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도시 재건 계획 6. 예술의 전당

삶이 아름다워지는 비법

by 이든








예술가로서 작가의 절대적인 노력은 우주 앞에서 우리를 무관심하게 만들어버린 추함과 무의미함의 장막을 단지 부분적으로만 걷어 올린다.

마르셀 프루스트: 독서에 관하여 - 마르셀 프루스트







사람은 예술 없이 살 수 있을까?

나는 못 살 것 같다. 살더라도 그건 사는 게 아니라 버티는 것일 거다.

이 전에 내 삶에도 예술은 있었다. 하지만 그건 시각적 표현에 치중한 세계였다. 아름다운 색채, 선과 형태, 빛과 어둠으로 이루어진 아름다움의 세계.


남들이 다 그러듯 어린 시절 미술학원과 피아노 학원을 다녔다. 그림 그리기는 참 좋아해서 대학교 전공까지 이어졌지만 피아노는 그렇게 지겨울 수가 없었다. 이제 피아노 학원 안 다녀도 된다는 엄마의 말에 느꼈던 해방감만 기억난다. 이제 와서 후회가 된다. 악기 하나쯤은 배워둘걸. 평생 나를 위로해 주는 친구로... 하나쯤은 남겨 둘걸.

악기 배워보기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중에 하나), 성악 배우기, 아이랑 같이 음악학원 다니기,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에 들어가기, 이탈리아에서 오페라 보기, 독일에 가서 오케스트라 공연 가기, 최근에 버킷리스트에 추가된 항목들이다. 나이 40이 다 돼서야 음악에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언젠가부터 가사가 있는 노래나 가요가 시끄럽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저 소음일 뿐이었다. 자연스럽게 가사 없는 연주곡들을 듣기 시작했는데, 피아노 연주곡, 임윤찬, 조성진을 거쳐 라흐마니노프, 쇼팽, 바흐, 차이코프스키, 드뷔시, 라벨, 사티, 생상스, 가브리엘 포레까지 오게 됐다. 최근 가장 많이 듣는 작곡가는 에릭 사티인데 19세기 프랑스 작곡가이다. 그중에서도 'Je te veux (당신을 원해요)'에 푹 빠져버렸다. 너무 사랑스러운 노래다. 만약 내가 결혼을 안 했으면 신부 입장곡으로 썼을 텐데...


https://youtu.be/sRFuHNFDr7U?si=e_oYLYA55-mjqUyX



요즘 출퇴근길, 클래식 FM을 듣기 시작했다. 30분 남짓의 짧은 시간 동안 다른 사람들 사는 이야기도 듣고, 세상의 다양한 음악을 듣고, 음악, 오페라, 작곡가 들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도 듣고, 음악 뒤에 가려진 역사 이야기도 듣고, 오페라 아리아를 들으며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듯 줄거리를 듣기도 하고... 그렇게 라디오를 통해 듣는 것도 많아지고 아는 것도 많아지니 더 재미있어졌다. 점점 소리로 표현되는 아름다움에도 눈을 뜨기 시작한 것이다.









살다 보면 무기력해지거나 모든 게 재미없어지는 날이 감기처럼 한 번씩 찾아오곤 한다. 그럴 때면 나는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일에 도전하고 싶어지기도 하는데, 그러다 우연히 '서양미술사'라는 책을 읽게 됐다. 벽돌책 깨기 챌린지로도 많이 읽히는 책이다. 책방의 책장을 둘러보다 지금 아니면 절대 안 읽어 볼 것 같아서 덥석 꺼내 들었다. 관련 지식이 없는 사람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서양 미술사의 발전 과정에 대해 설명한 책인데, 예시와 에피소드들이 설명을 뒷받침해 주어 재밌게 술술 읽힌다.


눈앞에 보이는 그대로 그리는 게 비교적 근대에 와서 시작이 되었고, 지금은 당연한 사실로 받아들여지는 원근법이 사실 누군가에 의해 발명된 기법이었고..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많았다.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해 평생 미술인으로 살고 있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모르는 게 거의 대부분이라는 사실도 포함해서 말이다.


이렇게 많은 그림을 보다 보면, 특히 가슴에 와닿아 설레게 하는 그림들을 만난다. 나에겐 영국의 풍경화가 윌리엄 터너, 프랑스의 인상파 모네, 르누아르의 그림들이 그랬다. 빛과 색채의 아름다움, 그들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내 세상이 아름다운 색으로 채워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폭풍 - 윌리엄 터너


수련이 있는 연못 - 클로드 모네


사마리 부인의 초상 - 오귀스트 르누아르











책방을 시작하고 나서, 책방 주인으로서 의무감인지 책임감인지 아무튼 그것들 비슷한 것이 생겨났다. 누구도 강요한 적 없는 혼자 만들어낸 짐이긴 하지만 말이다. 만약 누가 책은 왜 읽어야 돼요? 소설은 왜 읽어야 돼요?라고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해야 하나? 를 고민하기 시작한 것이다. 머릿속에 어렴풋이 떠오르는 이미지는 있지만 그걸 구체적 의미를 가진 문장으로 꺼내기엔 너무 어설프고 얕다. 그래서 어느샌가부터 '책 읽기에 대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 읽기에 대한 책'을 열 권 넘게 읽었는데, 유난히도 자주 만나지는 인물이 있다. '마르셀 프루스트'. 19세기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평론가인데, 도대체 뭐 때문에 글 읽기에 대해 이야기할 때 이 사람은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걸까? 그래서 그의 에세이 모음 '마르셀 프루스트: 독서에 관하여'와 그가 생의 마지막 13년을 쏟아부어 완성한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어보았다.


책에서 엿본 그의 예술, 독서, 삶에 대한 성찰은 그냥 아름답다고 밖에 형용할 수 없었다. 마치 인상주의 화가가 그림을 그리듯 프루스트는 글로 아름다운 색채와 빛을 섬세하게 표현한다. 그저 글만 가득한 흑백의 종이를 읽는 것일 뿐인데 이렇게도 풍요로운 감성을 느낄 수 있다.









다른 사람들에겐 잘 모르겠지만, 내 삶에는 예술이 꼭 필요하다. 예술은 나에게 삶을 더 아름답고 다채롭고 풍요롭게 느끼도록 도와주는 안경 같은 거다. 거기에는 듣고, 보고, 읽는 모든 형태의 예술이 다 포함된다. 나를 둘러싼 공기를 조화의 아름다움으로 가득 채워주는 음악, 내 마음속에 빛 조각의 따스함을 심어주는 그림, 내 머릿속에 형형 색색의 향기로운 꽃을 심어주는 문학,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앞으로의 꿈이 있다면 아이가 나와 함께 예술들을 즐겨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리 아이의 삶에도 예술이 사랑스러운 존재로 남아주길 바란다. 같이 듣고, 보고, 읽으며 마음속에 가진 것이 많은 아이로 자랐으면 좋겠다.










keyword
이전 08화도시 재건 계획 5. 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