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주는 선물
_나를 살린 치유의 문장들
이제 세상이 아니라 자신에게로 초점이 맞춰지고 있어요. 자신을 바라보는 작업을 조금씩 하고 계신 것 같아요.
내가 '이런 사람'이라는 것을 발견한 것, 굉장히 중요한 거예요.
여울님에게 진짜 사랑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사람이 옆에 있으시네요.
주말에 멀지 않은 곳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휴직을 한 후 매주, 매일 비슷한 일상을 보내고 있던 내게 그 짧은 여행은 새로운 생기를 선사했다. 가평에 있는 한옥 스테이, 그곳에서 자연과 거리가 가까워지는 시간을 경험했다. 나무와 흙으로 만들어진 집 안에 누워있으면 그저 마음이 평온해졌고, 창 밖에 보이는 나무가 흔들리는 모습을 지켜보며, 새소리를 들으며 품고 있던 고민과 걱정을 내려놓고 한결 가벼워지는 시간이었다. 밤에는 남편과 함께 호수 주변을 거닐고, 낮이 되면 청평호로 달려가 바람 한점 없는 호수의 평화로운 모습에 마음을 빼앗겼다. 아름답고 고요한 시간이었다. 이번주의 상담은 이 여행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되었다.
"한 주는 어떻게 보내셨나요?"
"여행을 다녀왔어요.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가평과 청평 쪽의 한옥 스테이에서 먹고 자고 쉬다가 왔어요."
"여행은 어떠셨어요?"
"청평에서 큰 호수를 보고 왔는데 마음이 평화로워지고 안정됐어요. 그리고 신기했던 것은 여행을 다녀온 날과 다음 날에 생기가 채워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생기를 채우기 위해 계속 여행을 다닐 수 없지만, 저의 성향을 알게 되었어요. 똑같은 일상을 잘 못 견디고 새로운 자극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지금 이 말은 꼭 기억하세요. 내가 '이런 사람'이라는 것을 발견한 것, 굉장히 중요한 거예요."
"맞아요. 그래서 이런 시간을 종종 가져야 하나 생각을 했고, 문화생활이라도 하면서 이런 시간을 가져야 하나 고민이 되었어요. 신기하게도 산책 하나를 해도 똑같은 경로를 왔다 갔다 하는 것을 견디지 못해요. 그래서 산책을 하면서도 매일 조금씩 경로를 바꾸고는 해요."
상담사님은 이야기를 들으며 나의 변화를 발견하셨다. 여행을 통해서 자신을 발견하고 새로운 자극을 통해서 에너지의 전환이 내게 필요했다는 것. 그것을 스스로 알아챘다는 것에 그리고 이 변화가 빠르게 이루어졌다는 것에 대해서 놀라셨다. 상담 초기에는 사회와 교육, 수많은 구조의 불합리함에 초점이 맞추어졌었는데 점점 그 시각이 나에게로 돌아오고 있었다. 또한 어디론가 멀리 떠나서 완전히 새로운 경험을 했을 때 나를 만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나를 만나는 것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도 가능하다는 것을 발견하고 있는 나였다. 점차 자신을 바라보는 작업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과거에는 생존을 위한 삶을 살았기 때문에 나의 행복과 즐거움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느꼈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상담에서도 자주 드러났고, 행복과 즐거움을 느끼는 것은 생존을 위한 방향성에 위협적인 것이었다. 돈이 많이 들고, 나는 빠르게 성장해야 하는데 나태함과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즐거움은 내게 필요치 않은 것이라고 스스로 되뇌고는 했다. 묵묵히 매일매일 해야 하는 일들을 착실히 행하는 아이로 굉장히 오랜 시간 살았기에 나는 스스로 성실하고 열심히 사는 사람으로 정의했던 것이다. 그리고 내가 나를 몰라 주었기 때문에 대학생 시절, 그리고 성인이 된 지금 우울과 불안과 같은 심리적인 고통으로 분출되었던 것이었다.
긍정적인 변화가 나도 모르게 나에게 일어나고 있었다는 사실에 기분이 묘해졌다. 상담이라는 것은 느리지만 내면 깊은 곳에서 큰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이었다는 것을 새롭게 경험하고 있었다. 우리의 이야기는 우리의 삶과 주어진 환경 사이의 관계로 전환되었다. 우리는 종종 그런 생각을 한다.
'왜 하필 이런 일이 나에게만 일어날까?'
'나의 환경이 내 재능을 꽃피울 수 있을 만큼 여유로웠다면 어땠을까?'
'신은 왜 나에게 이렇게 어려움이 많은 가정을 주셨을까?'
나 스스로도 오랜 시간 물었던 질문이었다.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에 그리고 예상치 못하게 일어나는 고난에 대해 질문을 던져보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리고 모든 것에 만족하고 감사하는 사람은 또 얼마나 될까? 마음으로 바라고 있지만 역시나 쉽지 않은 일이었다. 나 또한 어린 시절 부모님께서 이혼하시고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게 될 때, 내가 품고 있던 화가라는 꿈을 접어야 했다. 굳이 묻지도 않았다. 예술을 하려면 많은 비용이 든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저 마음속에서 내려놓았을 뿐이다. 상담사님은 내게 질문하셨다.
"여울님 또한 예술적 재능과 의식적인 능력을 잘 키워줄 수 있는 부모가 아니라 대화의 단절과 이혼할 부모 사이에 태어났어요. 왜 신은 내 삶에 내 꿈을 이룰 수 있는 온전하고 완벽한 환경이 아니라 제약이 많고 끊임없이 극복해야 하는 환경을 주었을까요. 왜 쉬운 길로 가지 못하고 심리적인 어려움을 삶에서 끊임없이 겪게 하셨을까요?"
"저도 참 많이 생각해 보았던 점인 것 같아요. 아무리 돌이켜 봐도 제가 살아가고자 하는 삶이 있다면, 과거의 삶에서 얻을 수 있는 경험이나 교훈이 아니면 불가능했던 것들이 많은 것 같아요. 쉬운 삶이 아니었지만 내가 수 없이 극복해야 했던 고난들이 아니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거예요."
나는 교사로서 일할 때 항상 조손 가정이나 이혼 가정에서 자라나 건강하지 못한 내면을 가진 아이들을 포기할 수 없었다. 퇴근 후에도 잘 말이 통하지도 않았던 할머니와 상담을 하고, 홀로 아이를 키우는 아버님과 연락을 하면서 가족들이 더 아이의 내면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왔다. 그리고 그 사랑 속에서 아이가 교실에 잘 적응하며 안전하게 지내기를 기대했다. 그렇게 1년을 보내면 아이의 회복과 성장을 통해서 아이의 조부모님과 부모님들은 학교에 대한 신뢰를 회복했고, 그렇게 가정도 다시 회복되기 시작했다.
이렇게 어려움 속에 있는 아이들을 품을 수 있었던 것은 내가 경험한 가정도 그들과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더 힘들고 상황이 좋지 않았던 때가 많았으니, 보지 않아도 아이의 상황이 눈에 그려졌다. 만약 내가 평탄하고 화목한 가정에서만 자라왔다면 진심 어린 마음으로 아이들을 보살피고 다독일 수 있었을까. 나는 그렇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의 힘들었던 과거는 딱 그만큼 나를 깊고 넓어지게 했고 그 역경 속에서 몸부림치며 나는 놀랍게 성장하고 있었다.
또한 내가 심리적인 고통을 겪지 않았다면 치유자로서의 삶을 살아갈 때 지금의 마음처럼 그들을 이해할 수 있을까 싶다. 아픈 마음을 가진 이들을 편견 없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나 또한 같은 아픔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우리의 모든 고난과 역경의 이야기는 우리의 자질로 역량으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남편의 존재도 내게 그렇다. 한없이 내가 어떤 모습이더라도 사랑으로 존재해 주는 남편이었다. 마음이 아플 때에도 힘든 일이 내게 있을 때에도 남편은 변하지 않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사랑으로 나를 지켜주었다. 왜 하나님은 내게 이런 남편을 주셨을까. 상담사님은 진짜 사랑이 무엇인지 내게 알려주기 위해 그런 남편을 주시지 않았을까 이야기해셨다. 상담사님의 말씀처럼 나는 남편의 모든 행동 패턴을 통해서 사랑이 무엇인지, 진정한 배려를 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배워왔다. 남편이 가족들을 대하는 자세, 화가 날 수 있는 상황에서도 여유로운 마음으로 모두를 품는 성격, 직장에서 비난을 받는 상사까지 품는 넓은 마음. 그것이 남편이 가진 사랑이었고 나는 어린 시절 부모님께로부터 채워지지 않았던 사랑을 성인이 되어서야 다시 배우고 있었다.
'왜 하필 나였을까'하는 질문은 '역시, 나였어야 했다.'라는 문장으로 바뀌었다. 만약 주어진 환경 속에서 고통받으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가 나의 글을 읽고 있다면 용기를 내라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 가정의 환경 속에서도 긴 시간 작은 빛을 보며 달려 꿈을 이룬 한 사람을 보며 힘을 내라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그리고 다독이지 못한 마음으로 인해 깊은 우울로 바닥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살아보겠다고 애쓰고 있는 삶이 여기에도 있다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이 세상에 살면서 아프지 않은 존재는 없다. 그러니 우리 다시 한번 무릎을 일으켜 걸어보자. 우리가 살아야 할, 그리고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야 할 이유는 셀 수 없이 많으니까. 우리가 세상에 존재해야 할 이유가 있음을 결국은 발견하게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