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오늘은 03화

못생긴 나무, 너로 정했다.

오늘은

by 이연숙



드라마 모래시계가 대한민국의 저녁시간을 지배할 무렵

정동진역에 가면 고현정 나무가 있다고 했다.

자기 아내가 세상에서 제일 예쁜 줄 아는 동생은

자유로에 있는 어떤 나무를 김ㅇㅇ 나무라고 올케의 이름을 붙였다고 했다.

아버지 산소에 다녀오는 길에 차창 밖으로 휙 스쳐간 잘 생긴 나무를 보고

나도 동생 따라 저거 이연숙 나무라고 할래.

라고 했으나 이후로 자유로를 지나칠 때마다 나무를 찾아보려 했지만

그게 찾아질 리 만무했다.

정작 내 나무는 진도에 생겼다.

여행 동호회 따라 진도 답사를 갔을 때

마침 마을에 벚나무를 심었고 나무마다 그날 참석했던 동호회원들의 이름을 붙였다고 했다.

아직 잎도 나지 않은 가느다란 묘목이었지만

아담하고 반듯하게 생긴 나무 가지에 ‘유나’(카페 닉네임) 라고 쓰인 이름표가 다소곳이 붙어있었다.

그 나무가 무럭무럭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이 생겼고

언제라도 그 곳에 가면 내 나무가 자라고 있을 거라는 생각에 마음이 설렜다.

그게 동호회 답사 첫 참석이었는데

마음하고는 달리 이 후로 그 곳에 갈 일은 생기지 않았다.

하여 내 이름을 붙인 내 나무가 얼마나 컸는지

혹여 이미 이 세상에 남아있지 않은 것은 아닌지 이따금 한 번씩 문득 떠오를 때가 있다.




걸음 수만큼 캐시나 포인트를 준다는 어플을 모아모아

요즘 매일 만 걸음 걷기에 도전하는 중이다.

그 중에는 어플에서 지정한 장소에 모두 가면 100원을 주는 미션도 있어

집을 나설 때 K에게


“나 돈 벌어 올게.”


라고 말하면 K는


“응, 많이 벌어와.”


라고 받아친다.

연 중 며칠 안 되는 청명한 가을 날씨가 아까워서 될수록 길게 걷는다.

단지를 한 바퀴 돌면 약 3천 걸음쯤 되고

길 건너 새로 생긴 건물을 또 한 바퀴 돌면 천 걸음쯤.

천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 있는 아파트 블록을 돌아 프랜차이즈 커피숍과 햄버거가게에서 포인트를 받고 집으로 돌아오면 만 걸음이 채 안 된다.


어제는 오랜만에 천변으로 내려갔다.

지난 늦여름, 갑자기 내린 폭우로 천이 범람하는 초유의 사태가 있던 날 밤

우리는 지하주차장 차 빼라는 방송도 못 듣고 깊은 잠을 잤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거실 복도 등이 켜져 있었고

새벽녘 잠결에 켜져 있던 프로젝터를 껐던 기억이 났으며

(K가 전원을 끄지도 않고 자러 들어갔구나 했는데 정전이 복원되면서 생긴 현상이었다.)

얼핏 창밖을 보니 지상주차가 허용되지 않는 아파트 단지 안 길이

온통 차들로 빽빽했었다.

도로는 펄이 되었고 천변으로 내려가는 길은 막혀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차리지 못한 채 며칠 후 천변으로 내려갔을 때

그 곳의 상황은 상상 이상으로 처참했다.

주로 이용하는 네 개의 다리 난간은 모두 부서졌고

방향표시석과 돌에 두꺼운 나무를 걸쳐 놓은 벤치도 무참하게 무너졌으며

제법 굵게 자란 나무가 뿌리를 드러내며 겨우 버티고 서 있었다.

물은 여전히 무심하게 흐르고 있었지만 그 곳은 예전의 그 곳이 아니었다.


그로부터 두 달이 지났다.

다리 난간은 교체되어있었고 부러진 나무들은 대부분 치워져있었으며

쓰레기가 모인 잡풀 숲은 하류에서 상류 방향으로 조금씩 정비해가는 중이었다.

새삼, 여전히 무사한 나무들이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 물건에 이름을 붙이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지만 나는 영 소질이 없었다.

카메라, 자동차, 커피 용품 등 몇 번인가 시도를 해 본 적은 있지만

마음에 들지 않거나 금세 잊어버렸다.

천변을 걷다가 문득 애착 나무를 하나 정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이름을 붙여 자주 쳐다봐주고 가끔 머물며 한 번씩 쓰다듬어 봐도 좋지 않을까.

다리로는 걸으면서 눈으로는 훤칠하고 잘생기고 잎도 무성한 좋은 나무를 찾았다.

건너편에서 비추는 햇살을 담뿍 받아 아른아른 신비한 빛을 만드는 버드나무도 멋지고

자잘한 이파리가 자글자글 소리를 내는 이름 모를 나무도 정겹다.

그러다 눈길이, 굵기가 비슷한 다른 한 쪽 줄기는 잘려 나가고

표면은 거칠고 부분탈모라도 있는 것처럼 잎이 듬성듬성 남아있는 못생긴 나무에 멈췄다.


20221014못생긴 나무, 너로 정했다.jpg


살아남았네.

너 참 대견하다.

어쩐지 볼품없는 그 나무가 짠한 느낌이 들었다.

좋아! 못생긴 나무, 너로 정했다.


돌아오는 길에 얼핏


‘저기요 아줌마! 못생겼다니요? 나도 나름 뼈대 있는 나무거든요?’


라는 소리가 바람결에 들린 것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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