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을 혁신하자
창작이란 기적과도 같은 일
뜬금없지만 작곡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우리가 사랑하는 수많은 멜로디엔 이를 받쳐주는 화음 진행이 있다. 더 이상 새로운 진행이 없다 할 만큼 화음 진행이 많이 존재하고, 특히 '머니 코드'라는 대중적인 코드 진행은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의 개수를 지니지만 그 위에 창작되는 멜로디는 무한에 가깝다. 귀를 즐겁게 해주는 신곡들이 하루에도 수십 곡씩 쏟아진다. 그만큼 창작은 기적 같은 일이다. 정책도 마찬가지다. 창의적 정책 하나로 우리 삶이 변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혁신이 아닐까? 작은 제도 개선 하나로 불편함을 해소할 수 있다면 그야말로 기적 같은 일이다.
새로움 = 두려움
매년 하반기가 되면 다음연도에 할 사업을 구상해야 한다. 모든 분야가 그런 건 아니지만 '신규시책'이란 이름으로 새로운 정책이나 사업을 구상하도록 많은 부서 담당자가 압박받는다. 새로운 사업을 구상한다는 건 크게 두 가지 부담이 있다.
첫째,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원초적 두려움이다. 면밀한 사전검토를 했더라도 실제로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는 알 수 없다. 둘째, 업무 가중이다. 제도나 사업이 한번 만들어지면 좀처럼 없애기 힘들기 때문에 새로운 사업을 구상한다는 건 곧 업무 증가로 받아들여진다. 물론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정 기간이 지나면 검토를 거쳐 정책을 폐지하는 일몰제라는 제도가 마련되어 있기도 하다.
결국 '새로운 일'은 두려움의 대상이 되기 십상이다. 담당자뿐만 아니라 관리자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일이 가져올 장단점을 잘 판단해서 결정을 내리게 될 텐데, 조직 특성상 단점이 더 부각되기 마련이다. 장점이라면 성과에 따른 인센티브가 될 것이며 단점이라면 예상치 못한 이슈 발생에 따른 대응과 저조한 성과에 따른 책임이 될 것이다.
용두사미 사업
그러다 보니 최초 기획단계에서 획기적이던 사업이 검토를 거칠수록 기존 사업과 유사해질 때가 많다. 기존 사업을 개선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걸 하든, 기존의 것을 개선하든 새로움을 외치지만 현재를 뒤엎어야 할 계기가 명확하지 않은 한 '점진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 결국 기존 사업의 '개선'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변화', '혁신'은 정말 쉬운 단어가 아닌 것이다.
기획은 내가 할게 집행은 누가 할래?
새로운 기획이 검토를 거쳐 결정이 됐다손 치더라도 문제는 여전히 존재한다. 바로 집행이다.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는 것도 어렵지만 그 사업을 의도대로 집행할 수 있도록 설계하는 건 더 어렵다. 그래서 현명한 담당자는 지금만 생각하지 않고 그 이후까지 고려해 정책이나 사업을 기획한다. 집행을 염두하지 않은 기획은 이상(ideal)에 불과하고, 기획 없는 집행은 전형적인 방식(sterotype)을 벗어나기 어렵단 걸 알기 때문이다.
집행까지 고려해 사업을 검토할수록 현 단계를 뛰어넘는 비약적인 도약이 이뤄지기 어렵다. 고려해야 할 변수가 늘수록 기획단계의 정체성은 흩어지고 두루뭉술 해진다. 결국 획기적 기획보다는 점진적인 개선에 더 무게중심을 두는 결론이 내려지기 쉽다.
우여곡절 끝에 새로운 기획을 확정했을 때 담당자는 어떤 형태로든 성과를 인정받게 된다. 담당자가 순환보직에 따라 이동하고 난 다음 후임자는 어떻게 될까? 보통의 경우 기획의 성공단계에서 성과를 인정받고, 집행을 담당하는 후임자에겐 주어진 업무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게 되는 경우가 많다. 소위 샴페인을 터뜨리고 간 선임의 뒤치다꺼리를 후임이 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그러다 보니 기획단계의 담당자도 보수적으로 사업을 바라보는 경우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