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과 함께 온기를 나누는 시간
나를 살린 치유의 문장들
여울님께서 의미 있는 실천을 오래 해오셨네요. 그 소극장의 온기 속의 한 부분을 여울님께서 담당하셨을 거예요. 여울님의 몫이 거기에 있어요.
여울님이 이제 깊어져 가시는 것이 느껴져요. 오늘은 제가 더 따뜻해지는 시간이네요.
상담에 가는 날은 나에게 참 행복한 날이다. 상담 시간은 스스로에게 줄 수 있는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선물로 느껴진다. 부단히 애써오며 살아온 내게 더 이상 그렇게 살지 않아도 된다고, 이제는 삶이 주는 선물들을 누리며 살아보자고 스스로에게 이야기를 건네는 시간이기도 하다.
파란 하늘이 눈부신 겨울의 시간. 하지만 날씨는 그리 춥지 않다. 따뜻한 겨울 날씨가 지속되고 있어서 이 지구가 건강한 것인지, 이래도 되는 것인지 걱정이 되는 요즘이다. 지구가 따뜻해져가는 것이 정말 괜찮은걸까. 편안하게 입고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상담소로 향했다. 오늘은 선생님께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 휴직 후 단순하게 흘러가던 일상이었지만 이번 2주간은 내 삶에 작지만 따뜻한 일들이 존재했다. 그것을 선생님과 나누고 싶었다. 상담소에 들어가니 화려한 색감의 크리스마스 장식이 눈에 띈다. 커다란 트리가 공간의 온기를 더해준다.
이제 많이 회복되어 1주가 아닌 2주에 한 번씩 상담을 받고 있다. 2주만에 만나는 선생님은 너무 보고 싶었다며 나를 환대해 주신다. 누군가에게 환영받는다는 것은 참 따뜻한 일이다. 자리에 앉아 서로 환하게 웃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선생님의 근황도 듣고 나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 주간 여울님, 어떻게 지내셨나요?"
"이 주간 많은 일들이 있었어요. 그래도 선생님에게 나누고 싶었던 것 위주로 이야기를 할게요. 먼저 제가 복직해야 할 학교에 다녀왔어요. 사실 복직을 해야 한다는 것 때문에 복직 일자가 다가올수록 저는 스트레스를 받거나 제가 불안하고 긴장할 줄 알았어요. 하지만 의사 소견서를 들고 학교로 가는 날까지 저는 그리 불안하지 않더라고요. 마음이 담담하고, 내가 다시 가야 하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행이네요. 여울님과 함께 학교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다루면서 학교가 여울님에게 큰 의미를 주는 공간이라는 것을 우리가 발견했었죠."
"맞아요. 그래서 그런지 더 이상 저에게 복직이라는 것이 힘들게 다가오지 않더라고요. 학교에 오랜만에 가는 것이라 당일에는 조금 긴장이 되었지만 교무실에서 소견서 제출하는 것도 그리 힘들지 않았어요. 그리고 기억에 남는 순간 장면이 있어요. 저와 가까이 지냈던 그리고 많이 존경했었던 선배 선생님을 만났어요. 긴장된 마음으로 교실 문을 두드렸는데 교실에서 저를 보시고 환한 얼굴로 뛰어오시면서 환영해 주시는 거예요. 그 모습을 보면서 잠깐 울컥했던 것 같아요. 선생님과 긴 시간을 대화했는데, 제가 시작했었던 회복적 생활교육 모임을 학교에서 저 없이도 지속해 주셨더라고요. 그리고 저희 반 금쪽이었던 아이가 그 선생님 반으로 가게 되었는데 1년 내내 여울샘을 찾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찡해지는 순간이 있었어요."
나는 휴직 전 학교에서 선생님들과 함께 회복적 생활교육 연구회를 만들어 운영했었다. 학교에서 회복적 생활교육 모임이 이어진 지는 어느새 3년이 되었다. 둥글게 서클로 둘러앉은 우리는 교실 속 이야기, 나의 일상 그리고 내면의 이야기를 깊이 있게 나누었다. 그리고 평화로운 교실을 위한 공동체 만들기, 비폭력 대화, 갈등해결 대화를 꾸준히 공부하고 실천해 나갔었다. 단절되기 쉬운 학교에서 이렇게 공동체를 만들어나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큰 의미를 주었다. 선생님들께서 배움과 회복을 경험하시는 모습이 참 감사했다. 그리고 1년 내내 나를 힘들게도 했지만 성장하고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감동을 주었던 아이가 나를 기억하고 찾았다는 것도 감동이었다. 내 삶이 충분히 가치 있었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꽤 잘 살아오고 있었구나. 학교에서 나는 누군가에게 참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존재였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리고 한생명 복지재단의 연말 콘서트에 다녀온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생명 복지재단은 내가 10년이 넘게 지속적으로 후원을 해온 단체이다. 미혼모분들의 자립을 돕는 단체로 시작해서 이제는 독거노인분들과 이주민 분들도 돕고 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미혼모분들이 검정고시를 통해 직업을 얻어 자립을 하였고 그분들이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존재로 성장해가고 있는 것이었다. 자립에 성공한 후 해외에 나가 봉사를 하기도 하고 또 다른 미혼모들을 도우며 선순환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남편과 함께 한 생명 복지재단의 연말 콘서트에 초대받아 다녀왔어요. 아주 작은 소극장이었지만 얼마나 온기가 가득했는지 몰라요. 처음 보는 어린이가 저에게 누구냐고 물어보는데 그 순수한 눈빛과 질문에 마음이 뭉클해졌던 것 같아요. 많은 사람들의 작은 후원들이 모여 아이들이 참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엄마들도 아이들도 참 밝고 건강한 웃음으로 보이고 있었죠. 교회도 같이 운영하며 예배를 드린다고 알고 있는데 건강하고 따뜻한 공동체처럼 보였어요. 경계 없는 눈빛과 순수한 웃음이 마음에 남아 있어요. 저보다도 마음이 건강해 보였죠."
"여울님께서 참 의미 있는 일을 오래 실천하셨네요. 아마 그 소극장의 온기의 한 부분을 여울님이 담당하셨을 거예요. 여울님의 몫이 거기에 있어요."
"아주 작은 부분이겠지만, 그래도 뿌듯해요. 그곳에서 김태우님과 헤리티지 팀의 공연을 감상했는데 참 아름다운 음악들이었어요. 하지만 그 공연들보다도 제 눈으로 아이들과 엄마들, 이주민 분들이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아가고 계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것이 가장 의미가 있었던 것 같아요. 남편과 저는 만난지 1주년이 되었던 날이나 결혼식을 했던 날과 같이 의미 있는 순간을 맞이 할 때 후원을 하려고 노력했어요. 이 행복한 시간이 우리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도 온기로 전해졌으면 했어요. 그저 우리만 잘 먹고 잘 사는 존재가 되기를 원치 않았던 것 같아요."
"여울님, 참 멋지신 분이네요. 여울님이 처음에 여기 왔을 때는 여울님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서 많은 업적들을 쌓으려고 노력하셨던 모습이 있었어요. 하지만 그런 외적인 성장이 아니라 이제 내면으로 깊어져 가시는 것이 느껴져요. 오늘은 제가 더 따뜻해지는 시간이네요."
상담사님의 말씀은 사실이었다. 나는 언제나 더 나은 존재가 되고자, 더 많은 것을 이루고자 노력했다. 계속 외부로 시선을 돌렸다. 더 큰 목표를 이루어내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에 감사하고 만족하려고 노력한다. 주님께서 내게 허락하신 것을 잘 가꾸며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가정 속에서, 일상 속에서 더 많은 행복과 의미를 느끼는 삶을 살고자 하고 감사하게도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내게 주어진 일상의 의미를 충분히 느끼고 그 가치를 이해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요즘은 의미치료 학회에서 가족 상담을 공부하고 있다. 그 시간을 통해 내가 경험했던 가정 속 상처를 돌아보고 회복해 가는 시간을 가지고 있다. 더 이상 나의 과거와 상처를 미워하지 않게 되었다. 귀한 상처라고 이름 지어주고 싶을 만큼 나는 과거의 수많은 고난들을 통해 깊어졌고 지혜로워졌고 따뜻해졌다. 그 아픔들이 있기에 내 주변 사람들과 내가 만나는 아이들, 부모님들을 더 따뜻하게 품을 수 있었고 그들의 상처를 진심으로 공감하며 도울 수 있었다.
긴 상담을 진행하며 회복되지 않을 것만 같았던 나의 내면은 회복되고 있었고, 변화되지 않을 것만 같았던 나의 존재도 변화되고 있었다. 물론 상담 뿐 아니라 스스로 많은 노력을 하며 회복과 의미 있는 변화를 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다시 학교로 돌아가기 전까지 내게 두 달여의 시간이 주어졌다. 그 시간 동안 자연스럽고 평온하게 삶이 나에게 들려줄 이야기들에 귀 기울여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