지 깨끗하게 잘 정비되어 있었고 소나무가 함께 우거진 호숫가 산책로도 꽤 아름답게 만들어져 있었다.


길 가엔 멋진 레스토랑과 카페가 늘어서 있고 사람들은 공원과 산책로를 여유를 즐기고 있다.

약 한 시간쯤 호수를 따라 산책을 하니 평화롭고 힐링이 되는 곳이 바로 이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잔잔하게 불어오는 바람과 따뜻한 햇살, 그리고 아름답게 펼쳐진 호수...

공원 안에 아이스크림과 커피를 팔고 있는 가게가 눈에 띄어 어런 아이들 뒤를 이어 우리도 아이스크림을 사먹어본다. 튀르키예 아이스크림이다.

더 무엇이 필요할까?

이 호수에서는 해질녘 일몰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황홀한 경험도 할 수 있다고 하는데...


이즈닉 마을은 또한 타일로 유명한 마을이다.

전통적으로 파란색 디자인의 타일을 추구했지만 지금은 파란색과 붉은 색등 다양한 색상을 함께 사용해서 더욱 화려해졌다고 한다.

이즈닉 호수 근처의 타일

이스탄불의 유명한 '아야소피아(Ayasofya)' 사원에 있는 타일도 이즈닉에서 만든 타일이라고 하니 이 마을에서 만들어내는 타일의 가치는 대단한 것 같다.

거리 산책을 하면서 눈에 띄었던 타일들이 무척 아름답고 색이 선명했다.




시간이 쏜살같이 흐른다.

아름다운 장소에 머물러 있을 수록 시간은 더 빨리 흐르는게 분명하다.

갈 길이 먼 우리는 일몰을 기다릴 수 없어 아쉬운 마음으로 출발을 해야했다.

이런 멋진 마을에서는 하루쯤 묵어가도 좋을 것만 같다.


우리는 이즈닉 마을의 호수를 아쉬운 마음으로 계속 뒤돌아보며 무겁고 아쉬운 발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