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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울샘 May 30. 2023

9회기 상담: 스스로 얼려버린 감정들

내면의 차가움을 마주한 날


_나를 살린 치유의 문장들

내면의 차가움에 대한 근본적인 것들을 깨지 못하면 내가 나를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어요.

이 이야기는 맞다, 틀리다로 판단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닌 것 같아요.

여울님은 그 차가움을 필요했기 때문에 쓰셨을 거예요. 지금은 차가움이라고 표현하지만 그 안에 여울님만의 감정 단어들, 그리고 마음이 머무는 지점이 있을 거예요.

자기 자신에 대한 알아차림을 많이 한 사람은 매일매일이 자신의 삶을 사는 것 같아요.




주말 동안 긴 비가 지나갔다. 오랜 시간 비가 내리지 않아 가물었던 땅에도 비는 반가운 소식이 되었다. 빗소리를 들으며 편안한 주말을 보내다가도 오랜만에 남편과 함께하는 연휴에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집에서 비를 바라봐야 하는 상황이 조금은 답답했었나 보다. 설상가상으로 남편은 허리가 다쳐서 제대로 움직이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남편도 보살펴주어야 하니 혼자 외출하는 것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오랜만에 맞이하는 연휴라 아쉽기도 하고 속상한 마음에 투덜거리기도 했었다. 여전히 어리고 미성숙한 스스로의 태도에 대해 실망을 하기도 했다. 오늘의 상담은 이 이야기부터 시작되었다.


"한 주 잘 보내셨나요?"


"평소랑 비슷한 일상을 보냈었어요. 조금 변화가 있었던 것은 남편이 허리를 다쳐서 휴가를 내서 저희가 하루 종일 함께 붙어 있었어요. 그러면서 조금씩 작은 갈등이 있었던 것 같아요. 남편은 잘못한 것이 없는데.. 제가 긴 시간 집에 있다 보니 답답했는지 종종 투덜거리거나 예민해지고는 했어요."


"예민할 때는 어떤 행동을 보이시나요?"


"예민할 때는 제가 표정이 달라지기도 하고, 말도 투덜대면서 하는 것 같아요. 이러면서도 성숙한 행동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마음을 다잡고 남편을 잘 챙겨줘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저는 여울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마 여울님 스스로가 날카로워지거나 차가워지는 지점을 알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과 거리를 두며 지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여울님의 관계적인 면에 영향을 많이 끼쳤을 것이고 아마 알고 있었을 거예요."


상담사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깜짝 놀랐다. 사실 이 지점은 내가 자주 느끼고 알고 있었던 지점이기 때문이다. 나의 성격 중에서는 상당히 예민한 면이 있다. 어떤 과정을 통해 형성된 성격인지 알 수 없지만 나는 내 안에 굉장히 차가운 면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누군가 나의 영역을 침범한다고 느낄 때나,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나의 마음은 종종 차갑게 식고는 한다. 그리고 여러 감정을 느낄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주로 가족들에게 많이 보인 행동이었고 남편은 성인이 돼서 만난 존재이기 때문에 이러한 면을 보이지 않으려고 스스로도 많이 노력했던 것 같다. 더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 성숙한 행동을 보이고 싶었지만 사실 쉽지는 않았다. 그리고 가족이 아닌 오랜 친구나 지인들에게도 많이 보이지 않는 면이었고, 그러지 않을 만큼만 항상 시간을 보냈다. 상담사님은 그것이 나의 행동 양식 중 하나라고 짚어주셨다. 나의 본래의 모습을 보여줄 수 없었기 때문에 아마 더 외로움을 느꼈을 거라고..


"그렇게 나를 보여주지 않으려고 노력했는데, 무엇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했어야 하는 걸까요?"


"불편한 것들이요. 어렸을 때부터 가정에서 겪어야 했던 모든 것들이 편하게 다가온 것이 없었어요. 엄마가 삶에 여유가 없으니 툭툭 뱉었던 말들이나, 오빠의 방황들... 여러모로 이해가 가지 않았던 가정 상황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여러모로 나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낸 감정이었을까 싶기도 한 것 같아요."


"여울님이 관계의 패턴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때, 어머니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만 아버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잘하지 않는 것 같아요. 어머니에 대한 불편감보다 아버지에 대한 불편감은 잘 표현되지 않는 것 같아요."


"아빠에 대한 기억은 사실 많지가 않은 것 같아요. 10살 이전의 기억들인데.. 자라오면서는 물론 부모님의 이혼으로 힘들었던 시기가 많았기 때문에 원망을 하기도 했었지만, 성인이 돼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다양한 가정의 상황들을 보면서 아버지가 함께 하면서도 더 힘든 가정들을 보았어요. 우리를 정말 힘들게 할 거면 빨리 아빠가 떠난 것이 나은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우리의 삶에 이미 없는 사람을 원망하는 것이 의미가 없겠다 생각을 했어요. 또 안타깝게도 종갓집의 종손이었던 아버지의 삶의 역사를 보면 그렇게 무책임하게 자랄 수도 있었겠다 싶기도 해요. 할머니가 너무 귀하게 키우시면서 삶을 개척해갈 힘을 기르지 못하셨던 것 같기도 해요. 엄마를 생각하면, 그 힘든 상황을 홀로 극복해 오시고 그 상황 속에서도 어려운 생명에 대한 연민을 놓지 않으시는 것도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여울님의 부모님의 이야기를 들려주시는데.. 여울님이 내적으로는 정말 차가운 사람일 수도 있겠다는 것들이 느껴졌어요. 그 차가움에 대한 근본적인 것들을 깨지 못하면 내가 나를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어요. 여울님의 내면에 깊숙한 곳에 있는 이야기를 보이지 않지만, 습관처럼 차가움이 내재되어 있어요. 지금 여울님의 부모님은 부모로서 이름만 남긴 이야기, 역할만 남은 이야기였어요. 이 차가움 안에 있는 본질적인 것들을 꺼내 보지 못하면, 날것의 나를 보지 못하면 계속 반복적으로 헤매실 수도 있어요. 여울님은 그 차가움을 필요했기 때문에 쓰셨을 거예요. 지금은 차가움이라고 표현하지만 그 안에 여울님만의 감정 단어들, 그리고 마음이 머무는 지점이 있을 거예요. 그리고 이 차가움이 깨질 때, 나의 에고(자기 자신에 대한 의식이나 관념)와 따뜻함이 만나면 다른 것들이 잘 보일 거예요. 여울님은 에고를 너무 잘 쓰셔서 그것이 나를 지탱했지만 나를 망가뜨리기도 했을 거예요. 그리고 에고가 발달했기 때문에 에고를 쓰지 않으면 많이 무료하다고 느꼈을 거예요."


상담사님께서 담담히 해주시는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내 내면에서 내가 명확히 알지도 못하는 지점들을 나의 이야기들 속에서 발견을 하시고 계셨다. 상담사님 말처럼 내 마음은 종종 차갑게 얼어있었다. 왜 내가 감정을 얼리고 느끼지 않는 방식을 사용해 왔는지 알 수 없었지만, 나는 무엇을 느끼기보다 생각하는 것에 더 익숙했다. 어린 시절의 삶이 너무 고통스러워서였을까? 스스로도 많이 예민한 사람이라고 느끼기도 했고, 감정도 섬세했고 다른 사람의 아픔이나 고통도 내 아픔처럼 느끼곤 했다.


하지만 어린 시절 우리 가정에서 그러한 감정을 모두 다 느끼며 살기에는 너무 아팠을지도 모른다. 아버지가 떠나고 큰 빚을 홀로 갚으시며 두 아이를 키우셔야 했던 엄마를 보며 그 아픔과 고통을 내가 느끼기에는 너무 힘들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의식적으로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고 책을 읽고 미래를 계획하는 방식을 선택했을 수 있다. 이 차가움이 필요해서 썼을 거라는 상담사님의 말씀처럼. 나는 감정을 느끼기보다는 얼리는 방식으로, 더 이상 감정을 느끼지 않고 차갑게 식히는 방법으로 삶을 살아왔을지 모른다. 그것이  모든 감정을 느끼며 살아가는 것보다는 더 안전한 방법이라고 생각했을 테니까.. 그리고 그 모든 감정을 느낀다고 해서 함께 교류하고 나눌 수 있는 사람도 없었으니까. 그저 홀로 고민하고 생각하는 것에 더 익숙했던 것 같고 그것이 나의 에고를 끊임없이 발달시켰던 것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사람은 결국 자신을 지키고 살아가기 위한 방법을 선택한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내가 선택한 방식은 감정을 억누르고 차갑게 얼려가며 느끼지 않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그 삶의 방식은 나를 다시 가두고 있었다. 다채로운 감정을 느끼고 교류하며 살 수 있는 삶 속에서도 나는 자주 그 감정을 느끼지 않기를 선택한다면 삶의 색깔은 더욱 단조로운 회색 빛이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감정을 친구들과 지인들과 충분히 나누지 못하기 때문에 아마 나의 외로움은 더 깊어만 갔을 것이다. 아직은 나의 날 것의 모습이 무엇인지, 그 얼려버린 감정 속에는 무엇이 들어있는지 알 수 없지만, 상담을 통해 알아차림을 통해 언젠가는 나의 온전한 모습을 만나기를 기대해 본다. 그리고 상담사님 말씀처럼 이 차가움이 깨지고 나의 에고와 따뜻한 내면이 만날 때 나는 세상을 더 환대하는 존재가 되어있지 않을까. 작은 꿈을 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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