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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 소관

그냥 제가 할게요

by 김수달


짜장맛 감튀

일하다 보면 소관이 애매한 과제가 꼭 나온다. 해당 업무를 어느 부서가 담당할 것인지 소관을 정해야 하는데 부먹 vs 찍먹처럼 결정이 쉽지 않다. '환경자원을 활용한 문화관광 프로그램 발굴', '지역 문화관광 자원과 연계한 귀농귀촌 사업', '지역 문화자원 디지털 전환사업' 식이다. '환경자원을 활용한 문화관광 프로그램'은 환경국 소관일까 문화국 소관일까. '지역 문화관광 자원과 연계한 귀농귀촌 사업'은 문화국 소관일까 농업국 소관일까. 가상의 예지만 실제 많은 분야가 융합되는 추세라 소관이 모호한 업무(특히 신규업무)가 생기기 마련이다. 기능을 중심으로 분류된 과거의 업무분장이 정책환경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겠다.


조정: 어떤 기준이나 실정에 맞게 정돈함

거의 모든 기관에는 총괄부서가 있다. 총괄부서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가 조직 내외부에서 소관이 애매한 과제가 발생할 때 소관부서를 정하는 조정업무다. 만약 총괄부서에서 조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면 담당부서 간에 소관 여부를 결정지어야 하는데 날카롭게 대립하는 경우가 많다.


소는 누가 키우나

서로 맡으려고 하거나, 서로 맡지 않으려고 하거나 둘 중 하나인데 후자가 많다. 단순한 일 쳐내기로 봐선 안된다. 업무를 담당한다는 건 그때부터 업무와 관련된 대응을 해야 된다는 뜻인데 그에 맞는 권한과 예산, 인력이 있는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과제명과는 달리 실질적인 내용이 우리 부서와 관련이 없는 경우에는 과제 추진 동력을 잃거나 일정이 지연되는 등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겉으로 보면 일 쳐내기처럼 보이지만 실제 하고 싶어도 할 수 없기에 소관을 돌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누가 해도 크게 문제없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는 문제가 더 어렵다. 현업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머지 서로 본인 업무가 아님을 다퉈야 하는 상황이 빈번히 발생한다. 지금부터 업무의 히스토리, 관련 법령, 직제, 조직상황, 지시 이력, 논리 등 할 수 있는 모든 방안들이 동원돼서 업무 소관에 대한 공격과 방어전이 시작된다. 대충 '이 업무 그쪽 소관 같은데요'식으로 들이댔다간 여지없이 업무를 떠 앉게 된다.

그냥 제가 할게요

업무 소관의 문제는 크게는 부처단위, 작게는 한 팀 내에서도 생긴다. 일을 하다 보면 상관 입장에서 맡기기 편한 직원들이 있다. 수달은 그런 직원이었다. 일을 잘한다기보다 일을 맡는데 대해 큰 거부감이 없는 성격인 것. '하다 보면 되겠지'라는 근자감으로 업무를 대책 없이 떠맡는 경우도 많았다.


당연한 얘기지만 그럼 이제 담당은 김수달이 된다. 해당 업무와 관련해서 제출해야 할 자료, 작성해야 할 검토보고서 등 줄줄이 엮이는 업무들이 김수달이 작성하고, 보고해야 된다. 심지어 누가 전화를 받았느냐로 담당이 암묵적으로 정해지는 경우도 있다. 상관 입장에서는 개개인에게 업무를 지시하는 게 아니라 해당 부서에 업무를 지시하려는 목적으로 전화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 전화를 받은 사람은 해당 업무의 담당처럼 굳혀지는 경우가 있다.


물론 '그건 제가 해야 할 일이죠'라고 자신의 업무 스펙트럼을 넓히고 책임감 있게 맞이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격무에 시달리고 지치다 보면 대개는 누군가가 해주길 바라면서 숨죽이고 있는 경우도 많다는 것.


라떼는 커피죠

이런 식의 일들을 하나둘 맡다 보면 '와 이건 진짜 안 맡는 게 나았겠다'라는 것도 많았다. 다들 눈치만 볼 때 돌이켜보면 '라떼는 말이야' 에피소드용 경험치 하나를 더 쌓았다고 스스로를 다독여보는 김수달이다. (여긴 실내인데 비가 오는 것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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