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좋다. 내 인생 이제부터 내가 만들어 나간다, 좋다 이거야.
그런데 뭘 하지?
“도대체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
어느 날 남편에게 물었다.
하고 싶은 게 없어서, 뭘 해야 할지 몰라서 고민이 아니라 사실,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뭘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음….. 이거 하나만큼은 안 하면 안 될 거 같다 하는 일이 뭐야?”
남편의 물음에 제일 먼저 떠오른 건 다름 아닌
“책!”
이었다.
나는 일 년에 50-60권 정도 책을 읽는다.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양이지만 소설, 에세이, 과학, 철학, 인문학, 경제, 경영, 가리지 않고 두루두루 다 읽는다. 그냥 책 읽는 게 재밌다.
요즘엔 책맥에 푹 빠져, 맥주 마시며 알딸딸하고 몽롱한 기분으로 소설책 읽는 게 삶의 낙이 되어버렸다.
사람마다 익숙한 매체가 다 다른 것 같다. 같은 내용이라도 누군가는 영상으로 봤을 때 집중이 더 잘되고, 누군가는 글로 봐야 더 기억에 오래 남고. 최근에야 알게 됐다. 나는 책으로 읽어야 집중이 더 잘되고 기억에도 오래 남는다. 그래서 드라마보단 소설책이 좋고, 동영상 강의보단 책이 좋다.
그런데 참 새삼스럽게도, 원래 나는 책과 별로 안 친했다. 그저 필요에 의해 일 년에 한 두 권 정도 읽었는데...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독서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고, 임신, 출산, 육아를 거치며 책 없이는 따분해 죽는 사람이 되었다.
만삭 때는 움직이는 게 힘들어 할 수 있는 거라곤 앉아서 책 읽는 것밖에 없었고, 출산 후에는 내가 도망갈 수 있는 곳이라고는 책 속 밖에 없어서 산후우울증도 책으로 버텼고, 아이를 키우다 얘가 왜 이러나? 싶을 때마다 육아서적을 선배님 삼아 의지했다. 종종 남편이나 아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으면 장바구니에 쌓인 책들을 한꺼번에 결재하고는 새 책이 오기를 기다리는 설레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버텼다.
(갑자기 회식이 잡혔다는 남편의 말에 그 자리에서 책 17만 원 치를 일시불로 결제한 적도 있다.)
그런 생활이 계속되다 보니, 어느덧 책은 나에게 아주 큰 안식처가 되어 있었다. 무서운 거, 힘든 거, 싫은 거 피해 날 숨겨주고, 재미있는 이야기, 흥미로운 사실들로 가득 찬 새로운 세상이 되어주고.
독서 말고도 취미는 많다. 그림 그리기, 바느질하기, 베이킹하기, 운동하기, 영화 보기, 등등...
그런데 남편이 '다른 거 다 없어도 이것만은 영원히 내 삶에 있었으면 하는 게 뭐냐' 물었을 때, 다른 취미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 있어도 책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게 돼버린 것이다. 그래서 생각했다. 앞으로 내가 무엇을 하게 되던, 책과 관련된 걸 하고 싶고, 꼭 그렇게 될 거 같다고.
그래서 새로 만들어질 내 도시에 제일 먼저 도서관을 지어 올려야겠다. 내가 좋아하는 책들로 가득한 도서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