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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재건 계획 2. 다리

더 넓은 세상으로 통하는 길

by 이든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내 세상이 넓어진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은 새로운 세상으로 통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외국어를 배우는 만큼 나에게 닿는 세상이 넓어진다.




나는 일어일문학을 복수전공하고 영어로 사회에서 밥 벌어먹고 살았다. 원래 외국어 공부를 좋아했다. 지금도 일본어 콘텐츠를 보거나 영어 원서 읽는 걸 좋아한다. 언어공부는 나에게 해야지 마음먹는 일이 아니라, 늘 자연스럽게 함께 가는 습관 같은 일이었다.




그래서 새 삶을 만들어 보자 다짐했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른 것도 외국어였다. 이왕 새 삶을 사는 거 그렇다면 한 번도 접해보지 못했던 전혀 새로운 언어를 배워 보자! 결심했다. 평소 유럽 언어 중 하나를 배워보고 싶다고 막연히 생각해 오긴 했었다. 그래서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독일어 중 뭘 배울까 고민하다 프랑스어를 선택했다. 프랑스어를 선택한 이유는 ‘사랑’ 때문이었다.

산후우울증 때문에 상담센터를 다니고 있던 어느 날, 우연히 어느 알고리즘에 이끌려 ‘팬텀싱어 4’라는 크로스오버 그룹 결성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보게 됐다. 거기서 프랑스 유학파 출신의 한 성악가를 알게 됐는데, 청아하고 맑은 목소리로 부르는 프랑스 샹송에 반하고 말았다. 그 후, 남편도 어쩌지 못한 산후우울증이 그 성악가의 목소리로 치유됐고 덩달아 프랑스어의 매력에도 빠져버렸다.




현재 일본어와 영어는 참 다른 모습으로 내 곁에 남아있다. 프랑스어는 어떤 모습으로 남겨둘까? 프랑스어는 나에게 어떤 존재가 되었음 하는 걸까?

예전에 새로운 외국어를 공부하던 때를 떠올려봤다.

일본어는 JLPT 자격증 위주로 공부했다. 그러다 보니 실효성 있게 사용하지 못하고 듣고 이해하는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한편 영어는 토익 성적 만들기보단, 듣기, 읽기, 쓰기, 토론, 발표, 대화를 통해 영어를 공부하기보다 습득하려 노력했다. 그래서 토익 성적도 자연스럽게 따라왔고, 공부하지 않는 지금도 자유로운 편이다.

그래서 프랑스어 공부를 시작하기 전 다짐한 것이 있다면, 욕심부리지 말 것, 장대한 목표를 세우지 말 것, 자격증 공부를 하지 말 것, 이 세 가지였다.




그다지 열심히 프랑스어를 공부하지 않는다. 설렁설렁 되는대로 하고 있다는 게 맞는 표현 같다. 프랑스어에 푹 빠져 뭘 봐도 프랑스어로 생각이 연결되던 때도 있었고, 잠시 프랑스어와는 멀어져 다른 것에 집중하던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매일매일 한 걸음씩 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목적지에 도착하리라는 믿음으로 프랑스어의 손을 놓치만은 말자며 조금씩 조금씩 배워갔다. 프랑스어를 잘하고 유창하게 발음하는 사람들이 부러워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를 때도 있었지만, 천천히 나와 내 프랑스어, 우리 사이에 맞는 속도를 맞춰 천천히 해보자 약속했다.




어느덧 프랑스어 공부를 시작한 지 1년 6개월이 지나고 있다. 그동안 동영상강의, 스마트폰 어플, 줌 수업을 듣고 챗지피티도 활용하며 천천히 공부했다. 'Tous Les Jours'가 '뚜스 레스 주르스'가 아닌 '뚜레주르'로 보이기 시작했고, '트레비앙'이라는 간판에서 'very good'이라는 뜻이 보이기 시작했고, 프랑스 샹송을 들으면 가사가 귀에 들리기도 한다. 이제 프랑스어로 짧은 일기를 쓸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참 멀고 긴 걸음이지만 포기하지만 않으면 할 수 있다는 걸 또 한 번 배우게 됐다.




미처 알지 못했던 취향을 발견하기도 했다. 프랑스어를 배우면서 프랑스에도 관심이 생겼고 프랑스 예술가에게도 그 관심이 옮겨갔는데, 지금은 프랑스의 인상주의 음악과 미술에 까지 가 닿았다. 나의 프랑스어는 좋아하는 가수가 하는 말을 다 알아듣고 싶은 욕심이 시작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나의 걸음을 더 풍요롭고 아름다운 곳으로 이끌어 주고 있다.




어느덧 프랑스어에 대해 애틋한 마음이 자라기 시작했다. 프랑스어는 너무나 소중한 언어가 되었다. 그 이유를 '다른 곳에서 온 언어 - 미즈바야시 아키라'를 읽고 깨달았다. 오직 프랑스어만이 나의 의지로 시작된 언어였기 때문이다. 모국어라서, 학교에서 정한 제2외국어 과목이라서, 취업하려면 필요해서 배운 언어가 아니라 내가 선택한 나만의 언어였다. 내 선택에 의해서만 나에게 올 수 있었던, 그 누구의 간섭도 없이 나 스스로 채택한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프랑스어 공부를 시작하고 새로운 꿈이 생겼다. 아이가 10살이 되는 해부터 방학마다 세계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한 달 살기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꿈을 프랑스 파리에서 시작하고 싶다. 아이의 세상의 경계가 한국으로 한정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세상은 넓으니, 한계를 두지 않고 무한한 가능성을 볼 줄 아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나에게 외국어 공부는 시험 점수나 외국인과의 대화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나에게 외국어 공부는 한글이 아닌 다른 언어로 쓰인 더 넓은 세상으로 가는 다리를 만들기 위한 것이다.

이제 '프랑스어'라는 다리가 생겼으니, 어디까지 더 갈 수 있을까, 기대되는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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