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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재건 계획 8. 병원

by 이든








아이를 낳고 예전과 같지 않은 건 내 세상뿐만이 아니었다. 내 몸뚱아리도 많이 망가졌다. 그게 산후우울증을 겪게 했던 큰 이유 중 하나였다.





아이를 낳고 느낀 많은 감정 중 지배적으로 압도한 감정은 '억울함'이었다. 아이는 엄마와 아빠의 유전자를 50씩 가지고 태어나는데, 엄마의 몸과 아빠의 몸에서 보이는 아이의 흔적은 100대 0이다. 아빠 몸의 변화에는 흐르는 세월만 미미하게 영향을 미치는데, 엄마의 몸은 아이를 낳는 순간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린다. 아빠와 엄마의 몸은 깨어진 적 없는 항아리와 산산조각이 나 풀로 덕지덕지 붙인 항아리만큼 차이가 난다 넌 아기가 생겨 아빠가 되었는데도 멀쩡하고, 나는 아기가 생겨 엄마가 되었는데 엉망진창으로 너덜덜해졌네.





사람마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나는 아기를 낳은 1년 뒤 까지도 힘들었다. (운동을 안해서 그렇겠지만)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피부 질환, 코어 근육이 다 사라져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뒤로 휙 넘어가는 상체, 조금만 무리해도 찾아오는 치골 통, 설거지만 하면 찾아오는 허리와 등 통증, 등 …

운동을 해서 체력을 늘려라, 필라테스로 바른 자세를 배워라… 나도 잘 알고 있다. 핑계라면 핑계일 수도 있지만, 다 소용없고 그럴 여력도 없었다. 필라테스로 기껏 다 맞춰 놓은 골반과 허리, 쪼그려 앉아 아기 기저귀 갈고, 뻑하면 우는 아기 매달고 다니고, 아기 재우느라 웅크리고 잠자다 보면 결국 다시 제자리다. 운동해서 몸 좀 움직인 날에는 육아할 체력이 부족해 별거 아닌 일에 아이에게 화부터 내고는 자책하고 우울해하고… 뭐가 중요한 건지 모르겠다.





아기 키우는 엄마에겐 건강도 사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기 키우면서 운동 열심히 하는 사람들 보면 괜한 자격지심이 생겨났다. 저 집은 엄마 아빠가 운동할 수 있게 애 봐주는 사람이 따로 있겠지. 애 보고 운동하고 할거 다 할만큼 금전적인 여유가 넘치겠지. 저 엄마는 운이 좋아서 출산 후 몸이 덜 아팠겠지. 저 엄마는 원래 체력이 넘쳐서 운동을 하고도 아기에게 다정할 수 있는거겠지, 그러니 운동을 하지.





하지만 엄마의 몸과 마음이 건강해야 아이도 그렇게 자랄 수 있다. 마음을 고쳐먹기로 했다. 사실 10년 뒤 해외로 한 달 살기 떠났을 때, 조금만 걸어도 지쳐서 골골거릴 내 모습을 상상하니 너무 끔찍했던 게 가장 큰 이유였다. 이런저런 이유로 건강하게 나이 드는 법을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노화와 관련된 책을 찾아보고, 내 감정 다스리는 법을 연구하고, 집 앞 공원에서 달리기하고, 과자를 끊고, 커피를 줄이고, 물을 만이 마시기 시작했다. 틈틈이 스트레칭도 하고 최대한 몸을 많이 움직이려 노력한다.

그리고 아이에게 다정한 태도를 유지하기 힘든 날이면 스스로 자책하기보다, 요즘 잘 쉬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 분명 아이에게 화가나고 짜증이 나면, 무리한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는 중일 확률이 높다.





이런 작은 노력들이 모여 내 생활 습관을 만들고, 그 습관들이 모여 더 건강한 나를 만들 수 있겠지? 내 세상이 건강해지려면 그 세상을 꾸려가는 주체인 내가 건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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