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차코자(Akçakoca)마을에 들르다.
악차코자(Akçakoca)는 이스탄불에서 약 200km 떨어진 튀르키예 흑해에 위치한 마을이며 이 지역을 점령했던 튀르키예 족장 '악차코자(Akçakoca)'의 이름을 딴 마을이다.
이즈닉 마을을 떠나 구불거리는 도로와 산을 넘자 거짓말처럼 바로 흑해가 내 눈앞에 나타난다.
악차코자 마을에 거의 다 왔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산을 넘자마자 바로 바다가 펼쳐지니 정말 신기하다.
저녁 7시가 다 되어가고 어스름 어둠이 내린 마을엔 나무들마다 달려있는 독특한 네온사인이 화려함을 발하고 있었다.
이곳이 관광지임을 알리는 나름의 표현, 비수기라 그런지 지금은 거리가 조용하다.
이미 어두워진 시간이라 바다는 자세히 볼 수 없었지만 바다가 바로 옆에 있다는 사실에 무척 기분이 좋았다.
하물며 우리가 묵는 숙소는 바닷가 절벽에 위치해 있다.
숙소에 들어서자마자 발코니에 나가니 흑해가 바로 아래에서 출렁인다.
당장 발코니에 앉아 맥주를 들이켜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아쉽게도 우리에겐 맥주가 없다.
튀르키예에선 일반 마켓에서 맥주를 구할 수 없었고 주류를 파는 곳에 가야만 살 수 있었기 때문이다.ㅠㅠ
내일 아침엔 이 발코니에서 맥주 대신 향 그윽한 모닝커피를 마시고 아름다운 바닷가마을 악차코자를 걸어보려 한다
이른 새벽 아름다운 해변마을에도 어김없이 아잔(adhan) 소리는 들린다.
새벽 다섯 시도 안되어 시작된 아잔은 소리가 몹시 크다.
모두가 잠들어 있는 조용한 새벽 시간이라 그런가 보다.
어젯밤 악차코자의 그림 같은 풍경과 바닷소리를 배경 삼아 잠에 들었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역시 빼어난 전경에 숨이 막힌다.
뭐라 형용할 수 없는 흑해의 장관에 흥분이 된다.
진한 커피와 함께 한참 동안이나 멍한 채로 바다를 바라보게 된다.
코발트 빛 바다는 햇살에 반짝반짝 빛을 발하며 잔잔하게 출렁이고 있다.
그리고 바다 위에 떠있는 하얀 보트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
아름답다는 말 밖엔 뭐라 표현할 말이 생각이 안 난다.
오늘도 이렇게 맑고 화창한 날씨와 멋진 풍경을 만나게 해 준 것에 감사해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아직은 이른 시각이지만 숙소를 나섰다.
아름답고 평화로운 마을을 실내에서만 보고 있기엔 낭비라는 생각이 들어 서둘러 나왔다.
숙소 아래 바닷가로 향했는데 역시 시즌이 지난 바닷가라 그런지 조용하다.
바다 멀리 고깃배들은 군데군데 보이는데 인적은 바다에 낚싯대를 던지는 할아버지뿐.
잡은 고기는 없는지 빈 바구니.
하긴 잡아야만 맛인가...
이렇게 아름다운 바닷가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행복일 텐데...
할아버지도 그런 마음으로 오랜 시간 저렇게 보내고 계시는 것인지 모른다.
우리도 잠시 바닷가를 걷는다.
걷다 보니 이 바닷가에는 강물과 바다가 만나는 지점이 있었다.
제법 큰 강의 많은 물이 흘러 바다로 들어오는 게 보인다.
강물과 바닷물이 직접 만나는 장소를 보니 신기했다.
높은 언덕에서 바다를 보면 훨씬 더 감동적일 것 같아서 절벽 위 전망 좋은 곳으로 올라가 보기로 했다.
언덕에 오르니 바람이 시원하다.
역시 이곳에서 내려보는 광활한 흑해도 멋지다.
어찌 이렇게 잔잔할 수 있을까? 호수 같은 바다다.
물에 적시면 진한 푸른색으로 옷에 물이 들 것만 같다.
언덕에서 내려와 조금 걸으니 Akçakoca Castle(악차코자 성)이 나온다.
제노바 성(ceneviz kale plaji)으로도 알려진 Akçakoca 성은 절벽 위에 지어진 성으로 라틴 제국이 제4차 십자군 전쟁 동안 콘스탄티노플을 정복한 후 1204년에서 1261년에 걸쳐 건설했다고 한다.
헬레니즘시대부터 세워진 이 성은 오랜 역사를 표현하고 있음은 물론 아름다운 흑해와 더불어 자연과 어우러지는 멋진 조화를 보여주고 있다.
제노바 성은 헬레니즘, 로마 시대를 거쳐 지금까지 현존해 있는 성으로 고고학 및 자연 유적지로 등록되었고 또한 유네스코 세계 유산 목록에 잠정적으로 등재되어 있는 성이다.
입구에 도착하니 안간힘 쓰며 성벽을 오르는 재밌는 마네킹들이 보인다.
성벽에 박힌 돌들 하나하나 견고하게 쌓은 성벽이니 지금까지 온전히 보존되어 있나 보다.
성벽 안으로 들어와 조금 더 걸어 올라가니 멋진 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근사한 장소가 나온다.
절벽 위에 높이 세워진 아름답고 멋진 유서 깊은 성이었음에 분명하다.
그 당시 이 마을이 무역로로도 사용된 곳이라고 하니 이 성에서는 많은 일들이 벌어졌을 것 같다.
성에서 내려와 바로 옆에 있는 Mavi Baylakli plazi(Geonese Castle Beach) 해수욕장에 잠시 들렀다.
Akçakoca Castle 옆에 위치한 해변으로 너도밤나무로 둘러싸인 멋진 바다에서 쉴 수 있도록 움푹 들어간 조용하고 아담한 해변이다.
지금은 아무도 없는 한적한 모래사장이지만 여름에는 알록달록 비치파라솔과 많은 사람들이 물놀이를 즐길 것이다.
바다를 바라보는 절벽은 마치 우리나라의 채석강을 연상시킨다.
해안을 따라가면 동굴이 있다고 하는데 그 동굴은 배를 타고 가야 볼 수 있는 동굴이라고 한다.
파도소리만 철석거리는 조용한 해수욕장이 무척 마음에 든다.
여름에는 하루 종일 이런 해변에서 빈둥거려도 좋을 것 같다.
아침 산책 치고는 꽤 시간이 흘렀다. 아침식사를 하라는 신호가 내 몸 안에서 느껴진다.
우리 부부의 아침 식사는 항상 간편하게 먹는 편이다. 하지만 튀르키예에 왔으니 '카흐발트(kahvaltı)'를 먹어보기로 했다.
카흐발트의 원래 뜻은 커피 전에 먹는 식사라고 하는 의미이며 튀르키예식 아침 식사인데 정찬이다.
아침을 간단하게 먹는 다른 유럽 국가들과 달리 튀르키예에서는 아침 식사를 매우 풍성하게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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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식사를 하기 위해 이곳저곳 둘러보는데 기분 좋은 미소를 보이는 할아버지가 우릴 향해 어서 오라고 손짓을 하신다.
레스토랑 이름은 ‘Gurme Restaurant’이다.
'미소트'라고 자신을 소개하는데 인상이 참 좋은 할아버지이시다.
레스토랑의 정원이 매우 넓다. 뒤편에도 야채를 키우는 넓은 뜰과 언덕이 보인다.
할아버지는 아침 식사를 준비할 동안 산책을 하라며 안내를 해주신다.
레스토랑 뒤편으로 조금 올라가자 직접 키우고 있는 다양한 채소들이 가득하다. 이 모든 채소들을 손님 식탁에 올리나 보다.
눈으로만 봐도 건강해질 것만 같다.
언덕에서 보이는 멋진 장관의 흑해에 넋을 놓고 바라보게 된다.
산책을 하고 내려오니 테이블엔 다양한 종류의 치즈와 쨈들, 달걀, 과일, 빵등이 차려져 있다.
우리를 강 옆에 있는 야외 테이블에 안내해 주시는데 그중에서도 전망 좋은 테이블에 세팅을 해주시는 배려는 덤이다.
옆에는 강이 흐르고 앞에는 흑해가 보인다.
힘차게 흐르는 강물 소리를 들으며 식사를 하니 기분이 새롭다.
할아버지는 여러 종류의 쨈들과 꿀, 그리고 모든 과일과 채소들이 농장에서 직접 재배한 유기농이라며 자랑을 하신다.
만찬이 차려진 식탁 앞에 앉으니 벌써 배가 찬 것 같다.
그런데 벌들이 어떻게 알고 왔는지 쨈과 꿀이 담겨있는 접시 위를 윙윙거린다.
벌들과 함께 아침식사를 했다.
할아버지는 식사 중에 자주 우리 테이블에 오셔서 아침 식사가 어떤지 물어봐주신다.
나는 튀르키예어로 “촉 귀젤(아주 맛있어요)”라고 했더니 매우 흡족해하시면서 차이를 연거푸 타 주신다.
식사를 마치고 떠나려는 우리에게 터키식 커피를 주신다며 기다리라고 하시더니 곧 커피까지 직접 타다 주셨다.
아무도 없는 레스토랑에서 여유롭게 식사를 하며 오로지 우리만 극진한 대접을 받은 것 같아 매우 흡족하다.
헤어질 때에는 나에게 사과와 포도가 든 꾸러미와 보라색 들꽃들을 꺾어 주신 할아버지...
낭만도 아시고 무엇보다 여성의 마음을 잘 알고 계시는 분이다
마음이 저절로 행복해진다.
행복한 아침 식사를 마치고 악차코자 거리를 산책했다.
어제의 화려했던 밤거리는 사라지고 햇살 좋은 아침에 둘러보는 악차코자 거리는 무척 깨끗하고 조용했다.
나이 지긋하게 드신 할아버지들이 거리에 모여 앉아 차이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 참 정겹고 편안해 보인다.
마을 중심에 있는 ‘악차코자 자미(Merkezi cami)’를 둘러보기로 했다.
튀르키예에서 자주 보았던 자미와는 달리 악차코자 마을의 이 모스크는 특이한 디자인의 현대적인 모스크로 알려져 있다.
조용한 바닷가 시골 마을에 현대식 디자인으로 탄생한 자미가 사뭇 색다르다.
마을과 잘 어울리는 듯도 하고 어찌 보면 마을과 동떨어진 느낌이 들기도 하고...
푸른 바다를 상징하는 걸까?
자미의 파란 창들이 유독 눈에 들어온다.
자미 주변은 무척 조용하다.
일요일 아침 이 시간 즈음이면 사람들로 북적거릴 텐데 왠지 자미는 조용하다.
바람과 햇살이 좋아 악차코자 시티공원을 산책했다.
다부지고 근엄한 눈빛으로 잔잔한 흑해를 바라보고 있는 동상들과 악차코자를 수호하기 위해 싸운 위인들의 두상들이 일렬로 전시되어 있는 게 독특했다.
이 두상들 가운데 '악차코자'도 있겠지?
바닷길을 따라 한참 산책을 하다 보니 바람은 청량한데 햇살이 점점 뜨거워진다.
역시 나는 한국사람인가 보다. 햇살을 조금이라도 가리려 그늘을 찾고 모자를 쓰게 되니 말이다.
마을의 분위기가 깨끗하고 상쾌하다.
어디를 가나 말끔하게 단장된 시설에 기분이 좋아진다.
비둘기에게 먹이를 나눠주는 할아버지가 먹이를 가득 쥔 두 손을 벌리자 비둘기들이 할아버지 손에 모여든다.
기분이 좋으신지 행복한 미소를 지으신다.
나도 따라 저절로 미소 짓게 된다.
하룻밤 잠시 머물다 가는 흑해 마을 '악차코자(Akçakoca)'!
싱그럽고 상쾌한 마을이라는 인상과 함께 아름다운 기억들로 가득 채우고 기분 좋게 머물다 갈 수 있어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