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쯤, 병원 바로 옆에 백반집이 생겼다.
점심시간마다 맛집 탐방을 하는 나에게 좋은 소식이었다. 그 식당 메뉴 중에 끓여 먹는 전골식 된장찌개가 맛있었다. 식당은 노부부가 운영하고 있었다. 남자 사장님이 요리를 하고, 사모님은 홀에서 서빙과 계산을 담당하고 있었다. 엎어지면 코보다 턱이 닿을, 아주 가까운 식당이라 잘 되길 바랬다.
어느 날 진료실에 낯익은 분이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요 옆 백반집 사장입니다. 매일 먹는 혈압약이 있어서 처방받으러 왔습니다~"
"오~ 안녕하세요. 사장님이셨군요~ 제가 건강관리 잘~ 해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백반집 사장님과 나의 인연은 시작됐다. 이후 사장님은 내 병원을 꾸준히 다니며 건강관리를 받았다. 사모님도 우리 병원에 꾸준히 다니셨다. 두 분은 건강검진도 우리 병원에서 받으며, 두세 달에 한 번씩 내게 진료를 보았다.
사장님은 간혹 식당 운영의 푸념을 나에게 얘기할 때도 있었다.
"은퇴하고 놀 수도 없어서, 식당 일을 벌여 놓긴 했는데... 이 멀고 낯선 곳에 있다 보니, 괜히 했나 싶기도 하고.. 그러네요.. 허허"
" 제가 먹어보니, 된장찌개 전골이 아주 맛있던데요?
잘~ 되실 겁니다~ "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백반집은 우리 동네에 잘 적응해 가는 것 같았다. 새것의 티를 팍팍 내던 식당 간판은 조금씩 세월의 흔적이 묻었다. 주위와 겉도는 반짝반짝한 새것보단, 동네의 배경으로 물들어 가는 그런 낡은 것이 더 아름다워 보였다.
매일 지나치며 보이는 백반집 창문 안쪽엔 손님이 꽤 있을 때도, 한 명도 없을 때도 있었다. 나는 종종 점심시간에 된장찌개가 당길 때 그곳을 찾았다. 그럴 때마다 사모님과 사장님과 반갑게 인사를 하고, 점심을 먹고 나왔었다.
얼마 전 다시 그곳을 찾았었다. 손님은 나 외에는 없었다. 그날따라 서빙을 하는 사모님의 표정이 어두워 보였다. 사모님은 애써 웃음을 지으며, 평소 하던 안내를 어김없이 하셨다.
" 팔팔 끓으면 불을 제일 약하게 줄이고, 잘 저어서 드세요~"
"네. 감사합니다~"
말이 많지 않은 나는 표정이 어두운 사모님의 안부를 굳이 묻지 않았다. 평소대로 전골을 끓였고, 맛있게 된장찌개를 먹고 나왔다. 평소엔 계산을 하고 나올 때 주방 안에 보이는 사장님에게도 인사를 하고 나왔었다.
오늘 식당을 나올 때도 사장님의 뒷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바쁘게 일을 하고 계신 거 같아서, 굳이 사장님을 부르지 않고 인사 없이 그냥 나왔다.
며칠 후 출근을 하던 중, 뭔가 낯설어진 백반집 간판 자리에 시선이 갔다. 몇 년간 우리 동네 배경이 되어주던 그 간판의 상호가 없어져 있었다. 안타까운 예감이 틀렸길 바라며 백반집 안을 들여다보았다. 식탁과 의자, 집기들이 모두 치워져 있었다. 가슴 한 켠의 쓰린 마음이 생겼다. 병원에 들어왔고, 바쁜 일상에 쓰린 마음은 무뎌지며 그렇게 진료를 시작했다.
저녁이 되어 하루 일과를 끝내고 병원을 나왔다.
백반집 자리의 가게엔 벌써 새로운 상호의 간판이 달려있었다. 2년 넘게 자리했던 식당, 그리고 여러 사람들이 드나들며 생겨난 그곳의 의미가 하루아침에 바뀌어 있었다. 저녁의 쌀쌀한 바람이 평소보다 더 차갑게 느껴졌다.
바로 새로운 가게가 들어온 걸 보니, 사장님 부부는 이미 가게의 끝을 정한 채로, 다음 임차인을 기다리며 영업을 하셨을 거라 생각했다. 끝이 정해져 버린 업을 계속 이어 나가는 일이 사장님 부부에게 얼마나 힘든 일이었을까. 그럼에도 여전히 맛있었던 그 된장찌개는 마지막 정성을 담아 나에게 보내는 인사이지 않았을까.
내가 본 백반집 부부 사장님의 마지막 모습은 그렇게 남았다. 돌이켜 보면 애써 짓는 사모님의 웃음엔 나에 대한 작별 인사가 배어 있었다. 주방에서 분주하던 사장님의 뒷모습, 돌이켜보면 그 바쁜 일들은 그동안 애정과 희망이 담긴 식기들을 보내주는 일들이었을 것이다.
사장님 부부는 그날이 내게 대접한 마지막 점심이었음을 알고 있으셨을 텐데.. 하지만 인사의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하셨다.
그것은 은퇴 후 새로 시작한 인생의 막을 다시 정리해야 하는 안타까움 때문이었을까.
내가 애써 어색한 위로를 해야 할 수고를 갖지 않길 원하셨던 걸까.
나는 사장님 부부에게 전하지 못한 인사를 하려 한다.
내가 잘 알지 못하는 까닭으로 더 이상 그 구수한 찌개를 끓이지 못하게 되었지만.
그 찌개 한 그릇은 나에게 오후 진료시간, 아픈 이들을 치료할 힘을 주었고,
그 공간은 진료가 늦게 끝나 짧아진 점심시간에 언제든 갈 수 있는 휴식처였고,
웃으며 나를 맞아준 사장님 부부는 동창친구보다 자주 보는 소중한 이웃사촌이었다고.
그래서 감사했다고.. 얘기해 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