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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회기 상담 이 세상에 태어나길 정말 잘한 것 같다

세계관은 이렇게 바뀌어 가는 것일까.


나를 살린 치유의 문장들

세계관의 변화는 의식을 통해서 가능한 것이 아니라 나의 애써온 삶의 이유를 발견하거나 만나지는 순간 관점은 달라지게 됩니다.

내 삶에서 내게 알려주는 메시지를 제대로 보지 못하면 우회를 하게 됩니다. 직면해야 하는 시간이 필요해요.

우리에게 주신 고통이 삶을 살아내는 영양제 같은 역할을 했을 수 있어요. 그것을 바라볼 수 있는 힘이 있을까요.

하나님의 주신 삶의 소명을 여울님은 이미 실천하고 계세요. 내가 눈앞에 있는 것을 보려고 하지 않으면 절대 보이지 않아요. 




어느새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스치며 겨울이 왔음을 알리고 있다. 두툼한 패딩을 입고 맨 손이 드러나지 않도록 패딩 소매 속에 숨기고 발걸음을 옮긴다. 상담소에 가기 전 잠시 온전한 행복을 누리기 위해 집 앞의 공원을 향한다. 추운 겨울이 왔지만 따스한 햇빛도 여전히 함께한다. 햇빛이 부서지는 공원을 걸으며 살아있음을 생생히 느껴본다. 내가 살아있음을 생생히 느끼게 도와주는 자연, 자연 속에 있을 때 나는 가장 나다워짐을 발견한다. 상담 시간이 다가워지니 긴 시간 즐기지 못하고 상담 센터로 향해본다. 


언제나 밝은 미소로 나를 맞아주는 선생님. 청소를 하시다 말고 나를 발견하셨는지 환한 미소를 보여주신다. 나도 학교에 돌아가면 아이들에게 저렇게 밝은 미소를 매일 보여주고 싶다. 미소는 사람의 마음을 활짝 열어주는 힘이 있는 것 같다. 아이들을 위해 크리스마스 리스 수업을 준비하시고 계셨다. 미리 리스 작업을 조금씩 해두신 것을 보며 아이들에 대한 애정이 느껴졌다. 오늘 저 수업을 경험하는 아이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조금 부러워지면서 나도 이곳에서 상담을 받고 있음을 다시 떠올리며 감사하게 된다. 


상담 선생님과 마주 앉아 한 주간의 삶을 나누어본다. 친구 부부가 우리 집에 와서 따뜻한 온기를 가득 선물해 주었던 이야기. 남편과 투닥거리면서도 사랑을 나누며 살아가고 있는 이야기들로 나눔을 시작한다. 이제 상담을 2주에 한 번 받고 있어서 선생님과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가득 가져오게 된다.


오늘은 요즘의 고민이었던 세계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내가 가장 부러워하는 사람들은 화목한 가정에서 자라난 사람들이다. 온전히 화목하기만 한 가정은 물론 많이 찾기는 어렵겠지만, 부모의 안정적인 사랑 속에서 자라난 사람들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밝고 긍정적인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들은 고난을 잘 이겨낼 수 있는 회복 탄력성을 내면에 지니고 있다. 요즘 내게 깊은 인상을 주었던 친구가 있는데 바로 유튜버 욘니이다. 욘니는 '욘니와 치애'라는 유튜브를 채널을 운영하고 있는데 본명은 홍원기이다. 만 4세 때 소아조로증(프로제리아 신드롬)이라는 병을 진단받았다. 욘니는 키도 작고 왜소한 몸을 가지고 있으며 머리카락을 거의 갖고 있지 않다. 보통 사람보다 6배나 빠른 시간으로 시간이 흐르고 있어서 몸은 계속 굳어가고 체력도 매우 약하다. 소아조로증을 가지고 있는 친구들의 평균 수명은 15세이다.


내가 욘니의 삶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이 있다. 그것은 희귀병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욘니가 삶을 긍정한다는 것이다. 욘니는 병을 숨기거나 부정하지 않고 당당하게 유튜브를 통해 자신의 질병을 밝힌다. 외모 때문에 놀림을 받았었고 우울한 시기를 보낼 때도 있었다. 하지만 욘니는 스스로의 삶이 아주 평범하고 일상적이며, 작은 것에 기뻐하고 열심히 산 하루에 뿌듯해한다고 이야기한다. 자신의 뒤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붙어있지만 그것을 잊고 오늘 한 걸음 한 걸음을 나아가는 것이다. 그의 책 첫 장에는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나길 정말 잘한 것 같다.'라고 쓰여있다. 이 문장은 내게 너무도 충격적이었다. 


그래서 남편과도 자기 전 욘니를 주제로 대화를 나누었다.

"오빠는 세상에 태어난 것을 잘했다고 생각해?"

"응 그럼. 세상에 태어나기를 잘했지.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으면 경험해보지 못했을 것들을 세상에 태어나서 모두 경험하고 있잖아. 슬픔도, 기쁨도, 아픔도 고통도 행복도. 태어나지 않았으면 우리가 알지 못했을 감정들이잖아."

"나는 태어나서 오빠를 만나서 행복을 느끼기 시작했던 것 같은데, 그것 말고는 세상에 태어나기를 잘했다고 생각해 본 적이 많이 없었던 것 같아. 세상에 태어나서는 견뎌야 하는 것이 너무 많다고 느꼈거든."


상담 선생님께도 내 마음을 이야기했다.

"선생님 저는 화목하고 온전한 가정 속에서 태어난 이들이 참 부러워요. 욘니처럼 어려운 상황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삶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이들 중에는 든든한 부모님이 아낌없는 사랑을 주었던 경우가 많더라고요. 저도 세상에 태어난 것을 정말 잘한 것 같다고 이야기해보고 싶어요. 하지만 그러기에는 저는 극복하면서 살아와야 했던 것들이 너무 많아서 삶이 힘들게 느껴져요. 삶을 긍정하는 세계관을 갖고 싶어요."


"세계관의 변화는 의식을 통해서 가능한 것이 아니라 나의 애써온 삶의 이유를 발견하거나 만나지는 순간 관점은 달라지게 됩니다. 의식적으로 노력한다고 해서 쉽게 세상을 긍정하게 되지는 않아요. 어느 순간 부단히 노력해 온 나의 삶의 이유를 발견하는 순간 그 관점이 달라지게 될 수 있어요."


"저는 이것도 노력하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매일 감사일기를 쓰거나 긍정적으로 생각하려는 노력이 제 세계관을 바꿀 것이라고 믿었던 것 같아요. 물론 도움은 되긴 했지만 세상은 아프고 힘든 곳이라는 뿌리 깊은 제 세계관은 잘 바뀌지 않네요"


"내 삶에서 내게 알려주는 메시지를 제대로 보지 못하면 우회를 하게 됩니다. 직면해야 하는 시간이 필요해요. 우리에게 주신 고통이 삶을 살아내는 영양제 같은 역할을 했을 수 있어요. 그것을 바라볼 수 있는 힘이 있다면 조금씩 우리의 생각은 바뀔 수 있지만, 인정하지 않는다면 삶은 고통과 불만만 가득하겠지요."


선생님의 말씀을 곰곰이 생각해 본다. 삶의 고난과 고통은 결국 우리의 삶의 동력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아직은 명확히 알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의 고난을 허락하신 이유는 필연적으로 존재할지 모른다. 내게는 너무 힘들었던 어린 시절. 깨어진 가정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내 꿈을 향해 정진해 왔던 시간. 그 시간이 아니었으면 나는 지금처럼 타인의 아픔과 고통에 깊이 공감할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교실에 깨어진 가정 속에서 자라나고 있는 아이들을 위해 헌신할 마음조차 가지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통찰력 있고 지혜로운 교사, 그리고 내면의 아픔의 회복을 돕는 치유자로 살아가고 싶은 소명의 길에 나의 삶의 역사는 어쩌면 필연적인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깊은 우울이라는 심리적으로 어려운 시간을 올해 겪어 오면서 내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많은 고민을 하기도 했다. 내가 건강한 가정에서 태어났다면 조금 더 단단하고 긍정적인 내면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어리석은 생각처럼 보일 수 있지만 내게는 고민할 수밖에 없는 지점이었다. 하지만 긴 어둠 같았던 올해의 시간을 통해서 나는 기존에 가지고 있었던 삶에 대한 성취 지향적인 생각을 많이 내려놓게 되었으며, 내 삶에서 하나님께서 이루어가시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내 삶이 어떤 방향으로 향하게 될 것인지에 대해서도 깊이 고민하는 시간이 되었다.


"여울님은 어떤 삶을 살고 싶으세요?"


"선생님 이 말이 좀 웃기게 들릴 수도 있는데, 저는 진정한 삶을 살고 싶어요. 세상에서 이야기하는 성공과 물질만 쫓는 삶을 살아갔을 때 그 마지막에 제가 정말 삶을 잘 살았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어요. 이 삶의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지 알고 경험하는 삶을 살고 싶어요.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않아도 하나님 안에서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더 어려운 이들을 돕는 친구의 가정을 보면서 들었던 생각이기도 해요. 그리고 세상에서 인정을 받지는 못해도 자신의 삶을 책임 있게 가꾸고 세상을 아름답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 사람들을 볼 때 저는 감명을 받아요."


"여울님이 생각하는 소명은 무엇일까요?"


"음... 제가 읽고 있는 책에서 소명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라고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세상을 바라볼 때 나는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면 제 소명을 발견하기가 쉬웠던 것 같아요. 저는 대학교 시절부터 청소년 미혼모를 돕는 단체를 후원했어요. 어느새 11년이 지났더라고요. 그리고 교사가 되어서는 마음이 아픈 아이들이나 학부모님들께 제 시선이 향했죠. 그 아이들을 돕고 싶다는 생각에 회복적 생활교육, 비폭력 대화, 상담 등을 공부해 왔던 것 같아요. 그리고 여러 모임을 운영하며 운영비를 독거노인분들과 보호 종료 청년들에게 후원하기도 했죠. 제 소명은 제가 만나는 이들의 내면의 회복을 돕는 것 그리고 기댈 곳 없는 이들에게 실제적인 도움을 주는 것인 것 같아요."


"내 앞에 있는 것을 보지 않는 한 멀리 있는 광야에 있는 것까지 닿지 못해요. 난쟁이가 만들고 있는 탑을 하나의 돌로만 바라보면 그 탑을 바라보지 못해요. 이제 학교로 돌아가시면 다르게 아이들이 보이실 거예요. 더 넓고 통합적으로 보면서 깨닫게 되실 거예요. 고통을 겪고 난 후에 보이는 세상은 다르죠. 내가 그 고통 속에서 내 삶을 끌어갈 힘을 주시기 위해서 Death&Newborn이 존재했구나. 내가 이 삶에 태어나서 나라는 존재가 우뚝 설 수 있는 힘을 주시기 위해, 내가 바라보지 않으니까 하나님께서 고통을 주셨구나라는 것이 보이실 거예요. 그것을 바라보실 수 있는 힘을 가지신 존재가 아직도 내가 미흡하고 무엇인가 채워 넣어야 할 존재로 바라보고 계시니까요. 이미 너무 많은 것을 하고 계세요."


내 마음에 울림을 주는 깊은 통찰이었다. 상담 선생님은 언제나 내가 바라보지 못하고 있는 것들을 바라보도록 도와주셨다. 나는 이미 나의 소명을 이루며 살아가고 있는 존재였다. 내가 어디에 시선이 가는지도 명확히 알고 있었고 그 소명을 세상 가운데 이미 아름답게 이루어가며 살아가고 있었다. 난쟁이가 만들고 있는 탑을 바라보지 못한 채 나는 아직 돌멩이만 굴리고 있다고 생각했던 어리석음. 나는 이미 작은 탑을 쌓아가고 있었다. 무엇인가 더 배우고 더 실천해야만 나의 존재가 의미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뿌리 깊은 생각이 잘 바뀌지는 않는다. 하지만 나에게 이미 온전하고 충분한 존재라고 이야기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나 스스로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욘니가 했던 말이 다시 떠오른다.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나길 정말 잘한 것 같다."


왠지 오늘은 이 말을 나의 마음으로 가져올 수 있을 것 같다. 상담사님을 만나서 내 삶의 고통의 의미를 깨달아가고 사랑하는 남편을 만나 행복을 느껴가고, 세상 속에 나의 소명을 이루며 살아가고 있으니. 어린 시절 깨어진 가정이 이제 회복되어 서로 사랑과 지지를 주는 존재가 되어가고 있으니. 이 모든 것이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선물이 아닐까.


"아,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나길 정말 잘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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