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모이는 광장을 만들겠다 다짐한 내향인
년 평균 60권 정도의 책을 읽고, 오로지 재미로만 책을 마구 읽어대는 내가 책 읽기 시작한 지 5-6년 밖에 안 됐다 그러면 사람들이 놀란다.
맞다. 사실 처음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던 건 아니었다. (사는 건 좋아했다.) 그전에는 일 년에 한 권도 읽지 않았었다. 어쩌다 한번 읽으면 자기 계발서가 다였던, 필요에 의해 억지로 책을 들던 사람이었다.
처음 시작은 거의 반 강제적으로 시작되었다. 어느 날, 친하게 지내던 전 직장동료가 독서 모임을 제안했다. 나름 심적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던 그 동료는 책이라도 읽고 사람들과 나누며 힘듦을 환기시킬 무언가가 필요했었다고 한다. 그렇게 전 직장동료 5명이 모여 한 달에 한 권씩 함께 읽고 생각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인생 첫 독서 모임이자, 인생 첫 독서의 생활화가 그렇게 타의에 의해 시작되었다. 책과 인연이 없었던 사람들이 모였지만 그 독서 모임은 약 1년 동안 꾸역꾸역 잘 굴러갔다.
그때 ‘아몬드’라는 소설을 만났다. ‘아미그달라’ 또는 ‘아몬드’라 불리는 편도체가 선천적으로 작아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지 못하는 한 학생에 대한 이야기였다.
당시 나는 지식적으로 얻을 게 없는 책은 읽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 소설이 내 삶을 바꾸어 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인생책이 되고 말았다. 오만하고 편협한 나에게 더 다채로운 세상을 알려준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시간 낭비라 여겼던 ‘문학’이 삶을 풍요롭게 하는 재료라는 걸 알게 됐다. 흑백 TV였던 세상이 풀 컬러 HD로 변했고, 2D 평면이 3D 입체가 되고, 한 장면만 보여주는 그림이 움직이는 애니메이션이 되었다. 그 이후로 책은 내 삶의 일부가 되었다. 문학에서 쓸모를 발견하기 시작한 것이다.
뭘 하면 좋을까 고민하던 중, 문득 다시 독서 모임을 시작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책을 읽고 다른 생각을 나누는 그 모임이 그리웠다. 관심 있는 지인 8명을 모으게 됐고, 또다시 한 달에 한 권씩 같은 책을 읽고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는 모임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모임의 한계에 부딪히기 시작했다. 자유롭지만 강제성이 없다는 것. 장소의 구애도 없고 참석의 구애도 없는 그런 상태...
뭔가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좀 더 진중하고 체계적이고 몰입할 수 있는 독서모임, 그게 필요했다.
그러던 와중에 북카페를 오픈하게 되었고, 바쁘다는 핑계로 독서모임에 소홀해져 가던 찰나, 한강 작가님의 노벨상 수상 소식이 들려왔다. 늘 읽어봐야지 생각만 하며 마음의 짐으로 남아있던 한강 작가님의 책들... 이참에 한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고 바로 북카페 SNS 계정을 통해 함께 읽을 동료를 모집했다.
2주에 한 권씩, 5권의 책을 몰입감 있게 읽어나갔다.
채식주의자, 희랍어 사전, 소년이 온다, 흰, 작별하지 않는다
좋은 책은 어떤 책일까?
책 읽기 전의 나와 책 읽은 후의 내가 얼마나 달라졌는지, 얼마나 그 책이 나에게 좋은 영향을 미쳤는지가 좋은 책인지 아닌지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이라고 생각한다.
나에겐 한강 작가님의 책들이 그랬다.
그 책을 읽기 전의 나와 읽은 후의 나는 결단코 다른 사람이다. 그 전의 나로는 돌아갈 수 없다. 그만큼 나에게 큰 영향을 준 책들인데, 혼자 읽었더라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한강팀 멤버들과 같이 고민하고 이야기 나누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책을 읽는 것, 그것만으로도 얻을게 많다. 하지만 진정한 독서는 정리하고, 생각하고, 곱씹어보고, 나누는 것으로 마무리하는 것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책 읽을 때에는 함께 할 책 친구가 필요한 것이다.
이제 나는 혼자 읽는 책 보다 같이 읽는 책이 더 재미있다는 걸 알아버렸다. 내 도시에 만들어질 도서관 옆에는 사람들이 모여서 책을 읽고 책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광장이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