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딩크였다.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좋아하는 것도 많은 나는, 나에게 주어진 시간적 금전적 자원을 다른 사람과 나누고 싶지가 않았다. 그게 비록 내 아이일지라도.
더군다나 그저 시끄럽고 성가신 존재인 아기를 좋아하지도 않았다. 미래의 내 모습을 그려보곤 했을 때, 내 옆에 아이가 있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세상의 중심이 내가 아닌 타인에게로 옮겨지는 것, 희생하고 포기해야 하는 것. 그것들이 참 무서웠다.
그러다 코로나가 한창이던 21년 어느 날, 며칠간 계속되는 체기에 혹시나 해본 테스트에서 두 줄을 발견했다.
자연임신이 어려워 병원의 도움 없이는 임신 자체가 힘들 거라는 의사의 진단에 방심했던 거다.
처음부터 믿기지 않아 내가? 왜?라는 물음만 떠올랐다.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과정도 없이 얼떨결에 그렇게 엄마가 되었다.
임신 사실을 알게 된 당시, 우리는 주말부부였다. 나는 서울, 남편은 부산. 부산을 떠날 수 없는 내가 주말마다 서울-부산을 왕복하기로 마음먹고 주말부부를 시작했다.
부부의 집이 부산이었고 부산에서 아이를 낳아 기를 예정이었기 때문에 부산에 있는 산부인과에 다녔다. 그 때문에 비행기를 탈 수 있는 마지막 주 수인 32주까지 매주 서울-부산을 왔다 갔다 했다. 6평 원룸 서울집이 만삭 임신부가 생활하기에는 너무 불편하기도 했고….
언제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는 임신부가 홀로 타지에서 생활하는 게 마음 편한 일은 아니었지만, 다행히 서울에서의 임신 기간은 무탈하게 지나갔다.
35주 차가 되는 날, 출산휴가에 들어가며 부산 집으로 돌아왔다. 그때는 그저 비행기를 그만 타도 된다는 생각에 기쁘기만 했다. 육아휴직이 끝난 뒤의 상황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저 오지 않을 것 같은 머나먼 미래의 일일 뿐이었다.
“~월 ~일부터 복귀하실 거죠? 준비해 두겠습니다.”
육아휴직 기간이 끝나갈 무렵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복귀가, 나에게는 당연한 일이 아니었다. 아직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어린아이를 두고 멀리 떠나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사실 회사에 섭섭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본사가 부산이라 타 팀으로 보직 변경을 해 주거나 몇 달 만이라도 본사로 장기 출장을 보내주리라 조금은 기대했기 때문이다. 회사의 모든 사람이 내 상황을 잘 알고 있었고 회사 내에 나와 비슷한 사정으로 본사로 이동 배치된 사례가 적지 않았으므로.
하지만 나에게 돌아온 답변은 ‘회사에서 해줄 수 있는 건 기존에 하던 업무를 이어가며 서울 연구소로 복귀할 수 있도록 자리를 준비해 주는 것뿐’이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정든 회사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임신 또는 육아를 이유로 회사에서 잘리거나 그만둘 수밖에 없었던 상황들을 간접적으로나마 많이 접해왔다. 생각보다 흔하게 일어났지만, 나에게는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일이었는데….‘가정주부’, ‘경력 단절’. 나에게는 없을 것 같았던 이 말들이 나를 형용하는 단어가 되어 버렸고, 나는 그 세상 속으로 등 떠밀려 살아가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내가 살던 나의 세상과의 마지막 끄나풀이었던 직장마저 잃었다. 내가 살던 세상을 모두 잃은 것이었다. 많이 방황했고, 좌절했고, 자존감을 잃었다. 다니고 있을 때는 그깟 직장, 나의 정체성을 대변할 수 없었던 한낱 돈벌이 수단이었던 직장을 잃었다는 사실에 이렇게 무너지다니...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는 것은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어떤 세상으로 만들지 내가 처음부터 선택할 수 있다는 뜻이다. 나는 그 무엇도 될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이전에 내가 살던 세상은 타인의 선택 (부모), 환경의 선택 (친구), 내가 살아가는 사회의 시스템에 의한 선택(교육)으로 만들어진 세상이었다. 그게 다 무너진 지금은, 처음부터 하나하나 차근차근 내 선택으로 만들어 갈 수 있다.
실패가 아니라 기회로 만들어보자.
하지만 뭐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도무지 감이 오지 않았다.
그래서 ‘취향의 그물’을 세상에 던져 뭐가 걸려 올라오는지 지켜보기로 했다. 그게 새로운 직업일 수도, 새로운 인간관 계일 수도, 새로운 취미 일수도.