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오늘은 05화

여보라고 불러볼 걸 그랬어

오늘은

by 이연숙

“우린 처음부터 여보라고 불렀어요, 그치 여보?”

“그러게, 그런데 우리는 지금까지 그렇게 불러본 적이 없네?”

“난 남편을 오빠라고 부르는 것도 이상하지만 자기 남편을 아빠라고 부르는 것도 듣기 그렇더라고요.”

“처음엔 나도 그랬는데 요즘은 오빠가 아예 남편을 부르는 호칭이 되어버린 거 같아. 이러다 국어사전에 올라가는 거 아닌가 몰라.”

“우린 연애할 땐 00씨, 결혼해서는 여보, 아이가 생기고부터는 어른들 앞에서는 00아빠라고 불렀어요.”


동생 집에 놀러갔다가 올케와 호칭에 관한 얘기를 하는 중이었다.

남편에 대한 호칭을 깔끔하게 정리하는 올케의 말을 듣다

생각해보니 나는 K를 여보라고 불렀던 적이 없었다.

따지고 보면 오빠 친구로 오래 알았으니 오빠라고 불러도 이상할 일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또 그렇게 부른 것도 아니다.

아이가 생긴 이후에야 00아빠라고 불렀겠지만

그 이전에 어떤 호칭을 자주 사용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 뿐 아니라 K 역시 나를 여보라고 부른 적은 없었다.


여보라는 말이 왜 그렇게 어색했을까.

신혼 때 시댁 지척에 사느라 시집살이 아닌 것 같은 시집살이를 하면서

대부분의 시간은 시 어른들 눈치를 보며 지냈던 것 같다.

어른들 앞에서 여보라고 부르는 게 어쩐지 능글맞은 것 같기도 해서 부끄럽고 민망했다.

어찌 생각하면 사실상 서로를 부를 일이 거의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저기요?’ 라거나 ‘슨생님!’ ‘김부장님!’ 으로 내가 장난처럼 K를 부른 경우가 있고

가끔 ‘(큰애이름)아빠’ 라고는 K를 부를 때보다 내가 부모님들과 K의 얘기를 할 때 했다.

K는 나를....뭐라고 부르더라?

이거다 하고 떠오르는 게 없다.

K가 나를 00엄마라고 부른 적은 없다. 그렇다고 허니 라든가 자기야 등등

부부사이의 꿀 떨어지는 호칭을 K가 사용하는 장면은 상상조차 안 된다.

언젠가 내가 K에게

우리는 오빠 동생으로 만나서 연애할 때조차 이름을 불러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며

서로 00씨라고 이름을 불러보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몇 번인가 K가 나를 ‘연숙씨.’ 라고 불러준 적은 있었던 것 같은데

나는 K를 00씨라고 불러보려 했지만 결국 입이 떨어지지 않아서 흐지부지 되었다.


20220814여보라고 불러볼 걸 그랬어.jpg


동생 집을 나서면서 올케가 만들어준 군자란화분을 들고 가야해서

앞 서 나간 K를 급하게 불렀다.


“저기! 아빠! 이거 좀...”


00아빠라고 부른다는 것이 급히 부르느라 아이 이름조차 빼먹고 나니

좀 전에 올케가 듣기 거북하다던, ‘자기 남편을 아빠라고 부르는’ 이상한 여자가 되어버렸다.

듣기 거시기해도 결코 티내지 않을 속 깊은 올케지만

공연히 지레 켕겨서 집에 오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의외로 동생 부부가 서로 여보라고 부르는 소리가

생각처럼 그리 능글맞거나 어색하지 않았던 것 같다.

오히려 오순도순 따뜻하고 귀여운 느낌마저 들었다.

집으로 오는 차 안에서 들릴 듯 말 듯 ‘여보’라고 불러보았다.

K는 듣지 못했다.

(듣지 못한 건지 못들은 체 했는지는 K만 안다.)

여전히 어색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여보라고 불러볼 걸 그랬다.

이제 와서 익숙하지도 않은 그 호칭을 소환하기보다는

우리만의 호칭을 새로 만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나쁘지 않을 뿐 아니라 반드시 만들어야 할 것 같다.


언제부터인지 아이들이 계급장처럼 일상의 한 가운데에 들어와 있었다.

아이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부모와 멀어지기 시작하는 거라는 소설 속 문장처럼

이제는 00엄마, 00아빠라는 계급장 떼고 나의 일상을 살아야 한다.

그러려면 호칭을 정해야 한다.

무표정한 K가 불러도 어색하지 않고

피난길에 손을 놓쳐 헤어졌을 때 멀리서도 나를 부르는 소리인줄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는

뭐 그런 좋은 호칭 어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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